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에어비앤비 할거야, 방 빼!".. 유럽 대도시 곳곳 몸살

파리=손진석 특파원 2019. 10. 14.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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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창 Now] 집값 치솟고 원주민 밀려나
- 숙박 공유 아닌 전문 임대업 급증
런던·파리·베를린·로마·빈.. 집 여러채 산 업자까지 등장
10년새 집값 30~110% 올라.. 임대료 폭등, 주민들 외곽으로
- 인구 줄어들며 학교도 통폐합
年 10%씩 오른 암스테르담, 집 없어 합친 大가족 급증
파리 도심 거주민 계속 줄자 市長 "에어비앤비 금지도 고려"

파리 15구 '라 모트-피케' 거리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베누아 베르씨는 요새 '아파트 팔 사람을 찾는다'며 자필로 쓴 엽서를 동네를 돌며 집집마다 우편함에 넣고 있다.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이 넘쳐나 가격이 치솟자 집주인들이 일제히 매물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거래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베르씨는 11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집값이 오르는 건 저금리를 포함해 이유가 여럿이지만 에어비앤비가 크게 한몫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에어비앤비로 전문적인 숙박 영업을 하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상시 거주할 주택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파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런던, 베를린, 로마, 암스테르담 등 유럽 주요 도시가 에어비앤비로 상시 숙박 영업을 하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실거주용 주택이 부족해지고 있다. 치솟는 주택 가격과 임대료에 외곽으로 밀려난 주민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숙박 공유가 아니라 전문 임대업으로 변신

2008년 창업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는 집주인이 출타한 빈집을 짧게 임대하거나 주인이 있을 때 빈방을 내주는 개념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연중 내내 영업용으로만 돌리는 주택이 급증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집이 2만5000여채에 달한다. 이 집들을 손님에게 빌려준 기간은 연평균 102일에 달하고, 그중 연간 3개월 이상 임대를 돌리는 집이 8900여채에 이른다. 연중 임대 기간이 3개월이 넘는다는 건 관광객을 상대로 계속 임대 영업을 하고 있으며,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간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204채의 집을 빌려주며 하루 3만7721유로(약 5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에어비앤비가 전문 임대업으로 변질됐다는 증거였다.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Airbnb)가 유럽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이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실거주용 주택이 줄어들고 숙박용 주택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마트폰의 에어비앤비 앱을 켜고 집 안을 둘러보는 모습. /호텔매거진

유럽에서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집은 런던(7만7000여채), 파리(약 5만9000여채), 로마(2만9000여채), 코펜하겐(2만6000여채), 베를린(2만5000여채) 순으로 많다. 이 5개 도시의 에어비앤비 등록 주택 중에서 절반이 임대용으로만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3인 가족 기준으로 33만명이 도심에서 살 집이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주택 공급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집값과 월세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 프랭크에 따르면, 2008년 이후 10년 사이 베를린의 주택 가격 상승률이 109%에 이른다. 빈 80%, 런던 75%, 암스테르담 37% 등 유럽 주요 도시의 집값 상승 속도도 상당히 빠르다. 나이트 프랭크는 "에어비앤비 영업을 하기 위해 전문 임대업자가 집을 여러 채 사들이는 것도 집값 상승 요인"이라고 했다. 파리의 경우 올 들어 8월까지 8개월 동안에만 집값이 7.4% 급등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올해 9월 1일을 기점으로 파리 시내 평균 집값이 ㎡당 1만유로를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3.3㎡(1평)당 약 4350만원이라는 의미다.

집값·임대료 폭등으로 주민들 외곽으로 쫓겨나

'에어비앤비 효과'로 갖가지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학부모연맹(FCPE)의 장-자크 르나르 부대표는 "파리 도심이 거대한 에어비앤비 호텔이나 마찬가지가 되면서 집값을 감당 못 한 주민과 학생 숫자가 줄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파리 인구는 5만9648명이 줄었다. 최근 4년간 파리에서 문 닫은 학교가 4곳에 달하고, 인근 학교와 통폐합된 학교가 10개교가 넘는다.

최근 5년 사이 집값이 연평균 10%가량 올라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는 암스테르담에서는 본의 아니게 '대(大)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에그버트 드 브리스 암스테르담 주택연합회 회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독립할 만한 돈이 없는 젊은 부부가 어린 자식을 데리고 나이 든 부모 집에서 얹혀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시내에서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에어비앤비로 집을 빌려 성매매를 하는가 하면, 밤샘 파티를 벌이는 사람들로 인근 주민들이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다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부작용은 암스테르담과 바르셀로나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파리 시장 "에어비앤비 금지도 고려해야"

유럽 주요 도시들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숙박 공유 업체가 한 해에 집을 대여할 수 있는 기간을 런던은 60일, 바르셀로나는 90일, 파리는 120일로 제한했다. 스페인 휴양지 마요르카섬의 최대 도시 팔마에서는 마요르카 주민이 아닌 사람에게 아파트를 임대할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에어비앤비 효과'가 워낙 파급력이 커서 훨씬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난달 25일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파리의 (관광객이 많은) 일부 구(區)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파리에서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로 이튿날 베를린시는 9억2000만유로(약 1조2000억원)를 들여 공공 임대용 아파트를 6000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집값·임대료가 서민들이 감당 못 할 만큼이 되자 시청이 집을 대거 사들여 임대를 놓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베를린시는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지난 6월 암스테르담·바르셀로나·베를린·파리 등 유럽 10개 도시는 공동으로 EU에 서한을 보내 숙박 공유 서비스에 따른 피해를 EU 집행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논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숙박 공유 서비스에 과도한 규제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유 재산에 대한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에어비앤비가 미래형 경제 모델인 '공유 경제'의 핵심이므로 무작정 가로막기보다는 기존 주택 시장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집값 오르는 것을 에어비앤비 탓만 할 게 아니라 주택 공급을 늘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많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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