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7 - 주작과 현무
[고구려사 명장면-78] 지난 회 청룡과 백호에 이어 이번 회에서는 나머지 주작과 현무를 그린 벽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요 대상 역시 지난 회와 짝을 이루기 위해 호남리사신총, 진파리1호분, 오회분 4호묘,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사신도 사진이나 모사도를 중심으로 하겠다.
사신 가운데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의 도상은 상서로운 새의 형태를 갖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봉황과 도상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작은 보통 암수의 쌍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봉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컷을 봉(鳳)이라고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는데, 이를 합하여 봉황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봉황은 성군(聖君)이 등장할 때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로서 그 신이함을 더하기 위한 신체적 특징을 상상하였다. 예컨대 중국 옛 기록에 봉황은 가슴은 기러기, 엉덩이 쪽은 수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이마는 새, 깃은 원앙, 무늬는 용, 등은 거북, 얼굴은 제비, 부리는 수탉 등 10종의 특징을 합한 신조(神鳥)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이런 특징이 도상으로 드러날 때 모두 그대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습을 갖기 마련이다. 이러한 신조(神鳥)로서의 봉황 모습이 또 다른 신조인 주작과 겹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서로 비슷한 도상이지만, 사령(四靈)의 하나로 그려질 경우에는 봉황, 방위신인 사신의 하나일 경우에는 주작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북방의 수호신인 현무(玄武)는 거북이와 뱀을 합친 도상인데, 어의상 현(玄)은 검은색을 뜻하고 무(武)는 거북의 딱딱한 등갑이나 비늘을 뜻한다. 그런데 중국 전한 초까지는 대체로 현무는 거북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뱀이 거북을 휘감고 있는 도상, 즉 구사교미형(龜蛇交尾型)으로 바뀌었다. 거북 형상에서 뱀과 거북이 얽혀 있는 도상으로 바뀐 이유는 고대 중국인들이 거북은 암컷뿐 수컷이 없다고 생각하여 머리 모양이 비슷한 뱀을 수컷으로 짝지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즉 현무는 음양의 조화라는 사고방식이다. 특히 북방의 수호신으로서 구사교미형 현무는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이 암수 한 쌍으로 표현되는 점에 대한 대응으로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무를 이루는 뱀과 거북의 자세를 보면 서로 딴 곳을 보는 도상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그 모습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마치 격렬하게 싸우는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욱 뱀은 거북을 칭칭 감고 있고, 거북은 단단한 등껍질로 버티는 듯한 이미지는 음양의 조화는커녕 서로 생사를 걸고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처럼 보인다. 어쩌면 바로 이런 모습이 현무를 사신 중 가장 역동적인 생명력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그러면 고구려 사신도 중 주작과 현무 그림을 직접 살펴보도록 하자.
호남리사신총 널방 남벽 입구 좌우에 자리 잡고 있는 주작은 다소 밋밋한 두 날개를 위로 한껏 벌리고 있고, 길쭉한 모습의 꼬리도 위쪽으로 뻗치고 있는데, 날개와 꼬리가 평행선을 이룬다. 머리는 새의 형상인데, 흔히들 표현되는 공작이나 장닭의 머리 모습과는 전혀 다르며 그다지 신령스러운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호남리사신총 널방 북벽의 현무는 구사교미형인데, 서쪽을 향하고 있는 거북은 머리를 길게 빼어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뱀은 거북을 칭칭 감고 있되 머리를 거북 꼬리 쪽에서 솟구쳐 서쪽을 쳐다보고 있다. 따라서 음양의 조화라는 현무의 이미지가 무색하게 거북과 뱀이 머리를 마주하기는커녕 서로 딴 곳을 쳐다보고 있다. 청룡과 백호의 경우도 그러한데, 호남리 사신총에서는 아직 벽면의 주인공으로서의 위엄을 갖는 사신의 도상이 충분히 완성되지 않았던 단계였다.
진파리 1호분 남벽 널방 입구 좌우를 지키고 있는 한 쌍의 주작은 몸집에 비해 그리 크지 않지만 화려한 날개를 좌우로 펼치고 있고, 너울거리는 긴 꼬리를 한껏 위를 향해 뻗치고 있다. 이 꼬리의 흐름을 따라 구름무늬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 표현되면서 주작의 생동감이 한층 더해진다. 벼슬이나 부리 등 주작의 머리 표현은 장닭의 이미지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암수가 서로 다르게 묘사되어 있어 같은 듯 서로 다른 세밀한 표현 방식이 눈길을 끈다.
북벽의 한가운데에 아래에 조금은 작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현무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귀갑문이 표현된 거북의 몸을 두어 번 감고 있는 뱀은 거북의 목을 한 차례 감으면서 몸을 비틀어 거북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낸 뱀은 마치 거북을 집어 삼키려는 듯한 표정이다. 호남리사신총의 현무에 비해 뱀의 운동성이 크고 훨씬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진파리 1호분의 현무는 북벽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현무 좌우에서 바람에 흔들거리는 수목 그림와 함께 어우러져 있어 풍경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또 소나무와 현무 아래에는 검은 산악이 그려져 있어 마치 현무와 소나무가 허공이나 천상 세계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후일 강서중묘의 현무도와 맥락이 통한다. 현무 위로는 빠르게 흐르는 구름과 휘날리는 인동 연화 무늬는 거북과 뱀의 격렬한 싸움을 예고하는 듯하다
오회분 4호묘의 남벽은 널방 입구가 남벽 중앙이 아닌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 보통의 다른 벽화고분 남벽과는 달리 제법 넓은 화면을 확보하고 있는데, 여기에 주작 한 마리만 그려져 있다. 널방 입구에 의해 좌우로 나누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 마리 주작을 그리기에 충분함에도 외주작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암수라는 주작의 본래 형상보다는 북벽의 현무에 조응하기 위해 외주작만 그린 게 아닌가 싶다.
주작의 머리는 장닭 머리고, 목의 좌우에서 커다란 푸른 깃털이 마치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붉고 푸른 날개는 한껏 펼치고 긴 꼬리는 위로 흔들거리며 뻗어나가고 있다. 날갯짓하며 막 날아오르려는 율동감이 넘치고 있는 표현이다.
오회분 4호묘의 사신 중에서는 뭐니 해도 북벽의 현무가 가장 인상적이다. 서쪽을 향해 걷고 있는 거북의 몸은 슬쩍 한 번 감싼 뱀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격렬하게 뒤틀고 심하게 엉키고 있다. 얼마나 뱀의 몸이 꼬여 있는지 마치 두 마리 뱀이 어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거북과 뱀은 서로 마주하고 노려보고 있는데, 뱀의 격렬한 몸짓과는 달리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와 비슷한 현무 도상이 통구사신총의 현무도이다. 두 현무도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이렇게 보면 집안 지역의 현무도가 평양 일대의 현무도보다는 훨씬 역동감이 넘치는 현무도를 그려낸 셈인데, 수도 평양과 부도 국내성의 문화적 분위기가 달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강서대묘의 주작은 신령스러운 봉황의 형상이다. 부리는 연봉오리에 달린 가지를 물었고, 양 날개는 힘차게 펼치고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꼬리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주작의 날개와 조응하고 있다. 무엇보다 강인한 두 다리는 산악도 위에 굳세게 버티고 있으면서 날개 바람을 하늘 가득 채우는 듯하다. 그 생동감은 이제까지 본 주작도 중에서 최고라고 하겠다.
이와 달리 강서중묘의 주작은 율동감보다는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마찬가지로 봉황의 머리에 잎에는 붉은 구슬을 머금고 있다. 활짝 펼친 두 날개와 꼬리에는 섬세하게 표현된 부드러운 깃털의 세세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역동감이 넘치면서도 단정하고 우아함을 잃지 않는 걸작이다.
강서대묘의 현무도는 고구려 사신도의 현무, 아니 그 모든 사신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무어라 여기서 기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사실 이 현무도 하나만으로도 고구려의 회화 수준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서대묘의 현무도가 워낙 뛰어나서인지 강서중묘의 현무도는 좀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 다만 산악도 위 허공에 떠 있는 현무의 모습은 무한한 우주 공간의 수호자로서 신령스러운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고구려 고분 벽화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서대묘의 사신도 등 벽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벽화 주제별로 고구려 벽화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분량이 적지 않다 보니, 최소한의 것만 살짝 엿보았을 뿐이다. 나중에 다시 고구려 고분벽화를 좀 더 두루 살펴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독자 여러분 스스로 벽화 모사도나 도록 사진 등을 수집해서 직접 살펴보시면서 그 세계에 빠져들어가 보시기를 권한다.
어쨌든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남아있는 가장 늦은 시기의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에 이르러 고구려 벽화 수준은 최절정에 도달했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런 고분벽화의 전개상을 보면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게 그리 믿기지 않는다. 문화상의 최절정에서 과연 급격하게 몰락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고구려 최말기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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