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한반도 중심..궁예와 서태지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박경만 2019. 10. 12.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한겨레 공동기획
[DMZ 현장보고서] ④역사문화유산
국경하천 임진강 삼국시대·한국전쟁 유적 빼곡
태봉국 궁궐 등 유적지 남북 공동조사 추진안돼
경기·강원·문화재청 '세계유산 남북공동등재' 맞손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 당사. 골조만 남은 3층 건물 곳곳에 포탄과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은 1500년 전인 삼국시대에도 100년 넘도록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치한 국경하천이었다. 강변에 늘어선 호로고루성, 관미성 등 성곽들은 당시 싸움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강을 따라 고랑포구, 임진나루 등 과거 화려했던 옛 포구와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넘긴 신라 경순왕 무덤 등 역사·문화 자원이 즐비하다. 주상절리, 적벽 등 빼어난 경관도 빼놓을 수 없다. 경기도 연천 임진강과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일원은 지난 6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지정될 만큼 희귀동식물도 많다. 비무장지대 일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이유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임진강변에 세워진 삼국시대의 성지인 호로고루성에서 바라본 임진강.

■ 임진강을 둘러싼 전쟁의 서막 지난 8일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연천 호로고루성은 야트막한 평지성인데도 현무암 천연절벽 위에 자리해 강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 성은 연천 은대리성, 당포성과 함께 고구려의 3대성으로 꼽힌다.

임진강 유역은 기원후(서기) 4세기까지 백제 땅이었다. 하지만 390년 남하정책을 펴던 고구려 광개토왕이 4만 군사를 이끌고 관미성(현재 파주 오두산성으로 추정) 등 임진강 유역의 백제 성을 공격하면서 임진강을 둘러싼 긴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393년 백제의 진무 장군이 1만 군사를 이끌고 관미성을 탈환하려 했으나 패퇴하자, 광개토왕은 396년 백제의 58개 성을 빼앗고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냈다.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왕이 확보한 임진강 일대를 기반으로 남쪽을 공략해 475년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한 뒤 아산만(충남 아산)에서 영일만(경북 포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무덤.

이후 임진강이 요충지로 등장한 것은 551년이다. 당시 신라와 백제 연합군의 공격으로 한강 아차산 방어선이 붕괴하자 고구려는 임진강까지 후퇴해 강 북쪽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북상하는 신라를 막기 위해서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군은 임진강까지 진출했지만 견고하게 구축된 고구려 성을 뚫지 못하고 강 남쪽에 성을 쌓고 고구려군과 대치했다. 이후 고구려와 신라는 고구려가 멸망한 668년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국지전을 벌였지만 어느 쪽도 임진강을 완전히 차지하지 못하고 100년 넘게 군사적 긴장감을 이어갔다.

이후 668년 고구려 수도인 평양성을 점령한 당나라가 신라와의 약속을 어기고 남쪽으로 진군하자, 고구려 병사들은 임진강 호로고루성에 집결해 배수의 진을 치고 당나라군과 항전을 벌였다. 7년 뒤인 675년 당군은 한성 관문인 임진강 남쪽의 신라 칠중성을 공격했으나 여의치 않자 우회해서 매초성(현재 연천 대전리산성으로 추정)에 20만 대군을 주둔시키고 임진강 초입의 조강 쪽으로 보급선을 띄웠다. 낌새를 알아챈 신라군이 천성(관미성의 신라 이름)에서 보급선을 궤멸하자, 매초성의 당군이 혼란에 빠졌다. 신라군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당군을 격파했다. 매초성 전투의 패배로 당군은 2년 뒤인 677년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를 무순으로 옮겨 한반도에 통일신라 시대가 열리게 됐다.

최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연천 임진강 주변은 국가지정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이곳에는 호로고루성을 비롯해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전곡리 유적, 경순왕릉, 숭의전지, 당포성, 은대리성, 연천역 급수탑, 연천 유엔군 화장장 등 9곳의 문화재가 있다. 연천역 급수탑과 유엔군 화장장을 뺀 문화재는 모두 임진강을 따라 분포하며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에 포함돼 있다.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광장 망배단 뒤편에 자리한 임진강 독개다리(오른쪽). 임진강 남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파괴됐다.

■ 잃어버린 왕국 철원 비무장지대의 한복판인 강원도 철원은 한국전쟁 전 사통팔달의 도로를 갖춘 한반도 중심 도시로 번성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도시(옛 철원)의 역사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옛 철원은 대부분 민간인 통제구역에 포함돼 마을이 사라지고 폐허로 남았다.

철원평야의 중심에 자리한 옛 철원은 전쟁 전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운행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1938년 일제가 펴낸 <철원읍지>를 보면, 철원의 인구는 4269가구, 1만9693명이었다. 학교 5곳, 금융기관 4곳, 행정기관 34곳, 여관 34곳, 음식점 61곳을 갖추고 있었다. 농산물의 집산지로 교역이 활발했던 이곳은 1945년 해방 당시 3만7855명으로 인구가 늘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첨예하게 충돌한 옛 철원은 해방 이후 지배체제가 여러번 바뀌면서 곳곳에 다양한 유적을 남겼다. 러-일 전쟁 뒤 군사물자를 수송할 목적으로 일제가 개통한 경원선의 중간 기착지였던 철원역은 지금 낡은 팻말과 철로만 덩그러니 남았다. 철원에서 금강산까지 116.6㎞를 4시간 반 걸려 하루 8차례 운행했던 금강산전철도 일제의 지하자원 수탈과 수학여행 가던 학생,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이제는 교량만 남은 채 폐허가 됐다.

남아 있는 시설 중 그나마 보존이 잘된 곳은 노동당사다. 해방 직후 옛 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들어선 이 건물은 소련군 치하에서 주민들의 성금과 노역으로 건립됐다. 옛 철원의 상징 이미지가 된 노동당사는 포탄과 총탄 자국으로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부터)와 정재숙 문화재청장,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지난 7월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를 위한 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 노동당사는 1994년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 서태지가 ‘발해를 꿈꾸며’란 노래의 뮤직비디오 소재로 사용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폐허에 관하여: 철원에서 상상하는 평화’라는 논문에서, 철원에서 가장 의미 있는 ‘폐허 깨우기’ 사례로 이 뮤직비디오를 꼽았다. 그는 “철원 노동당사는 서태지의 음악을 통해 폐허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적었다.

전세계 절반의 두루미가 찾는 ‘두루미 왕국’인 철원은 비록 18년에 그친 짧은 왕조였지만 새 세상을 꿈꾼 궁예의 나라 태봉국(901~918) 수도였다. 901년 평양에서 충주 이남까지 한반도의 중앙을 장악한 궁예가 발해의 동경성을 본떠서 905년 세웠다는 철원성은 외성 둘레 12㎞, 내성 둘레 7.7㎞로 당당한 규모를 갖췄지만, 군사분계선 가운데에 자리한 탓에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해 9·19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무장지대 역사유적 공동조사에 대한 군사 분야 합의로 철원성 발굴이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2008년 11월, 3시간 동안 철원성을 조사한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내년에도 성터 발굴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판문점에서 남쪽 군인이 북쪽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 평화·화해 공간으로 재탄생 꿈꾸는 디엠제트(DMZ) 11일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면, 비무장지대 안 역사유적은 현재 알려진 것만 철원성을 포함해 모두 36개소가 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을 궤멸한 뒤 전사자들의 유골을 모아 묘를 만든 전골총(철원)과, 1359년 김화 오성산에 쳐들어왔다가 토벌당한 홍건적의 돌무덤인 매두분(철원)이 대표적이다. 파주의 옛 장단면사무소와 경의선 옛 장단역터,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다리 등 3건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밖에 병자호란 김화전투 전적지(철원)와 백마고지(철원), 저격능선(철원), 베티고지(연천) 등 한국전쟁 전적지 4곳과 도라산 봉수지(파주), 소이산 봉수지(철원), 성재산성(철원), 승양산성(북한 평강), 중어성(철원), 고장리산성(연천), 창화사지(파주), 기곡리사지(연천), 충장사지(철원) 등의 문화유산도 산재해 있다. 비무장지대는 특히 정전협정으로 생긴 감시초소, 군사분계선, 남북한 한계선 철조망, 판문점 등 한국전쟁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비무장지대를 평화·화해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 문화재청이 지난 7월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북공동 등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것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으로 비무장지대가 평화와 공존의 공간임을 재확인했다. 지금이 남북공동 등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유엔총회에 참석해,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