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로 '천인갱'에 묻힌 조선인들.. 죽어서도 못 돌아왔다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중국 최남단의 섬, 하이난(海南).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이 섬은 중국에서 우리의 제주도와 비슷하게 인식되는 곳이다. 면적은 제주도보다 20배 정도 넓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은 하이난은 화려한 휴양시설들이 들어서며 ‘천국 같은 휴양지’로 변모하고 있다. ‘천국’ 같은 현재 겉모습의 역사지층 아래에는 ‘지옥’ 같은 과거의 삶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덮으려는 듯 맹렬히 탈바꿈하고 있다.

한여름 무더위가 한창인 7월 하이난 남부에 있는 싼야(三亞)공항에 내리는 순간 동남아시아에서 접하던 습함이 그대로 전해왔다. 하이난은 위도상 베트남 하노이보다 아래다. 하이난 남쪽 바다 건너편이 베트남의 다낭이다.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가만히 있어도 온몸은 땀범벅이 된다.

“일본군이 조선인을 나무에 매달아 막대기로 머리, 몸, 다리 등 온몸을 사정없이 때리는 일이 매일 벌어졌대요. 말라리아나 콜레라 등 병에 걸린 사람들은 어딘가로 끌고 갔는데, 돌아온 이들이 없었고요. 다 불에 태워 죽였다고 하더군요.”
현지인의 얘기는 일제 만행의 일부에 불과했다. 마을 초입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벽돌로 둘러싸인 공터에 이른다. 바로 하이난을 조선인에게 ‘지옥’으로 만든 ‘천인갱’이다.

땅 아래 묻혀 있는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3년부터 ‘남방파견보국대’란 명목으로 조선 땅에서 하이난으로 강제동원된 이들이다. 일제는 1939년 하이난을 침공해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원료 보급 기지로 활용했다. 철광석 광산, 철로, 항구, 비행장 등을 건설할 노동력 충원을 위해 조선 각지 형무소에서 징발된 ‘수형자’ 2000여명을 하이난으로 강제로 보냈다. 이들 상당수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에 저항한 조선인을 부정적으로 이르던 말)이었다.
천인갱에 묻힌 이들은 강제노역 도중 숨진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는 패망 후에도 조선인에게 해방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 학대하고 살해한 후 천인갱에 묻었는데, 전체 매장된 조선인이 1200∼1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의 일제침략 기록자료인 ‘일군해남성침공실록(日軍海南省侵攻實錄)’에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한 뒤 고립된 일본군 부대가 조선인 징용 1000여명을 동원, 싼야시 난딩촌 부근의 산기슭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은닉하면서 이 작업에 동원된 조선인들에게 은닉장소 옆에 굴을 파게 한 뒤 총알을 아끼기 위해 이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매장했다’고 기록돼 있다.
◆사업가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천인갱’
천인갱이 그나마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하이난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인 문용수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이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아무 연관이 없던 그였지만, 하이난을 찾아온 천인갱 생존자와 만나 사연을 접한 뒤 1990년대에 관련 부지 3만3000㎡에 대한 토지사용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기업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토지 사용료 등을 제때 내지 못해 중국 정부가 일부 토지의 사용 허가를 취소해 현재는 약 1600㎡로 줄었다.

하이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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