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현실에선? 서울 건물 옥상문 열어보니

유효송 기자 2019. 9. 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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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흡연 예방 위해 옥상 문 닫아야..자동개폐기 가격도 부담
23일 찾은 서울 광진구의 한 오피스텔 옥상. 관리인 전화번호가 부착돼 있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사진=유효송 기자


영화 '엑시트'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주인공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는 의문의 유독 가스를 피해 옥상으로 대피하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에 절망한다. 하는 수없이 용남은 밧줄을 몸에 동여매고 건물 외벽을 등반한다. 주인공은 옥상 문을 열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유쾌하지만 재난은 공포스럽다. 1971년 12월 25일 서울 시내 고급 호텔인 '대연각(大然閣)'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으로 163명이 숨졌다. 화재 당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어 옥상 출입구 부근에서 23명이 질식 사망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23일 서울 광진구 일대와 명동 등 번화가에 위치한 건물들을 찾아본 결과 여전히 옥상 문이 닫혀 있는 건물들이 다수 발견됐다. 어린이대공원 옆에 자리한 G 오피스텔은 지상 3층까지는 학원, 편의점, 연습실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설들이 입주해 있다. 4층부터 8층까지는 100세대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출입문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을 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음식점이나 화장품 가게 등이 밀집해 있는 명동 거리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명동 일대에 있는 건물 5곳 중 옥상 문이 열려 있는 곳은 한곳에 불과했다. 두 곳은 아예 옥상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머지 두 곳은 옥상까지 접근은 가능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떠한 안내문이나 비상벨도 찾아볼 수 없었다.

23일 찾은 서울 명동의 한 건물 계단. 옥상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절문에 자물쇠를 달아놨다. /사진=유효송 기자


광진구 오피스텔 관리실 직원 A씨는 "화재는 한 번이지만 사고는 매번 일어난다"라며 "원래 옥상 문을 개방했지만, 지난해 오피스텔 옥상에서 일어난 자살 소동 이후 옥상 문을 잠갔다"라고 옥상 문을 개방하지 않는 이유를 말했다. 더불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거주자에게 옥상 문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오피스텔 거주자 B씨 역시 "수시로 담배를 피우러 올라가는 입주자들이나 외부인들을 신고하는 것도 일"이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건축법상 옥상 문 개방 의무는 옥상 광장을 설치해야 하는 건물이나 주택법상 공동주택일 경우에만 있다. 여기서 옥상 광장이란 건물이 5층 이상이고 제2종 근린생활시설 중 공연장, 종교집회장,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 제공업소, 문화 및 집회 시설 등이 건물 내에 있는 경우 피난 용도로 쓸 수 있는 광장을 말한다. 기자가 찾은 음식점, 학원, 카페 등이 임차해 있는 건물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옥상 개방을 하지 않아도 된다.

2016년 국토교통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택 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 16조를 개정해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자동 개폐장치는 옥상 출입문에 화재 발생 시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장치다. 그러나 2016년 법 개정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만 적용된다는 사각지대가 있다. 사실상 신축이 아니고 면적과 용도 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건물들은 옥상 문 개방 의무도 없고 자동 개폐장치마저 설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자동개폐기 가격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유도 등이나 소화 알람 설치 여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보통 6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이 넘어간다. 의무가 아닌 건물에서 굳이 추가 비용을 들여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회현 119 안전 센터 오 현 소방위는 "옥상라가는 통로에 물건을 놓아 방해한다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현재 옥상 문 개방 여부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소방관은 대피할 수 있게 옥상 문을 열어놓으라고 하는 반면 경찰은 범죄 예방 때문에 가급적 문을 닫아놓으라고 한다"라며 입장 차이도 드러냈다.

전문가는 대형 인명피해로 번지기 전에 안전시설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옥상 대피로는 단속을 강화하는 방법밖에는 없고 사람들 인식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고시원, 숙박업소 등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해주고 있는데 자동 개폐장치에 대한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영세한 건물주나 영업주의 건물에 대해서는 설치 지원을 고려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역시 "(자동개폐기)가격이 비싸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안전을 생각했을 때 설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현행 법상 강제할 수 없다면 무이자로 국가 보조금이나 장기 융자 같이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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