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구충제로 암 치료? 약사회·정부 "검증되지 않은 약 위험"

조승한 기자 2019. 9.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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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비롯한 애완동물 구충제인 ‘펜벤다졸’을 복용해 말기 암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미국 환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담은 유튜브가 암 환자 커뮤니티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9월 4일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언론 보도를 소개한 동영상이 유튜브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이같은 내용이 암 환자 커뮤니티에서 확산하면서 일부 약국에선 펜벤다졸이 품절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약사회는 23일 사람에게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암 환자의 펜덴다졸 복용 자제를 권고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9월 4일 유튜브에 소개된 동영상은 올해 4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지역 언론인 'KOCO뉴스'가 소개한 내용이다. 조 티펜스라는 미국의 말기 암 환자가 펜벤다졸을 복용해 암 완치에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동영상은 23일 기준 조회수 170만을 돌파했다. 

펜벤다졸은 세포 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해 기생충을 사멸시킨다. 실제로 이같은 메커니즘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문제는 아직 실험실 연구와 동물실험에서 가능성을 본 데 그친 상황이라는 점이다.

KOCO 뉴스와 티펜스의 블로그에 따르면 티펜스는 2016년 소세포폐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절망에 빠져 있던 중 2017년 1월 한 수의사의 조언을 듣고 펜벤다졸을 복용해 완치됐다고 주장했다. 티펜스는 2017년부터 블로그에 펜벤다졸과 비타민 E, 강황의 성분인 커큐민, 의료용 대마인 CBD 오일 등을 함께 복용하는 요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요법을 따라 해 완치됐다고 알려온 환자만 5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티펜스는 블로그에 “나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며 약을 처방하지도 않는다”며 요법을 따르는 데 대한 책임을 거부했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전할 뿐”이라며 “거대 제약사가 언젠가 이 대안에 주의를 기울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너무 많은 문의가 들어온다며 블로그를 잠정 중단하고 대신 페이스북에 암 환자를 위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펜벤다졸은 개나 고양이의 기생충을 잡는 데 쓰이는 동물용 구충제다. 티펜스는 이를 복용하는 요법을 소개하며 이 요법을 통해 완치된 환자가 5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조 티펜스 블로그 캡처

펜벤다졸은 개나 고양이의 회충 등 내부 기생충을 잡는 데 쓰이는 동물용 구충제다. 한국에서는 동물용 약제로 허가를 받았다. 인간 구충제인 메벤다졸 등과 함께 벤조이미다졸계의 약제다. 벤조이미다졸계 구충제는 기생충의 피부와 장 세포에 있는 미세소관 단백질의 형성을 억제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 약에 노출된 기생충은 세포 기능이 떨어지며 생명 활동에 필요한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이 약해지고 결국 굶어 죽게 된다.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는 이 원리를 활용한다. 가장 최근 연구는 타파스 무코파디 인도 펀자브대 국립인간게놈연구센터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한 연구다. 무코파디 교수팀은 펜벤다졸이 미세소관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네이처에 펜벤다졸의 효능이 발표되었다고 소개했으나 사이언티픽 리포츠는 네이처를 발간하는 학술 기업 ‘스프링거네이처’가 운영하는 오픈액세스(무료) 학술지로 다른 학술지다.

미세소관은 세포의 구조를 이루고 세포 이동과 세포 내 물질이동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미세소관은 세포 분열과 세포의 사멸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항암요법의 주요 표적 중 하나다. 무코파디 교수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키운 인간 비소세포폐암 세포주에 펜벤다졸을 투입했더니 세포가 사멸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항암효과는 암세포를 이식한 쥐에게서도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미세소관에 미친 영향 뿐 아니라 정상 세포보다 포도당 소비가 몇 배 높은 암세포의 포도당 흡수를 막는 것도 암세포 사멸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보고했다.

무코파디 교수는 이전에도 구충제가 암세포를 사멸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코파디 교수는 2002년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일할 당시에도 국제학술지 ‘임상 암 연구’에 메벤다졸이 암 성장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한 논문과 비교해보면 펜벤다졸이 메벤다졸로 바뀌었을 뿐 세포주와 쥐를 활용한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 

타파스 무코파디 인도 펀자브대 국립인간게놈연구센터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한 연구다. 무코파디 교수는 펜벤다졸(FZ)을 이용한 경우 실험실에서 암 세포가 사멸하는 것을 관찰했고, 암 세포의 크기도 줄어들었다며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이언티픽 리포츠 제공

무코파디 교수는 “인간에 대한 유망한 결과를 나타내는 동물의약품을 활용하면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동물의약품을 활용하면 임상 단계를 단축할 수 있어 동물의약품에서 약물 후보를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다만 지금까지 펜벤다졸을 비롯한 동물용 구충제의 암치료 효과를 실험실 연구와 동물실험을 통해 검증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가 진행된 사례는 없다. 무코파디 교수의 연구가 이후에 임상 연구로 이어졌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줄리에 왓슨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연구팀은 림프종을 이식한 쥐에게 펜벤다졸과 비타민을 함께 먹였더니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008년 국제학술지 ‘미국실험동물학회지(JAALAS)’에 발표했다. 다만 펜벤다졸을 단독으로 먹었을 때는 효과가 없었다.

이같은 연구결과와는 정반대의 동물 실험 연구 결과도 있다. 사라 록웰 미국 예일대 방사선치료과 교수 연구팀은 2012년 같은 학술지에 유방암 쥐 모델에 펜벤다졸을 투입했을 때는 효과가 없다고 발표했다. 같은 학술지에서도 펜벤다졸의 효과를 두고 연구결과가 엇갈린 것이다. 오히려 동물실험에서 암을 촉진한 사례도 있다. 일본 연구팀은 1999년 ‘독소병리학’에 펜벤다졸이 쥐 실험에서 간암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치료제가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말기 암 환자의 심정은 이해하나 검증되지 않은 약을 이용하는 것은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펜벤다졸 품절 사태가 이어지자 대한약사회는 20일 전국 회원약국에 펜벤다졸 성분의 동물용의약품 판매 관련 주의를 당부했다. 약사회는 “펜벤다졸은 항암활성에 대한 일부 연구 및 복용사례가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펜벤다졸을 암 치료제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항암활성에 대한 연구는 실험실 연구 혹은 동물실험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말기암 환자 사례 역시 펜벤다졸만 복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약사회는 “펜벤다졸이 동물에게 투여시 타 약물에 비해 안전성이 우수하지만 사람에 대한 용법과 용량이 검증된 약물은 아니다”며 “범혈구감소증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을 보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범혈구감소증은 인체 내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이 모두 감소하며 온몸의 기능이 저하하는 병이다.

김성진 대한약사회 동물약품위원장은 “사람에 대한 효능과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단순히 동물실험 자료만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실험실 실험과 동물실험, 인체 실험 1·2·3상을 거쳐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인체용 의약품으로 허가된다”고 강조했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회장은 “암과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신 환자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암을 치료할 목적으로 동물용의약품으로 허가된 제품을 임의로 복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며 “사람에 대한 부작용 사례 또는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복용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한 발 나아가 암환자가 펜벤다졸을 절대 복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3일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과 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이라며 “사람에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음으로 암 환자는 절대 복용해서 안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유튜브에서 다룬 논문은 인체가 아닌 세포 대상의 실험 연구”라며 “현재까지 환자 대상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라고 밝혔다. 특히 치료법이 마땅치 않은 말기 암 환자들이 주로 대체요법을 쓰는 것을 우려하고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항암제로 허가를 받지 않은 펜벤다졸을 절대 복용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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