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과 정보 교류, 문제 안된다" 김앤장의 당당한 재판 개입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⑪]
[경향신문] ㆍ승소를 위해서라면

“<법원사>는 사법권이 일제하에서 국민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독재정권하에서 인권보호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까지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으로 일하며 <법원사> 편찬 실무작업을 지휘한 한상호 당시 부장판사는 1995년 4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배 법조인들의 노력을 접하면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며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법 체계를 세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같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독재 시대 사법권 독립의 수호자로 불린다.
‘강제징용 사건’ 맡은 한상호 변호사
피해자 몰래 양승태 접촉 “친해서”
판결 관련한 대법원장 인식 공유
“위법 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
24년이 흘렀다. 이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인 한상호 변호사(69)는 지난달 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한 변호사는 일본 기업 측을 도왔다. 사법농단 재판에서 공개된 증거들을 보면 한 변호사는 피해자들 몰래 대법원과 접촉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려 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사적으로 만나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를 나눈 게 문제라고 느끼지도 않았다고 했다. 재판 개입이 당초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김앤장은 최대 수혜자다. 승승장구하던 법조인이 사법농단 핵심 인물이 됐다. ‘일제 잔재 청산’을 주창하던 판사는 일본 기업 측 변호사로 변신했다. 무엇이 그를 이끌었을까.
■ 김앤장 “행정부와 긴밀히 협조”
김앤장, 대법원 설득 방안 추진
“행정부와 긴밀 협조해왔다” 강조
신일철주금 “매우 좋은 소식” 화답
한 변호사의 40년 법조 경력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1979년부터 19년간 판사로 일했다. 198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2년간 근무했고, 바로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으로 따지면 기획조정실 심의관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는 사법연수원 기수로 4년 터울이다. 한 변호사가 6기, 양 전 대법원장이 2기다. 두 사람은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했다. 모두 법조계 엘리트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이었다. 잘나가던 한 변호사는 갑자기 법복을 벗는다.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장이던 1998년 의정부지원 판사들의 비리 사건이 터지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냈다. ‘법관의 꽃’으로 불렸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전이었다. 그 후 김앤장에 들어갔다. 공정거래·기업 관련 사건들을 맡으며 입지를 넓혔다. 김앤장 고위직인 송무팀장까지 올라갔다. 대법관 후보자로도 거론됐다. 2012년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 상황이다.
2012년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한 변호사가 강제징용 사건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한 변호사는 법원에 일본 기업을 대리한다는 선임계를 낸 적은 없다. 하지만 사실상 컨트롤타워였다. 2014년 11월 김앤장 최건호 변호사는 한 변호사에게서 외교부가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내고 싶어 하니 방법을 강구해보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작업에는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문건에는 ‘새로운 차원의 접근’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최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한 변호사가 (외교부 등 법원 외부로부터의 간접적인 대법원 설득 방안 추진을) 일본 기업에 설명하고 승인을 받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앤장 문건에는 “정부의 의견표명은 이미 했던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지금까지의 의견표명과는 차원이 다름. 최고위층에서 논의된 행정부의 공식적인 의사가 확실하게 전달된 것”이라며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이 적혔다. 김앤장의 대응 방안 설명에 신일철주금이 ‘very good news(매우 좋은 소식)’라고 답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김앤장에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과 관련해 정보를 공유한 사람은 단 5명이다. 문건에는 ‘극비’ 딱지가 붙었다. “새로운 차원의 접근을 하는 사람은 증인이었던 것이 맞습니까?” 검사 질문에 한 변호사는 답했다. “저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소송팀의 요청이 있어서 함께 의논했습니다.”
김앤장 문건에는 이런 문구도 나온다. “장관, 차관 등 고위관료 출신의 고문, 변호사 등 한국의 다른 로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막강하고 풍부한 man power(인력)를 보유, 행정부의 의사표명이 도움이 될 만한 사안의 경우에는 이러한 resource(자원)를 총동원하여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왔음.” 일본 기업에 설명하려고 적은 내용이다. 김앤장과 정부 간 ‘긴밀한 협조’가 곳곳에서 이뤄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신영철 전 대법관은 2015년 2월 퇴임 직전까지 강제징용 사건 주심이었다. 그런 그가 김앤장 문건에 등장한다. 신 대법관이 퇴임 즈음해 서울대 법대 동기인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만난 모임 자리에서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윤 전 장관이 이 정보를 현홍주 전 주미대사에게 줬고, 현 전 대사는 한 변호사에게 전달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일하던 ‘고바야시’일본 검사가 ‘법무부로부터 연말에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강제징용 사건을 회부한다, 한·일 수교 50주년 전에 선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내용도 있다.
■ 전합 재판장 양승태와 강제징용 대화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김앤장 고문으로 강제징용 사건 관련 외교부 동향을 파악했다. 그는 지난 4일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변호사에 대해 “대법원의 (사람들을) 모든 레벨에서 잘 안다는 뉘앙스를 받았다”고 했다.
유 전 장관 말대로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원 분위기를 기민하게 파악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한 변호사가 만난 자리에서 강제징용 사건 정보가 오갔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2012년 대법원 판결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이 판결 전에 귀띔도 안 해줬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강제징용 사건은 어려운 쟁점이 내재돼 있고 선례와 어긋나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는 판결이다. 한·일관계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눴다는 점도 한 변호사는 인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은 한 변호사에게는 중요한 정보였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는 대법관 4명만 참여했다. 이 판결을 뒤집으려면 재상고심 때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하도록 만드는 게 필요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장이다.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은 대법원장이 한다고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 변호사는 “법원 실무 관행은 그렇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정보 루트였다. 한 변호사가 작성한 ‘2015년 5월 법원 동향’ 문건을 보면 “대법원에서는 새로 제출된 증거를 근거로 파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대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함” “전원합의체 회부의 근거+다른 대법관 설득의 무기로 외교부/법무부 의견서 필요”라는 문장이 나온다. 대법원 재판부가 아니라 법원행정처 소속인 임 전 차장이 이 같은 이야기를 양 전 대법원장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을까. ‘양 전 대법원장 결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느냐’는 검사 질문에 한 변호사가 답했다. “전원합의체 재판장이고, 사법행정의 총책임을 맡는 대법원장도 알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판사가 판사에게 무언가를 ‘보고’할 일은 거의 없다. 법관 하나하나가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 진행 상황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전했다고 증언하면서 “보고하는 차원이었다”는 말을 여러번 썼다. 그러면서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의 대화가 부적절할지언정 법에 위반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담 형식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흘러나온 것이다” “궁금해서 여쭤봤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대법원 정보를 준 것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았다고 했다. “증인은 법원이 사건과 관련해 (소송 지휘 차원에서) 연락을 줬다고 생각했다는 겁니까?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재판부와) 같은 바운더리(영역) 안에 있는, 같은 조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죠?”(양 전 대법원장 측 이상원 변호사) “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한 변호사)
이 변호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증인과 양 전 대법원장의 관계가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 않으냐”고도 물었다. 한 변호사는 “저로서는 존경하고 친하게 지냈던 분이기 때문에 사적인 자리를 갖게 됐고 별생각 없이 그런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와 유착 의심 받을 수 있다”
‘법정 외 변론 금지’ 명문화한 양승태
밖에서는 재판 정보 주고받았다
“법관이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만으로도 변호사와 유착관계에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까지 무너질 수 있다.” 2016년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등 법관 비리로 이어진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대법원은 ‘법정 외 변론 금지’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때다. 그는 대국민 사과도 냈다. 정작 자신은 법정 바깥에서 변호사를 만나 재판 정보를 주고받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춥다고 창문 살짝 열었는데” 환기 효과는 더 떨어져…대부분이 놓치는 ‘제대로 환기하는 법
- “제가 여자친구를 살해했습니다”···20대, 청주서 경찰에 신고 후 체포당해
- “두 시간 기다려 득템” 얼마나 맛있길래···‘갓 튀긴 라면’ 사려는 줄로 수백미터 장사진
- 당정, 소방 재정 최소 2조 지원···여당 ‘종부세 공제 14억 통일’ 요청
- 은행 파산 사흘 만에 대통령도 몰락···페냐 파라과이 대통령 파면에 중남미 우파 ‘휘청’
- ‘코로나둥이’ 입학하는 내년, 초등 신입생 사상 첫 20만명대로 떨어져···저출생 쇼크 현실화
- 월급 밀리고 매대는 ‘텅텅’ 또다시 휘청이는 홈플러스···“기업회생 진짜 물건너 가나”
- [속보]서울대 총장 최종후보자 최해천 공과대학 교수
- 12년 만에 정상에서 토해낸 ‘사자후’···삼성 라이온즈, 통산 9번째 KS 우승
- 머스크 “사이버트럭 생산 접는다”···모델S·X 이어 고가 모델 줄퇴장,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