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윤석열의 나라'

입력 2019. 9. 9. 15:37 수정 2019. 9. 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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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수사에 들어간 이유가 뭘까.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윤 총장은 최근 무리한 검찰 인사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윤 총장은 취임 후 검찰 간부 인사에서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검사들을 대거 요직에 앉혔다. 통상 검찰간부 인사의 경우 청와대와 법무장관, 검찰총장이 협의하는 게 관례다. 이번의 경우 사퇴가 기정사실화된 박상기 장관은 인사에 사실상 손을 놓았다고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도 교체기였다. 윤 총장의 독식이 가능했던 이유다. 문재인 정부 주변에 수사의 칼날을 들이댄 검사들은 줄줄이 좌천됐다. 인사에 물을 먹은 중간간부급 검사들은 50명 넘게 사표를 냈다. 전례 없던 일이다. 검찰 내에선 “해도 너무 했다” “윤석열도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내부 동요는 심상치 않았다. 윤 총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 필요가 생겼다. 그는 ‘윤석열 검찰 1호 사건’으로 조국을 선택했다. 그건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할 수 있다는 기개를 보여줌으로써 ‘나, 윤석열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내부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둘째, 윤석열은 조국의 사퇴를 기대했다. 야당이 검찰에 고발한 정치적 사건은 수두룩하다. 통상 이런 사건은 세월아, 네월아 묵히는 게 상례다. 더구나 상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리는 조국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치권이 청문회를 협의하는 도중에 보란 듯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고 수사 착수를 선언했다. 고위공직자의 경우 검찰수사가 시작되면 옷을 벗고 야인(野人)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서는 게 관행이다. 조국이 장관에 임명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결코 꺼내지 못할 칼이었다. 그건 조국에게는 자진 사퇴하라는, 대통령에게는 지명 철회하라는 통고장이었다. 그 뒤에도 검찰은 결정적인 국면마다 수사기밀을 흘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조국의 사퇴를 압박했다. 조국 부인 기소는 임명을 막기 위한 검찰의 마지막 저항이자 승부수였다. 검찰은 정치적 판단을 하고, 정국 해결사를 자처하고, 정치를 지휘했다.

셋째, 그러나 상황은 윤석열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조국은 사퇴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여권에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인식이 퍼졌다. 윤석열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살길은 하나, 조국을 기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부인의 표창장 위조 같은 혐의로는 약하다. 중요한 건 조국 본인에 대한 혐의 유무다. 조국을 잡으면 살고, 잡지 못하면 죽는다. 외길이다. 윤 총장은 특수2부에 특수3부 검사까지 추가 투입했다.

윤석열은 역대 가장 강력한 검찰총장이다. 과거 검찰총장의 경우 본인도 정권과 연이 닿아 있지만, 산하의 대검 중앙수사부장, 서울중앙지검장도 나름 만만치 않은 친정권 인맥이어서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지금 윤 총장은 대검 반부패부장(과거 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장에 차장, 특수부장까지 모두 ‘윤석열 사단’으로 채웠다. 그가 결심하면 언제 어느 수사든 가능한 구조다. 이제껏 법무장관 수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단행하는 게 역설적으로 윤석열의 슈퍼 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의 검찰은 마치 정당처럼 성명을 내고 청와대와 여당을 비난했다. 그 과정에 제동을 거는 참모 기능은 작동되지 않았다.

윤석열은 국회의 정치협상 과정에 끼어들어 후보자를 낙마시키려 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시키려 했다. 정치로 해결할 문제를 검찰이 전면에 나서 사회를 지배하려 했다. 윤석열은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보수언론 사주를 잇따라 만난 적이 있다. 그를 만나고 온 한 사주는 “저 친구, (검찰)총장 이상을 꿈꾸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윤 총장 임기는 2021년 8월(2년)까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총선, 대선에서도 이러한 정치행위는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정치행위의 동기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윤 총장과 검찰에는 그런 막강한 힘이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이번 수사, 검찰의 정치개입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케 해줬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왜 분리돼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윤 총장보다 더 강력한 비검찰 출신 장관만이 검찰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윤 총장과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조국밖에 없다. 문 대통령도 이번 검찰의 행태를 보고 ‘논두렁 시계’의 악몽을 떠올리며 조국 임명 결심을 더 굳혔을 것이다. 조국은 윤석열 검찰과 싸워야 한다. 그건 윤석열과 문재인의 싸움이기도 하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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