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데이비드 흄 (1711~1776)

허연 2019. 10. 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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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여전히 인간이 되어라"
경험의 눈으로 인간을 탐구한 현대철학의 큰 산맥
데이비드 흄은 1740년 29세 나이로 대표작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을 집필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책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흄 스스로 "인성론은 인쇄기에서 나오자마자 죽은 채 떨어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성공은커녕 오히려 비판 대상이 돼야 했다. 품위 있고 담백한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데이비드 흄은 영혼을 부정했다. 그는 영혼으로 교감을 했다느니 영혼을 느낀다느니 하는 말을 문학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영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지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정도를 말할 수 있을 뿐 영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흄에게 영혼이란 '지각의 다발'에 불과했다. 수많은 경험적 지각이 모여 어떤 느낌을 전해주는 것일 뿐 그걸 영혼이나 영성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바로 이 지점이 당시 지식인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영혼을 부정하는 건 곧 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보수적인 학계는 흄을 '회의적인 무신론자'라며 경멸했다.

흄은 이후 오랫동안 펴내는 책들에 자기 이름을 쓰지 못했다. '도덕과 정치문집' 등 저술을 내면서 그는 '새로운 저자(New author)'라는 익명을 사용해야 했다.

흄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험론자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동차를 본다고 하자. 우리가 보자마자 자동차를 인식하는 건 우리 기억 속에 저장돼 있는 자동차에 관한 수많은 지각이 모여 그런 판단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즉 눈으로 접한 순간적인 인상에 기억(지각 경험)이 작용해 판단을 완성해주는 것이다. 흄은 그 과정에서 어떤 초월적인 진리나 영적인 힘은 작용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어떤 원인이 우리에게 물체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지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흄은 당시 철학판을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현실적 경험을 벗어나 진리 논쟁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그에게 좋게 보였을 리가 없다.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흄은 법학을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철학자의 길을 택한다. 에든버러대에서 공부한 그는 어린 나이에 당찬 꿈을 꾼다. 뉴턴이 자연과학에서 이룩한 성과를 철학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갔다. 도덕과 이성의 구조를 탐구하면서 '성경'에 기대지 않은 것이다. 오로지 확실한 지식, 눈으로 확인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흄을 현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여전히 인간이 되어라"고 외쳤다.

흄은 철학을 신이 아닌 인간의 영역으로 가지고 내려온 주동자 가운데 한 명이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의 뒤를 이은 것이 그였고, 그로 인해 칸트 마르크스 니체가 가능했다.

그는 철학은 눈을 감고 사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부릅뜨고 현실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선구자였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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