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은퇴뒤에도 진범 쫓던 73세 老형사 "이제야 발 뻗고 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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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발 뻗고 주무셔도 됩니다."
이 반장은 "현장에서 선배님이 채취한 유전자(DNA)와 일치한 수형자가 나왔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하 전 총경에게 전했다.
하 전 총경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10차례 사건 중 4차 사건부터 9차 사건까지 현장에서 직간접으로 수사를 담당한 수사팀의 핵심이었다.
하 전 총경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범인을 잡아 당장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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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6시경 하승균 전 총경(73·사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의 이정현 반장이었다. 이 반장은 “현장에서 선배님이 채취한 유전자(DNA)와 일치한 수형자가 나왔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하 전 총경에게 전했다.
하 전 총경은 이 반장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건 수사에 미치다시피 매달렸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었다. (범인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세상에 정의가 있구나. 신이 계시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 전 총경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10차례 사건 중 4차 사건부터 9차 사건까지 현장에서 직간접으로 수사를 담당한 수사팀의 핵심이었다. 요즘처럼 도로 등에 폐쇄회로(CC)TV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산과 들을 누비며 범인의 족적을 찾으려 애썼다. 시신 주변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버려진 우유곽 등 모든 물건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로 보냈다. 그는 “피해자 옷에 정액이 떨어져 있으면 그 부분을 일일이 오려서 국과수로 보냈다.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고 했다.
하 전 총경은 시신을 수습할 때마다 범인을 잡아 당장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잔혹한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를 보며 잡아야 한다는 분노에 휩싸였고, 그 분노를 억누르며 피해자가 결박된 모습, 입에 재갈이 물린 모양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범인을 쫓았다고 했다. 이춘재가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9차 사건의 피해자 김모 양의 마지막 모습도 똑똑히 기억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인 김 양을 산에 끌고 가서 묶어 놓고 피해자의 필통에서 꺼낸 면도칼로 시신의 일부를 훼손했다. 난 시신을 보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당시 용의선상에 올라 있지 않았다. 하 전 총경은 “그놈은 수사선상에 전혀 없었던 놈이다. 그 당시 용의자의 DNA를 모두 채취했는데, 당시 용의자로 특정된 사람 중에는 없었다”고 했다.
하 전 총경은 여전히 피해자 가족들만 떠올리면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1986년 12월 사망한 4차 사건 피해자 이모 씨(23·여)의 가족을 마지막으로 만난 2006년이 떠오르는 듯 하 전 총경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렸다. 하 전 총경은 “제가 그때 가족들을 만나 ‘잡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며 “공소시효를 늘려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전 총경은 2006년 2월 퇴직 후에도 범인을 추적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보 전화가 걸려오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범행 수법이 당시와 비슷한 범죄가 발생했다면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하 전 총경은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는 자전 에세이를 2003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아직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다’란 부제가 붙은 책이었다. 그는 1971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뒤 30년 넘도록 강력계 경찰로 생활했다. ‘하남 여대생 공기총 피살사건’ ‘포천 농협 총기 강도 사건’ 등의 수사는 미제로 남기지 않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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