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가 학생인 척 '위장'.."주동자 찍어내"
[뉴스데스크] ◀ 앵커 ▶
그런데 부마항쟁 당시 계엄군이 공수 부대원들에게 사복을 입혀서 민간인 시위대에 투입 했다는 증언과 기록이 확인 됐습니다.
당시 '편의대'라고 불렸던 이 사복 공작조는, 주동자를 색출하고 시위대를 이간질하는 임무를 수행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보도에 박윤수 기자입니다.
◀ 리포트 ▶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철폐를 외치며 부산에서 시작된 시위가 마산과 창원까지 번졌던 1979년 10월 20일.
당시 보안사령부, 지금의 안보지원사령부가 작성한 상황보고 문서입니다.
오후 3시, "사복을 입고 군중에 침투해 주모자 색출"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산 지역에서 39사단과 5공수여단 등 군 병력과 해병, 경찰까지 3천여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도 돼 있습니다.
이틀뒤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졌습니다.
아침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군은 5공수 여단을 '편의대'로 편성해, 마산 전지역에 침투시켰습니다.
편의대는 군복대신 사복을 입고 시위대 속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거나 주동자를 색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5공수여단 소속이었던 홍성택씨는 편의대 활동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고 증언합니다.
[홍성택/부마항쟁 당시 편의대 활동] "(공작에 말려든) 학생들이 어디론가 잡혀갔으니까, 제가 다시 복학해서 학교 다니면서 그게 참 항상 '아, 내가 편의대였지. 공수부대에 좀 그런게 있었지…'"
편의대가 시위주동자를 유인하면 기다리던 경찰이 체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홍성택/부마항쟁 당시 편의대 활동] "제가 이렇게 손을 들었고 그럼 뒤에 저쪽에 앉아 있었던 형사 분들이 와가지고 (연행해 갔습니다.)"
편의대의 활동은 보안사가 작성한 '부마지역 학생소요사태 교훈' 문건에도 포함됐고, 군은 이듬해 광주에서 벌어진 5·18 민주항쟁 당시에도 편의대를 운용해 시위를 진압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윤수입니다.
박윤수 기자 (yoo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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