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우리를 믿지 마세요
[경향신문] 세월호 뉴스로 신문이 도배되던 2014년 어느 날. 후배의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제법 큰 특수수사를 벌여 여럿 구속시켰는데, 구속기간을 연장하려고 하자 부장이 “세월호 뉴스를 덮어야 하니 바로 기소하고 보도자료 뿌려라. 보완수사는 기소 후 해라”고 했다던가.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후배가 항의하여 구속기간을 연장하였고 보도자료는 수사가 마무리된 뒤 배포되었습니다. 일선 지검에 보도거리를 빨리 생산하라는 지시가 명시적으로 내려오지는 않았을 터. 보도자료 배포시기 즉, 기소시점을 정함에 있어 인사권자의 심기를 알아서 경호하는 우국충정(?)에 황당했습니다. 그 간부의 놀라운 배려는 수사 결론을 정할 때도 일상적으로 발휘되지 않았을까요.
지난 7월, 중앙지검 4차장으로 발령 난 한석리 검사에 대해 “2012년 당시 중앙지검 형사1부 검사로 이명박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저 부지 헐값 매입 사건을 맡았다. 당시 무혐의 결정했지만 대검의 무혐의 지시에 맞서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일화가 미담으로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내곡동 사저 사건 불기소 결정 당시, 저는 중앙지검에 근무하였기에 그때 이미 알고 있었지요. 무법천지 아수라장을 목도하며 얼마나 황망하고 참담했겠습니까. 검사선서문에서 요구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와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정함을 가진 검사들은 현실에 없었습니다.
수사팀이 무혐의 이유가 써지지 않는다고 버틴 걸 괘씸해하는 수뇌부의 조치로 인사 불이익을 받고, 결국 무혐의 결정했다며 정치검사로 욕도 먹는 수사팀을 바라보며, 검사들은 “버티려면 끝까지 버티고, 엎드리려면 잽싸게 엎드려야 한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해 12월. 저는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을 위해 공판검사 출입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저는 끝까지 버티기로 결심했었으니까요.
상명하복이 지고지순의 대명제인 양하는 조직문화가 팽배한 검찰에서, 2013년 국감장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사건 수사 내압을 폭로하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내곡동 사저 사건 한석리 차장 같은 검사조차 드물어 언론에서 강직한 검사로 소개되고 있고, 검찰의 초라한 현실에서 그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기소해야 할 사건을 상사의 지시에 따라 불기소 결정한 검사는 더 이상 검사일 수 없지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할 때,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을 기소유예해버렸던 윤 총장 등 위법하거나 부당한 내압에 결국 타협한 검사들, 이런 아수라장을 알고도 동조하거나, 못 본 척 외면하고 침묵하거나, 막지 못했던 저를 비롯한 모든 검사들이 과연 막중한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요. 검찰에 검찰권을 위임한 주권자들 앞에 저는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 강행으로 중징계를 받고 징계취소소송을 진행하며, 당황했었지요. 검찰이 정치검찰임을 공연히 자백할 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무죄이므로 무죄라 말하려는 제 입을 틀어막으려던 수뇌부의 위법한 지시를 변명하기 위해 “증거가 부족할 경우 무죄 판결을 해야 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자기반성이 초래할 파급 효과, 검찰 내부 여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장황하게 쓰인 준비서면을 읽으며 낯이 화끈거렸습니다. “준사법기관인 검사는 법관과 동일하게 오로지 법의 실현을 우선해야 한다”는 반박서면을 바로 제출했지만, 밀려드는 절망까지 밀어내지 못했습니다. 검사는 오로지 법과 원칙만을 고려해야 함에도, 검찰이 오랜 세월 정치적 고려를 하다 보니 이를 당연시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서면으로 확인했으니까요. 암담했고, 여전히 암담합니다.
검찰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다가, 검찰을 권력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외압을 흔쾌히 내압으로 전환시켜 검찰권을 오남용하는 수뇌부의 변신은 검찰공화국을 사수하는 카멜레온의 보호색과 같습니다.
검사선서문에서 천명하는 바와 같이 검사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함,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함을 갖추어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합니다. 그런 검사임을 전제로 주권자는 검찰권을 검찰에 부여했지요. 만약, 현실의 검사가 선서와 다르다면, 이런 검사들이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을까요.
검찰은 정권교체 때마다 변신하며 권력의 총애를 받거나 여론의 환호를 받아 검찰권 사수에 성공하곤 했지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넘도록 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언제까지 속으시겠습니까. 이제라도 검찰의 화려한 분장술 너머의 진실을 직시하고 검찰권을 나누고 견제하는 개혁이 조속히 추진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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