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사물극장] [116] '무용의 신'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빵'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2019. 9. 19.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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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무용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기여하는 바가 작은 쓸모없는 활동에 속한다. 그 둘은 오직 몸의 도약과 정신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시와 무용은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에 순교하기로 작정한 인간의 덧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바츨라프 니진스키(1889~1950)의 양친은 러시아의 유명한 무용수였다. 아버지가 바람나서 가족을 버렸다. 어머니는 세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푼돈을 받으며 서커스단 무대에 섰다. "우리에겐 빵이 없었다." 빵은 생물학적 생존의 최소 조건이다. 어린 니진스키는 굴욕을 견디는 어머니를 보며 오열했다. "나는 어렸을 때 이미 삶의 모든 것을 이해했다."

니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무용 학교에 들어갔다. 황실 전속 무용단에 입단해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무대에 서며 천부 재능을 드러냈다. '무용의 경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신이 내린 재능은 무용단 동료의 시기와 음해를 불러들이며 그를 괴롭힌 원인이었다.

니진스키는 댜길레프의 발레단에 들어갔다. 천재 무용수와 수완 좋은 제작자의 만남은 현대 무용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댜길레프의 러시아발레단이 유럽 무대를 휩쓰는 동안 니진스키의 명성은 치솟았다. 돈과 명성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댜길레프가 "내 몸을 사랑하는 걸 허락했다." 어머니가 빵을 위해 굴욕을 감수했듯이 그도 수모를 감수했다.

니진스키는 댜길레프를 떠나 발레단을 꾸렸으나 경영 미숙으로 실패했다. 끔찍한 세상에 강림한 '무용의 신'은 29세 때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30년 동안 여러 요양원을 전전했다. 영광은 짧고, 불행은 길었다. 1950년 4월 8일 니진스키는 영국 런던의 한 정신병원에서 긴 터널 같은 자폐의 삶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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