국제

홍콩서 잡힌 12세 中소녀, 가방엔 임신부 혈액샘플 142개 왜

이승호 2019. 10.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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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中 임신부 혈액 홍콩 밀반입"
중국 본토에선 금지된 성감별 위해
한자녀정책 폐지 후에도 남아선호
홍콩 정부, 불법 검사 단속 눈감아
지난 4월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의 한 병원에서 중국 아기가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신화=연합뉴스]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광둥성 선전(深圳) 뤄후(羅湖). 지난 2월 이곳 출입관리소에선 홍콩으로 가려던 12살 중국 소녀 A양이 세관 직원에게 붙잡혔다. 소녀가 등에 멘 가방 때문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소녀의 가방은 터질 듯이 매우 불룩했다. 책과 문구류 뿐인 다른 학생들과 달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관 직원이 가방을 수색하자 안에서 혈액 샘플병 142개가 나왔다. 혈액의 출처는 중국 임신부 142명이다.

중국 임신부의 혈액 샘플이 홍콩으로 밀반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미 CNN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중국 본토에서 금지된 ‘태아 성감별’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중국 선전에서 12세 중국 소녀가 홍콩으로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142개 임신부 혈액 샘플들. [사진 CNN 캡처]

2017년 7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역시 홍콩과 인접한 선전 푸톈(福田) 출입관리소를 지나던 한 중년 여성 B씨의 속옷에서 혈액 샘플병이 대량 발견됐다. 중국 세관 당국은 “혈액 샘플병에 중국인 산모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밝혔다. A양과 B씨가 혈액샘플 전달에 성공했다면, 이들은 대가로 회당 100~300위안(약 1만7000~5만원)을 받았을 것이라는게 홍콩 관리들의 설명이다. 혈액 샘플의 최종 목적지는 홍콩의 병원이다.
CNN은 14일 중국 임신부의 혈액 샘플이 홍콩으로 밀반입되는 사례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사진 CNN홈페이지 캡처]

CNN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선 홍콩으로 혈액을 밀반입하는 걸 돕는 중개업체가 수십 개 있다. 이들은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에서 활동 중이다. 중국 임신부들은 서비스 이용 대가로 3500위안(약 58만원)을 지불한다. 신청한 뒤 일주일 정도면 결과가 나온다. 검사는 산모의 혈액으로 출산 전 태아의 DNA를 분석하는 비침습적 태아검사(NIPT) 방식으로 이뤄진다. 임신 6~10주만 되면 검사로 성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임신 10주 이후 NIPT 검사를 허용하지만, 중국에선 금지돼 있다. 많은 중국인 산모가 법망을 피해 태아 성 감별이 허용된 홍콩에 자신의 피를 보내는 이유다.


인형·과자봉지 속에 혈액 넣어 밀반입
봉제 인형 속에 임신부 혈액 샘플을 숨긴 모습(왼쪽)과 웨이보에 올라온 과거 혈액 테스트 보고서(오른쪽). [사진 CNN 캡처]

홍콩으로 혈액이 밀반입됨을 안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혈액샘플의 외부 반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홍콩으로의 혈액샘플 밀반입 규모는 지난 3년간 급증했다고 CNN은 전했다. 정부 단속이 심해지면서 최근에는 혈액 샘플을 봉제 인형이나 과자 상자 속에 숨긴 뒤 우편으로 부치는 수법까지 나왔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한 거리에서 임신부가 횡단보도를 걷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AP=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2002년부터 태아의 성 감별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의 사회문제 중 하나인 남녀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중국 인구 14억여명 중 남성은 여성보다 3270만여명 더 많다.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1979년부터 시행해온 ‘한 자녀 정책’과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 탓이다. 물론 중국 정부는 2015년 10월 18기 5중 전회에서 한 자녀 정책을 공식 폐기했다. 현재는 1가구에 2자녀까지 낳을 수 있다.

하지만 CNN은 “중국에선 양육 부담 탓에 여전히 자녀를 한 명만 낳으려는 부부가 많다”며 “그럴 경우엔 여전히 딸보다는 아들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중국 내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한 가운데 태아 성감별 수요도 크다는 게 CNN의 지적이다.


中 태아 검사 시장 급성장…홍콩당국 단속 눈감아

지난 2월 중국 베이징의 한 공원에서 중국 시민들이 유모차에 앉은 아이를 돌보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AP=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혈액 밀반입 단속에 눈을 감는 것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홍콩에선 NIPT를 통한 태아 성감별은 허용되지만, 비의료 전문가가 혈액 샘플을 검사하는 건 불법이다. 그런데도 실제 단속은 거의 없다.

CNN은 홍콩 정부가 단속에 소극적인 데엔 성장하는 태아 성감별 서비스 시장이 있다고 봤다. 시장분석업체 마켓앤마켓은 전 세계 NIPT 시장이 올해 39억 달러(약 4조6000억원) 규모이고, 향후 연 13.5%의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도 출산 연령이 올라가면서 NIPT 검사로 태아의 성별뿐 아니라 질병이나 유전적 결함을 확인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의사 출신의 홍콩 의회 관계자는 CNN에 “홍콩 정부가 (불법 혈액 검사를) 단속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홍콩 의료검사 시장이 크고 영향력이 있어 정부가 웬만하면 불법 혈액 검사를 눈감아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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