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강간 당해야 처벌하냐" '신림동 강간미수 男' 강간미수죄 무죄에 여성들 분노

한승곤 2019. 10. 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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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의도는 의심되지만 실행에 착수해야
"강간 당해야 처벌하냐" 여성들 분노
지난 5월 한 트위터 이용자가 공개한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범' 영상.사진=트위터 캡처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귀가하던 여성을 쫓아가 주거침입을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강간미수 혐의는 인정되지 않아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강간 의도가 있어도 실행에 착수해야 미수라고 판시했지만, 여성들은 강간 의도를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 자체가 강간 실행의 착수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강간을 당해야 처벌 여부를 살펴볼 수 있냐"라며 강간미수 혐의 무죄에 대한 격앙된 반응을 드러냈다.

"강간 의도 의심되지만, 실행에 착수해야…미수로 처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는 16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주거침입강간)등 혐의로 기소된 조모(30)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거 침입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고, 공동현관을 통해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 공용 계단 및 복도 등에 들어간 때 이미 주거 침입을 한 것"이라며 "이는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이른 아침에 피해자를 주거지까지 따라 들어가려 한 점, 과거에도 길을 가던 여성을 강제추행한 점, 술에 취한 피해자를 뒤따라가다가 모자를 쓴 점 등에 비춰보면 강간할 의도로 행동했다는 의심이 전혀 들지 않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뒤따라갔다는 피고인 주장을 완전히 배척할 수 없다"며 "강간미수는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려 한) 행위로 인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를 토대로 고의를 추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피고인에게 강간하려는 내심의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행에 착수한 것이 인정돼야 미수로 처벌할 수 있다"며 "피고인이 현관문을 치는 등의 행위는 의심 없이 강간으로 이어질 직접 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문을 열어보라'는 등의 말도 협박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피고인의 범행은 누구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야기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신체에 대한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피고인의 범행은 일반적인 주거침입과는 다르다"며 "피해자의 주거 평온을 해함으로써 성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 사실만으로도 피고인을 엄히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지난5월31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간 당해야 처벌하겠냐" 강간미수 혐의 무죄에 격앙된 반응

하지만 재판부가 강간 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한 것을 두고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30대 직장인 A 씨는 "재판부가 강간 의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있다"면서 "실행에 착수해야 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사람이 강간을 당해야 처벌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만신창이가 된 다음 처벌해봤자 사후 처벌에 불과하고 법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20대 직장인 B 씨는 "가해자가 여성에 대해 강간을 하거나 미수에 그쳐야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감, 두려움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A(30)씨는 지난 5월28일 오전 6시20분께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 씨가 여성을 뒤따라가는 모습, 집 안에 들어가려고 했던 모습 등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A 씨는 여성이 현관문을 여는 동안 숨어 있다가 문이 닫히는 순간 복도에서 나와 닫히는 문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이 먼저 닫혀 집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A 씨는 여성의 집 앞에서 약 10분간 서성이며 문을 두드리거나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서 도어락을 살펴보기도 했다.

A 씨의 이런 모습이 담긴 영상은 '신림동 강간미수 폐쇄회로(CC)TV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관련해 경찰은 애초 주거침입으로 조씨를 체포했으나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 또한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강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고, A씨 측은 "강간 의사를 갖고 따라간 건지, 술을 마시자고 하려고 따라간 건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편 강간미수 혐의에 무죄 판단이 내려지면서 검찰이 요청한 보호관찰 명령 등은 기각됐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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