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일 부산 서민들을 울린 희대의 금융사기 '삼부파이낸스' [오래 전 '이날']

송윤경 기자 2019. 9. 1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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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타뉴스][오래 전 ‘이날’] 9월11일 부산을 울렸던 삼부파이낸스 사기사건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9월11일 잘 나가던 금융사 ‘삼부파이낸스’에 대대적 수사 돌입한 검찰

혹시 ‘삼부파이낸스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1996년 부산에 세워진 삼부파이낸스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남지역에 기반을 둔 부실 은행·종합금융사가 사라지면서 그 틈새를 파고들어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20~30%에 이르는 고금리와 원금보장 약속 때문에 투자자들이 많이 모여들었지요. 당시로선 생경한 ‘파이낸스 기법’을 내세워 선진금융회사라고 광고해왔지만 알고보니 ‘대형사기’를 친 것에 불과했습니다. 삼부파이낸스 투자자들은 지금까지도 피해금액을 보상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년 전 오늘은 대검 중수부가 나서서 대대적으로 삼부파이낸스를 수사한 날입니다.

특히 검찰이 양재혁 삼부파이낸스 회장을 소환 조사한 사실이 이날 1면에 크게 실렸습니다. 삼부파이낸스 사건의 시작과 끝에 있는 인물이 ‘양재혁’입니다.

20년 전 오늘(9월11일) 경향신문 1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삼부파이낸스의 당시 회장 양재혁씨가 회사공금을 빼돌려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일부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파악했고, 본사와 지사 그리고 양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후 그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삼부파이낸스를 세운 양재혁이라는 인물은 원래 부산에서 잘 나가던 사채업자였다고 합니다. 이날의 경향신문 3면 해설보도에 따르면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부산에서 사채업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삼부파이낸스를 통해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습니다. 20~30%의 높은 이자수익을 누린 이들의 입소문 때문이었습니다. 부산·경남의 수많은 서민들이 퇴직금 같은 목돈을 맡겼다고 합니다.

삼부 파이낸스는 엔터테인먼트, 벤처캐피털, 부동산투자 등으로 수익을 내는 것으로 광고했지만 상당액은 실은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으로 나눠준 것에 불과했습니다.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돈을 맡겨놓은 투자자들이 삼부파이낸스에 몰려들어 원금을 요구했고 결국 삼부파이낸스는 부도에 이르게 됩니다.

삼부파이낸스는 법상 금융사가 아니었습니다. 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설립 가능한 상법상의 ‘주식회사’였죠. 그래서 은행·저축은행 등에 제공되는 예금 보호 같은 안전망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삼부파이낸스는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원금보장’을 운운하며 돈을 맡겨달라고 했던 겁니다.

당시 보도는 삼부파이낸스를 ‘유사 금융업체’로 표현했는데요, 정확하게는 ‘유사수신업체’입니다. 유사수신은 은행법 등 금융기관으로 인·허가나 등록·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가 불특정다수로부터 ‘원금 이상’을 돌려줄 것을 약속하고 돈을 투자받는 행위를 뜻합니다. 지금은 ‘불법’이지만 당시는 불법은 아니었습니다.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은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사수신 규제에 관한 법률은 2000년에야 시행됩니다.

삼부파이낸스는 영업시작 3년여만에 해전국에 54개의 지점을 뒀고 해외법인도 세울 정도로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삼부파이낸스의 성공을 보고 ‘파이낸스’라는 이름을 붙여 삼부를 뒤따라간 업체들이 늘어갔습니다. 양재혁의 삼부파이낸스는 나중에는 영화에도 거액을 투자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투자했던 영화가 <용가리>, <엑스트라>, <짱> 입니다.

그러나 1999년 시작된 검찰 수사로 모래성은 무너졌습니다. 약 3년새 삼부를 비롯해 수십여개의 ‘◇◇파이낸스’에 맡겨진 돈은 2~3조원에 달했고 투자자들은 대다수가 광고에 속은 서민들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투자자 규모는 대략 3~4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삼부파이낸스의 양재혁 전 회장은 나중에 재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투자자들의 돈 1116억원을 빼돌려 계열사를 설립하고 230여억원을 호화생활로 유용한 혐의 가 인정됐고 수감생활을 하다 2004년에 출소합니다.

그후 또 한번의 ‘기행’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삼부파이낸스의 남은 자금 수천억원을 관리하다가 사라진 인물 하모씨를 찾기 위해 ‘실종 자작극’을 벌입니다.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찾고보니 일부러 실종된 척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가족들에게 자신이 사라지면 하씨의 소행이라고 말해두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사라지면 아마도 경찰이 하씨부터 찾을 거라 계산한 겁니다. 결국 그의 뜻대로 되었을까요? 아뇨, 자작극이란 사실만 발각되었다고 하네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삼부파이낸스의 서민투자자들은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양재혁은 2016년에도 사기죄와 무고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삼부파이낸스 부도 이후 4번째 처벌이었다고 합니다.

사기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감시 의지입니다. 당시 유사수신행위를 단속할 법이 없었다고 해도 은행 등 금융기관이 아닌 업체가 서민들에게 ‘이자 수익’을 약속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금융당국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부의 금융감시망, 지금은 어떤가요.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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