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양자컴퓨터, 슈퍼컴 능가했나 '양자우월성 달성' 논란
2019년은 차세대 컴퓨터로 주목 받고 있는 양자컴퓨터 원년으로 기록될까.
구글의 연구원이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로 1만 년 계산해야 풀 수 있는 복잡한 수학을 단 3분 20초(200초) 만에 풀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언론을 통해 유출돼 학계와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슈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산 성능을 보이는 것을 ‘양자우월성’이라고 한다. 양자컴퓨터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기준으로 보는데, 구글이 사상 처음으로 이 단계에 도달했다고 밝힌 것이다. 구글은 이런 내용이 담긴 문서를 이달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언론을 통해 내용이 공개되고 논란이 커지자 삭제한 상태다. 구글은 이후 지금까지 문서의 존재와 사실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논란은 20일 미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구글이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다고 밝힌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했다. 기사는 지금은 사라진 NASA의 문서를 인용해 구글이 코드명이 ‘시커모어(플라타너스라는 뜻)’인 양자컴퓨터 칩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구글은 NASA와 함께 양자우월성 확인을 위한 연구를 하기로 지난해 합의한 바 있다. 구글은 미국의 기업 IBM과 함께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연구개발을 수행 중인 기업이다. 두 기업은 지난해 각각 53(IBM)~72(구글)개의 양자 정보단위(양자비트 또는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시커모어는 53개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시커모어는 난수발생기를 통해 난수를 만든 뒤 이것이 정말 난수인지 증명하는 단순하고 제한적인 작업을 하는 컴퓨터다. 구글이 자체 실시한 성능 시험에서 시커모어는 3분 20초 만에 이 난수 증명 계산을 해냈다. 구글은 이 계산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인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서미트’로도 1만 년이 걸리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서미트는 2019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슈퍼컴퓨팅 콘퍼런스가 발표한 세계 슈퍼컴퓨터 성능 순위에서 148페타플롭스(PF)의 연산속도를 발휘했다. 1PF는 1초에 1000조 개의 계산을 할 수 있는 속도다.
●최강 슈퍼컴으로 1만 년 걸리는 연산 3분 20초 만에...경쟁연구자는 "말도 안 돼" 부정
다른 양자컴퓨터 연구기업과 연구자들은 대체로 구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구글과 함께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IBM의 다리오 길 IBM연구소장은 23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없다. 그냥 틀린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20일 미국의 기술잡지 ‘MIT 테크놀로지리뷰’와 23일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만약 구글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아주 특수한 문제를 수행할 수 있는 특수한 컴퓨터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터넷에 복사본으로 남아 있는 NASA 문서에 따르면, 구글 연구자는 이 시스템이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양자 컴퓨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구글의 말이 사실이라도 단 하나의 과제를 수행하도록 특화된 전문 컴퓨터일 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구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비록 특정 과제에 특화된 전문 컴퓨터일지라도 양자컴퓨터 개발 역사에서는 커다란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은 크게 두 방향에서 진행돼 왔는데, 그 한 축을 담당하는 ‘이정표’가 바로 양자우월성 도달이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는 관측 전까지 양자가 지닌 정보를 특정할 수 없다는 '중첩성'이라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이용한 컴퓨터다. 물질 이온, 전자 등의 입자를 이용해 양자를 만든 뒤 여러 개의 양자를 서로 관련성을 지니도록 묶는다(이런 상태를 '얽힘'이라고 한다). 이렇게 만든 양자를 제어해 정보 단위로 이용한다. 이 정보단위가 큐비트다. 디지털의 정보단위 비트는 0 또는 1의 분명한 하나의 값을 갖지만, 양자정보는 관측 전까지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하기에 이들이 여럿 모이면 동시에 막대한 정보를 한꺼번에 병렬로 처리할 수 있다. 2개의 큐비트를 예로 들면, 기존의 비트는 00, 01, 10, 11의 네 정보값 가운데 하나만 처리할 수 있지만, 큐비트는 네 개를 모두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공학자와 물리학자는 큐비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단계다. 대부분 기초 중의 기초인 양자의 정보전달, 처리 단위인 큐비트를 만들고 오래 유지하며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물질 원자를 전기적 성질을 지닌 이온으로 만든 뒤 이들을 하나씩 분리해 존재할 수 있도록 자기장으로 가두는 ‘이온트랩(덫)’ 방식을 연구하는 연구자도 있고, 극저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 사이에 금속을 끼운 전자소자(조셉슨 소자) 내부에서 전자 두 개가 하나의 양자처럼 쌍을 이뤄 금속을 통과하는 현상을 이용해 계산을 하는 초전도 소자 방식을 쓰는 연구자도 있다. 다이아몬드 안의 결함을 이용해 양자 정보를 제어하는 다이아몬드 방식, 반도체 양자점을 이용해 양자를 구조적으로 가두는 방식을 쓰는 방식 등도 널리 연구되고 있다. 서울대는 반도체 양자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초전도 소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다이아몬드 방식과 빛을 동시에 이용하고 있다. 구글과 IBM은 초전도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개발하고 있는 양자컴퓨터 큐비트는 수~10여 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IBM은과 구글은 각각 53 개~72여 개의 큐비트를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기업에서는 논문을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어느 정도 기술 개발이 이뤄진 상태라고 보고 있다. 구글과 IBM은 이런 큐비트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계산 성능을 높여 양자우월성에 먼저 도달하고자 경쟁해 왔다.
●올해 5월, 구글은 이미 양자우월성 도달을 예상했나
양자우월성 도달이 아주 먼 일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구글 내부에서는 2019년을 양자우월성 도달의 원년으로 믿었다는 정황도 발견된다. 올해 6월 물리학 전문잡지인 ‘콴타 매거진’에 따르면, 하트무트 네벤 구글 양자인공지능연구실장은 올해를 양자우월성 도달의 원년으로 파악했다. 그는 5월 열린 구글 양자 봄 심포지엄에서 “양자컴퓨터의 정보 처리 능력은 기존 무어의 법칙과 같은 기하급수가 아니라, ‘이중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 4, 8, 16 이렇게 증가하는 게 기하급수라면, 4, 16, 64, 256 이런 식으로 증가하는 게 이중기하급수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정보 처리 속도가 가능해진다면, 양자우월성 도달도 생각보다 빠를 수 있다. 실제로 네벤은 콴타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양자우월성을 달성할 정확한 시기는 모른다”면서도 “2019년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만약 구글이 정말 양자우월성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한계는 남는다. 우선 길 소장이 지적한 대로 범용 컴퓨터는 아니다. 특수 목적의 양자컴퓨터로는 아주 제한된 성능밖에 발휘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양자컴퓨터에는 양자우월성 외에 도달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오류가 많은 현 상황을 개선해 신뢰할 수 있는 연산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주변 환경에 따라서 큐비트의 상황이 크게 영향 받는다. 오류 정정 기능도 약하다. 양자컴퓨터의 오류 수정 기능은 많은 기초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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