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문재인 시대'를 건너는 법

강천석 논설고문 2019. 9. 27. 23: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 위한 最適 선택과 항상 거꾸로 가는 정권
국민 분열 시키고 선진국行 기차 또 놓치면 朝貢국가로 후퇴
강천석 논설고문

동양의학에선 기(氣)의 순환을 중요시한다. 기가 막히면 울화(鬱火)가 되고, 울화가 쌓이면 목숨을 위협하는 병통(病痛)이 된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도 기가 잘 돌아야 한다. 그래야 궤도를 이탈한 정치와 정책이 정상으로 빨리 복원(復元)된다. 대통령과 국민이 불통(不通)이면 기가 찰 일이 반복되고 끝내는 기막힌 사태가 닥친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국민은 두 쪽으로 나뉘었다. 정권 지지파와 반대파의 분류법이 아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늘 놀라는 사람'과 '항상 태연한 사람'이다. '늘 놀라는 사람'은 이번 '조국 사태'에서 쓴잔을 거푸 세 잔이나 마셨다. 장관 지명·임명 강행에 이어 미국에서 돌아와 검찰을 나무라고 조국씨를 감쌀 때 그때마다 뒤통수를 맞았다.

예측 실패의 원인은 대통령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야당 대표 시절 했던 말과 행동에 구속받지 않는다. 청문회에서 혼났던 사람이 일은 더 잘한다며 임명장 주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대통령은 '국가 지도자'와 '파당(派黨)의 영수(領袖)'란 두 모자를 골라 쓴다. '국가 지도자 모자'는 간혹 외국 방문 때 꺼내 쓴다. 북핵 문제·역사 문제나 대미(對美) 대일(對日) 관계처럼 '국가 지도자 모자'를 써야 할 때도 '파당의 영수 모자'를 쓰는 장면을 자주 본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국민'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대통령은 귀국 일성(一聲)으로 조국 수사와 관련 '검찰권 행사 방식과 수사 관행에 대한 개혁'을 주문했다. 이재수 전 보안사령관이 검찰에 불려다니며 곤욕을 치르다 빌딩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을 때 이런 말 들은 적이 있는가. 대통령이 '내 편' 민노총을 향해 경제 회생(回生)을 위한 노동 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항상 태연한 사람'은 누구인가. 첫 부류는 대통령과 함께 '팥으로 메주를 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젓가락으로 물을 떠먹어도 그대로 따라 한다. 한국 법학 교과서 법률 용어의 90% 이상이 120여년 전 일본인들이 독일어 법학 서적과 씨름하며 만든 용어들이다. 그런 교과서에 밑줄을 쳐가며 사법고시 공부했던 사람들이 일제 잔재(殘滓) 운운하며 죽창(竹槍)을 들고 설치면 덩달아 들썩이는 유형이다.

그들 말고도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항상 태연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현 정권 모습에 좌절을 느끼고 나라 안위(安危)를 걱정한다. 그들의 불안은 구체적이다. 한국 땅넓이(10만㎢)는 중국의 96분의 1이다. 인구(5170만명)는 저장성과 (5657만명)과 윈난성(4801만명) 사이다. 중국 GDP는 2010년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일본 면적은 38만㎢로 한국의 3.8배다. 인구는 한국의 2배가 넘는다. 1968년 서독을 앞질러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자리에 올라 42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세월은 무시 못한다. 그 기간 동안 땅밑으로 스며 저장된 경제 저력(底力)차이는 외형(外形)의 국력 차이보다 훨씬 크다. 인구가 늙어간다지만 한국은 더 빨리 노령 국가로 미끄러지고 있다.

두 나라 안보 전략은 한국만큼 복잡하지 않다. 중국은 미국에 버티면 되고 일본은 미국과 같이만 가면 된다. 한국은 그럴 수가 없다. 두 나라 사이에서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 하지 않고 자존(自尊)을 지키며 국가 진로를 뚫어야 한다. '인간 자원'과 '시간 자원'을 지금보다 몇 십배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도리밖에 없다. 중국의 28분의 1인 국민을 이념·지역·세대로 다시 쪼개면, 일본보다 100년 늦게 출발한 선진국행 열차 시간을 또 한번 놓치면, 그 옛날 조공(朝貢)국가 신세로 굴러떨어진다.

대통령의 어떤 말 어떤 행동에도 놀라지 않고어떻게 대통령의 선택을 족집게처럼 읽어낼 수 있을까. 대답이 기가 찬다. '먼저 무엇이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최적(最適)의 선택인지 추론하고 그걸 거꾸로 뒤집으면 이 정권 진로 예측에 빗나가는 법이 없다.' 노동 개혁 회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도 그렇고 조국 사태도 예측 오차(誤差) 범위 안이다. 하긴 경제의 좋은 지표 아래에는 '최장기 하락(下落)' 나쁜 지표 아래에는 '최고(最高) 상승'이란 빨간불이 요란한데 '우리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대통령 아닌가.

우리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통역이 필요한 시대를 산다. ‘객실 안에 잠자코 기다리라’는 선장의 선내(船內)방송이 들리면 무조건 탈출해야 하는 시대만큼 위태로운 시대가 어디 있겠는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