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지 마세요 살고 싶어요
[경향신문] ㆍ섬강 멸종위기 어류들의 ‘로드킬’…오프로드 드라이브에 몸살

섬강의 여울을 지나는 물소리가 한순간 얕은 물길로 뛰어드는 자동차의 굉음에 사라졌다. 섬강 좌안의 강원 원주 부론면 쪽에서 출발한 4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경기 여주 강천면인 우안 쪽으로 달려오는 소리였다. 4대강 사업으로 서식지가 크게 줄어든 멸종위기 어류들이 자갈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오프로드 차량은 이를 짓밟으면서 빠른 속도로 달렸고, 여울에는 금세 흙탕물이 퍼져나갔다.
얕은 여울과 맑은 물로 유명한 여주와 원주 사이 섬강이 무분별하게 4륜구동 차량으로 물길을 건너는 탐방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멸종위기 어류들이 로드킬 아닌 ‘로드킬’을 당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찾은 섬강에서는 1시간30분 정도 주위를 살펴보는 동안 물길로 강을 건너는 차량을 10여대 볼 수 있었다. 일요일이긴 했지만 캠핑 성수기가 살짝 지난 시점임을 감안하면 7~8월에는 더 많은 차량이 섬강 생태계를 유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인근에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이동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오프로드로 물속을 달려보고 싶은 욕구 때문으로 보인다.
섬강은 여주와 원주 사이를 흐르는 하천으로, 4대강 사업으로 생태계가 훼손된 남한강의 지천 중 하나다. 맑은 물을 공급하는 하천이기에 앞으로 남한강을 되살리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곳으로 예상된다. 4대강 사업 이후 남한강 공사 구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꾸구리, 돌상어, 한강납줄개 등 멸종위기 어류가 여전히 서식하고 있는 하천이기도 하다.

꾸구리는 잉엇과에 속하는 국내 고유종으로 임진강과 한강, 금강 중·상류에 서식하는 소형 어류다. 사람처럼 눈을 깜빡거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돌상어는 눈 모양이 마치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보이는 희귀종이다. 모두 얕은 여울의 자갈 틈새에서만 서식하는 어류들이다보니 4대강 사업으로 수심이 깊어진 남한강에서는 빠르게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지난 8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생물과학협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충남대 대학원생 성무성씨가 발표한 2010~2017년 사이 어류 조사 결과를 보면, 섬강에서 꾸구리는 ‘아우점종’으로서 국내 대부분 하천에서 ‘우점종’인 피라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출현 빈도를 기록했다. 우점종이란 특정 지역 내에서 가장 수가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우위에 있는 종을 말한다. 아우점종은 우점종 다음으로 많거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종이다. 즉 섬강이 멸종위기 꾸구리의 최대 서식지라는 얘기다.
섬강은 같은 조사 기간 동안 채집된 57종 3만9124개체 가운데 배스나 블루길 등 생태계 교란종으로 꼽히는 외래종 어류가 각각 1개체, 11개체만 발견됐을 정도로 토종 어류들의 서식환경이 비교적 잘 보전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큰 타격을 입은 남한강을 되살리고 재자연화하기 위해서는 섬강을 잘 지키고 어류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주로 얕은 여울에서만 서식하는 꾸구리 등의 어류에게 차량들이 강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행위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섬강이 수년 전부터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것은 한 캠핑장 인근 여울이 깊은 곳도 60~70㎝ 안팎으로, 4륜구동 차량이면 도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원주시나 원주지방환경청 등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당국이 이들 차량의 생태계 파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이런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야영객은 “예전에는 환경청에서 차량으로 강을 건너지 말라고 붙여놓은 현수막이 있었는데 최근 와보니 그것조차도 사라져 있다”고 전했다.
사실 섬강을 찾는 시민들 다수는 섬강 여울에 꾸구리나 돌상어 같은 멸종위기 어류가 살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다. 특히 생태계가 훼손되면서 남한강에선 자취를 감춘 희귀 어류가 자갈 틈에서 헤엄치다가 물길을 지나가는 차량에 밟혀죽고, 서식환경이 훼손될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이는 드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자체나 환경당국이 나서서 섬강에 멸종위기 어류가 서식한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장기적으로 섬강 일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4대강 사업처럼 하천 환경을 생물들이 적응할 수 없는 수준으로 뒤바꿔놓는 거대 토목사업을 막아야 함은 물론이다.
순천향대, 한국민물고기연구소, 생물다양성연구소 등 공동 연구진은 섬강에 서식하는 꾸구리의 서식 개체 수를 추정한 논문에서 “멸종위기종 꾸구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하천공사 등으로 발생하는 서식지 교란을 지양해야 하며,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의 상호 공조 및 홍보, 보호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섬강 꾸구리는 하류부의 좁은 구역에서 큰 집단을 형성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서식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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