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막아주고 레이저로 안내.. 마라톤 2시간 벽 깼다
도우미들 V자로 뛰며 바람 막고 레이저 빔으로 속도·경로 가이드
최적 기온·습도 맞춰 시간 선택, 평탄한 직선 코스 4.4바퀴 돌아
마라토너 일리우드 킵초게(35·케냐)는 레이스에 나서기 전 자신이 내디딜 걸음을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꿈을 자신의 발로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각오이자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그는 12일(현지 시각) 약속대로 마라톤 역사에서 '최초 인류'가 됐다. 그는 이날 오스트리아 빈 프라터 공원에서 42.195㎞ 풀코스를 1시간 59분 40초에 주파했다. 사상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이 레이스는 인간이 풀코스를 과연 2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느냐를 실험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 이벤트였다. 일반 마라톤과는 다른 조건에서 펼쳐진 경기라 기록을 공인받을 수는 없었지만, 상상만 해온 '꿈의 기록'을 처음으로 달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킵초게는 레이스 후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소감을 남겼다.
◇어떻게 '2시간'을 현실로 만들었나
'2시간'은 마라톤계의 숙원(宿願)이었다. 2시간 6분대 기록이 나온 건 1988년이고, 2시간 5분대는 1999년 작성됐다. 2시간 2분대는 2014년에야 나왔다. 지난해 호주 연구진은 2032년이 돼야 10% 확률로 2시간대가 깨질 거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2018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분 39초로 처음 '2시간 1분대'에 진입한 킵초게가 현세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2017년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후원으로 '브레이킹 2(2시간대를 깨라)'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탈리아 몬차 포뮬러원 경기장 2.41㎞ 자동차 서킷에서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는 등 특수 조건 아래 17바퀴 반을 달렸지만 2시간 25초로 아쉬움을 삼켰다.
영국 화학업체 이네오스(INEOS)의 짐 랫클리프 회장이 뒤이어 킵초게에게 '1시간 59분대' 진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올해 5월 킵초게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이네오스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전 세계를 뒤진 끝에 기후 예측이 쉬운 오스트리아 빈을 선택했고, 주로(走路) 양쪽에 나무가 우거진 프라터 공원을 도전지로 결정했다. 달리기에 이상적인 기온(섭씨 10도 정도)과 습도(약 80%)를 기다리다 출발 몇 시간 전에야 레이스 시각을 정했다. 레이스는 다리를 포함해 1.2㎞를 뛴 뒤 대부분 직선으로 이뤄진 약 9.54㎞ 코스를 4.4바퀴 도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레이스에는 1500m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1차 도전 때보다 많은 41명이 페이스메이커로 투입됐다. 이들이 5~7명씩 조를 나눠 킵초게 앞에서 V자 대형으로 뛰면서 바람막이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특수차량이 함께 달리며 '레이저 빔'을 쏘면서 최적 주로와 속도를 안내한 것이 기록 달성에 결정적이었다. 그는 이 눈앞 빔을 쫓아 1㎞에 2분50초씩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렸다. 100m를 약 17초에 주파하는 레이스를 422번 거듭한 셈이었다.
◇"도전 계속"… 킵초게는 멈추지 않는다
킵초게는 결승 지점이 보이자 기록 달성을 확신한 듯 관중을 향해 손짓했고 가슴을 치며 세리머니를 했다. 전 세계 주요 스포츠 매체가 긴급 속보를 내보냈다. 크리스 프룸(사이클), 리오 퍼디난드(축구) 등 스포츠 스타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조국 케냐도 난리가 났다. 고향 캅시시이와 집에서 지켜보던 어머니에게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당신이 케냐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미래 세대에게 큰 꿈을 꾸게 해줬다"는 감상을 남겼다.
킵초게는 내년 도쿄에서 2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그는 "도전을 믿는다. 가지 하나를 오른다면, 그다음 가지에도 닿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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