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S 피해 12조, 고통은 국민 몫으로"

이대희 기자 입력 2019. 10. 9. 09:49 수정 2019. 10. 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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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해영 교수 "폭력적 세계화는 지나갔다..정부, 재협상 나서야"

[이대희 기자]

 
지난달 7일, 데이비드 파커 뉴질랜드 통상장관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를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렐 레이킹 말레이시아 통상산업부 장관도 이를 재확인하며 RCEP 발효 2년 이내에 ISDS 포함 여부를 두고 재협상이 진행될 여지는 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관영 통신 <베르나마(Bernama)>의 보도 내용이었다. 

RCEP은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등 태평양 지역 16개국이 참가하는 메가톤급 자유무역협정(FTA)이다. 

ISDS 문제에 대응해 온 참여연대 ISDS 대응 태스크포스와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국제통상연구소는 이 소식을 두고 지난달 25일 공동 논평을 냈다. 한국 정부도 이제 그간 맺은 각종 협정에서 ISDS를 폐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그간 ISDS를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해 반드시 포함돼야 할 조항으로 여긴 세계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인도를 포함한 여러 나라가 ISDS 조항이 들어간 투자보장협정(BIT)을 폐기하고 있고, 유럽법원은 아예 ISDS 조항이 들어간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BIT를 불법으로 판결했다. ISDS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나라인 미국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과정에서 캐나다와는 ISDS를 완전 폐지하고 멕시코와는 부분 허용하는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도 ISDS 개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간 이 문제에서 절대적으로 ISDS를 지지한 한국 정부에서도 약간의 균열은 감지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7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ISDS를 두고 "소송 비용이 과다하게 들고 예측 가능성이 매우 낮은 문제가 있다"며 "(ISDS가) 강자의 횡포가 될 가능성이 커서 폐지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 입에서 나온 ISDS에 관한 첫 비판적 입장이었다. 

ISDS는 한미 FTA 체결 추진 과정에서 독소조항으로 꼽히며 한국 사회에 크게 알려졌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당사국 정부가 투자협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경우, 국내 법원이 아닌 국제 중재소에 정부를 제소할 권리를 보장한 제도다. 한미 FTA 체결 후 한국은 여러 FTA 조항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 부작용도 나타났다. 2012년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하며 ISDS를 처음 활용했다. 2015년에는 이란 기업 다야니로부터 한국 정부가 처음 패소함에 따라 실질적 피해를 입었다. UNCITRAL가 올해 발간한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는 세계에서 ISDS 분쟁을 세 번째로 많이 유발한 협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할 때부터 ISDS 위험성을 경고해 온 이해영 한신대 교수를 지난 7일 한신대 오산캠퍼스에서 만나 RCEP의 ISDS 제외 논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들었다. 이 교수는 이제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ISDS 개선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국적자본을 일방적으로 보호한 ISDS의 부작용을 세계가 깨닫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이해영 한신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FTA에 ISDS 포함 자체가 난센스"

프레시안 : RCEP 협상 당사국이 ISDS 제외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여러 해에 걸쳐 ISDS의 위험성을 지적했는데, 그 주장과 같은 움직임이 각국 정부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해영 :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FTA에 ISDS 조항이 들어간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점을 강조한다. 

FTA는 문자 그대로 '자유무역' 협정이다. 그런데 핵심 조항으로 투자와 지적재산권 관련 조항이 들어간다. 통상 협정, 즉 무역 협정에 투자 관련 조항이 들어간 것이 우선 문제다. FTA가 세계화하기 전에는 투자 협정은 따로 체결했다. FTA가 출범하면서 BIT가 통상 협정에 포함된 셈이다. 

더구나, FTA에 추가되는 지재권 조항은 그야말로 극 보호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자유무역 철학과 완전히 배치된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도구인 FTA가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는 주요 무기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수단이 ISDS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RCEP 관련 소식을 공식 확인하지는 않는 입장이다. 그간 한국 정부는 ISDS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여러 논리 중 하나가 ISDS는 이제 세계 표준 질서라는 입장이었다. 

이해영 : 2007년 한미 FTA 추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주장한 논리가 그것이다. 가설일 뿐이다. 

ISDS를 빼는 건 세계화하지 말자는 논리라고 당시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어떤가? ISDS로 인해 한국 정부가 국제 중재 무대에 끌려간 피해 건수가 10건이다. 누적 청구액이 12조 원에 달한다. 그 정도면 한국 대학생 전체의 등록금을 무상화할 수 있다(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4년제 사립대(대학원 포함) 등록금 총액은 9조8000억 원이며 사립전문대 등록금 총액은 약 2조5000억 원이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 전체 대학 등록금 총액이 약 14조 원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프레시안 : 외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ISDS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이해영 : 과연 그 주장이 사실인가. 한미 FTA 발효 후 미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활용한 한국 기업이 어디 있나? 당장 트럼프의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도 얼마든지 ISDS 제소 대상으로 고려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이 이에 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한다. 

여태 한국 기업이 ISDS를 활용한 사례는 4건 정도로 기억한다. 중동 국가 등 비 선진국이 대상이었다. 국제 질서는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ISDS는 강대국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프레시안 : 한국 기업 중에서도 삼성이나 현대차 정도 큰 회사에는 ISDS가 유용한 도구일 수 있다. 

이해영 : 노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 정부의 숨은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 등 강대국에 얻어맞고 약소국을 대상으로 화풀이하자는 격이다. ISDS로 주로 피해를 입는 나라는 신흥국이다. 19세기 식민지 제국주의의 더 세련된 버전이 ISDS라고 볼 수도 있다. 반혁명이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도 신흥국 진출 시 ISDS로 이득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이익이다. ISDS로 한국 정부가 피해를 입으면 그 피해는 세금, 즉 전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가 승리한 사례도 있다. 지난 1일 정부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 이민자 A씨가 재개발 과정에서 자신 소유인 토지 수용보상 과정이 한미 FTA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ISDS 사건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ISDS 첫 승소 사례다. 

이해영 : 한미 FTA 내 ISDS로 그거 한 건 승소했다. 승소 사례 알린다고 정부가 홍보하는 모습이 우습다. 

프레시안 : ISDS가 있어야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활발해진다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영 : 과거 BIT 체결이 활발할 때 정부의 논리가 그랬다. 아니다. ISDS가 있다고 외국인이 더 열심히 투자한다는 근거가 없다. 여태 한국 정부가 88개의 양자간 BIT, 13개의 FTA에 투자자 보호 조항을 뒀다. 그 뒤로 외국 자본이 더 들어왔나? ISDS가 없더라도 이익이 기대된다면 외국 자본은 들어오게 돼 있다. ISDS가 이끄는 외국자본이라고 해 봤자 대부분은 단기 투자 목적의 사모펀드다. 

▲ ISDS 제소 건수는 1997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했다. 올해 <세계투자보고서> 캡처. ⓒUNCTAD 제공

ISDS는 표준 아니다

프레시안 : ISDS의 문제가 어떠하든, 이제 글로벌한 협정 수단의 하나인 점은 분명하다. 나쁘다손 쳐도 '글로벌 표준'이라는 구호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 법한데?

이해영 :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작성한 2019년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제기된 ISDS가 71건이었고, 그 중 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근거해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한 건은 3건이었다. 피해만 글로벌하다. 

<세계투자보고서>를 보면 1997년 이후 ISDS 제소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지역적으로 보면 ISDS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곳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다. 이들 지역이 전체 피 제소 지역의 26%다. 다음이 남미(22%)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15%)다. 초국적 자본이 활발히 침투하는 지역이 ISDS의 주요 표적임을 알 수 있다. 

경제섹터별로 보면, 석유·가스·광업 분야에 ISDS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다음이 에너지 분야다. 초국적자본이 자원이 풍부한 개도국에 들어갈 때 ISDS를 주로 사용함을 알 수 있다. 

약소국만 당하는 게 아니다. 당장 한국도 세계적 규모의 경제 국가이지만 여러 차례 ISDS 제소 피해를 입고 있다. 독일도 피해를 입은 적 있다. 메르켈 총리가 탈 원전 정책을 추진할 때 폐쇄키로 한 원전 중 하나에 스웨덴 에너지 기업이 투자했다. 이 기업이 에너지헌장조약(ECT) 상 ISDS를 활용해 독일 정부를 제소했다. 생각지도 못한 탈원전 비용이 ISDS로 인해 발생한 셈이다. 한국도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ISDS로 인한 비용을 물어야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ISDS는 자유무역을 정말로 촉진하나?

이해영 : 우선 용어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한미 FTA 체결로 인한 논란이 일 때 한국에서는 ISD라고 불렀는데, 국제적으로는 ISDS가 맞다. ISDS는 '투자자-국가 분쟁(ISD)'을 '해결(ISDS)'한다는 뜻이다. 분쟁 해결 방법으로 중재를 선택한다는 제도다. 우리말로 굳이 익숙한 표현 방식으로 번역하자면 '투자자-국가 중재 사건' 정도가 적절할 듯하다. 

중재는 재판이 아니다. 우리가 ISDS로 인해 무대에 오르는 중재소를 두고 ‘중재재판소’라고 말하기 쉬운데, 엄격히 말해 중재소(arbitration)는 법원(court)과 구분해야 한다. ISDS 중재소는 결과에 따른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지만 그 과정은 공개하지 않는다. 비공개이므로 판례구속성도 없다. 공적 영향력이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삼심제도 아니고 단심으로 끝난다. 되돌릴 수 없다. 

사인 간 상사 분쟁에서나 쓰는 방법을 사인이 아닌 정부, 즉 공적 기구에 억지 적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말이 안 된다. 공공을 대표하는 정부라는 기구가 기껏 사익 추구 집단과 같은 자리로 끌려 내려와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ISDS는 자유무역 촉진과 관련 없다. 

프레시안 : 사적 투자자 권익을 위해 국가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뜻인가?

이해영 : 그렇다. 글로벌 차원에서 ISDS가 공공 영역을 심각하게 위축한다. 초국적 자본의 힘이 이제 정부마저 압도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매우 위험한 경향이다. 

프레시안 : 신자유주의 범람이 ISDS 남용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하나?

이해영 : 그렇다. 물론 그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세계가 깨달아감에 따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견제론도 커지고 있다. RECP 사례가 대표적이다.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오른쪽 네번째),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오른쪽 다섯번째)이 지난 6월 2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참여연대 등 관계자들과 함께 ISDS 개혁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ISDS 폐기토록 기존 협정 재협상해야

레시안 : RCEP 회원국의 ISDS 제외 결정을 계기로 한미FTA, 한EU FTA 등도 재협상해야 한다고 보나?

이해영 : 궁극적으로는 그래야 한다. 그런데 RCEP에 미국이 들어왔다면 이야기해 볼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니 어렵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항을 미국이 뺄 이유가 없다. 

지금껏 모든 ISDS 중재 결과를 보면, 결과의 70% 정도가 투자자 승리였다. 정부 승리는 겨우 30% 정도다. 글로벌 기업을 많이 보유한 미국, EU 등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프레시안 : ISDS에 관한 국제 사회의 비판 목소리가 커졌다. 주로 어떤 대안이 논의되나?

이해영 : ISDS 개혁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은 ISDS 전면 폐지다. 두 번째는 절차 개선이다. 삼심제를 도입하거나 중재 과정을 공개하는 식의 개선이 그것이다. 세 번째는 EU가 시도하는 국제투자법원 설립이다. 우리 시민 사회는 주로 앞선 두 가지 방법(폐지, 개선)을 고민한다. EU식 개선 방안은 분쟁 남발만을 제어할 뿐, 투자자의 특권은 그대로 둔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이해영 : 첫째, ISDS 조항을 폐기하도록 기존 FTA 재협상하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절차라도 개선하라. 

일단 한미 FTA를 비롯한 여러 FTA의 독소조항을 걸러내야 한다. RCEP 사례에서 봤듯, 국제적으로 저항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등에 업고 한국 정부도 이제는 국익을 위해 움직여야 할 때다. 

RECP 사례에서 드러난 건, 글로벌 차원에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ISDS로 절대적 이익을 유지하려는 목소리, 여러 신흥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반대의 목소리 사이에서 한국처럼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흐름도 생겨날 것이다. 

지금껏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주도한 세계화 흐름에 반하는 목소리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금융 세계화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패배자들이 내는 목소리도 이 같은 흐름에서 함께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런 흐름이 잘못돼 인종주의와 결합하고 극우주의와 결합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여러 목소리가 중층적으로, 상호 소통 없이 동시에 나오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이제 더는 ISDS로 대표되는 폭력적 지배 매커니즘이 절대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도 그간 진행된 폭력적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어디인가를 검증해야 할 시기에 다가서도 있다. ISDS 문제는 하나의 리트머스다. 

과거 한미 FTA 체결을 정부가 추진할 때, 여러 토론장에서 청와대 관계자들이 ISDS 문제를 지적하는 우리를 두고 세계화를 반대하는 이들이라고 모욕했다. 다시 토론하고 싶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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