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과 '586세대' 사이에 낀 'X세대', 40대가 된 그들은 누구인가
[경향신문]
1990년대 문화적,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렸던 신세대는 ‘X세대’로 호명됐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른 오늘날 이들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최근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 시리즈로 잠시 향수를 불러일켰을 뿐, 40대를 대상으로 한 세대 담론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20~30대를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장기집권론까지 나오는 50대의 ‘586 세대’ 사이에서 ‘낀낀세대’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출판사 메디치미디어는 어젠더 저널리즘 매체 ‘피렌체의 식탁’ 1주년을 맞아 ‘X세대에서 낀낀세대로; 40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오는 29일 개최한다. 이날 심포지엄의 주제가 바로 ‘1970년대생’이다. 메디치미디어에선 심포지엄을 위해 전국 40~49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설문결과 40대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건으로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43.1%로 첫 손에 꼽혔다. 1970년대생은 대학교 졸업 후 취업 등 사회진출 시기에 외환위기의 피해를 겪거나, 학창시절에 가계 붕괴를 경험한 세대이다. 특히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호황을 누렸기에 경제 위기의 충격이 이전 세대에 비해 더욱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러한 특징은 설문에서도 드러났다. ‘한국사회에서 성공요인’을 꼽는 질문에 1970년대생은 ‘부유한 집안’을 꼽은 수치가 49.7%로 50%를 넘긴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노력’을 꼽은 수치는 1970년대생이 37.3%로 다른 세대에 비해 조금 높게 나타났다. ‘학력’을 중시하는 수치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정의 경제 붕괴를 겪은 이들 세대가 집안의 배경보다는 개인의 노력에 더 높은 성공요인의 가중치를 둔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꼽는 질문에도 ‘빈부격차 해소’(27.6%), ‘산업 경쟁력 위기’(24.6%), ‘노후생활 안전 위한 복지제도 도입’(14.7%) 등 경제 문제가 정치·사회 문제를 압도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은 ‘국민연금 인상’(25.1%), ‘건강보험료 인상’(23.7%)을 꼽는 비율이 절반에 달했다. 현재 생활에서 가장 큰 고민도 ‘노후 대비 문제’(29.1%), ‘부채 등 경제적 안정’(22.3%)을 꼽은 비율이 절반을 넘겼다.
40대가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여서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은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하지만 ‘부모 부양’이나 ‘자녀 교육’ 등 연령 특성이 드러나는 항목에 대한 응답률이 낮게 나타나 역시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반적으로 1970년대생은 다른 세대에 비해 청와대, 정부, 의회 등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가 낮은 특성이 나타났다. 특히 직장 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응 방식에서 세대적 특성이 드러났다. 이들은 ‘더욱 충성’, ‘그냥 참고지냄’, ‘노조를 통한 고발’, ‘공식적 이의제기’, ‘이직 시도’, ‘불법 행동’ 등 서로 모순되지만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상황에 대응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1970년대생의 ‘생존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해석이 나왔다. 반면 1990년대생은 비슷한 경향을 보이면서도 ‘더욱 충성’ 응답은 현저히 낮았다. 통계를 분석한 윤호영 서울시립대 객원교수는 “1970년대생에게 1990년대생은 무기력하고 계산만 하는 세대로 보이게 되고, 1990년대생에게 1970년대생은 여러모로 피곤한 존재로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586의 장기집권론’까지 나오며 세대담론의 중심에 선 86세대에 대해 1970년대생은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28.0%)는 평가를 했다. 이어 ‘실력이 없으며 이제 물러나야 할 때’(20.6%), ‘세대 단결력이 다른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14.1%)가 뒤를 이었다. ‘86세대의 권력 집중 및 장기화가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선 63%가 공감 의견을 냈다. 86세대에 대해선 민주화를 이룬 세대로 존중하면서도 양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1970년대생들은 정치 이념 성향에 대해선 31.4%가 진보, 18.9%가 보수라고 응답했다. ‘중도’를 꼽은 비율이 46.7%로 높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 비율을 보이고, 중도 진보적 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다만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가 될지, 탈이념·탈정치에 따라 ‘스윙 보터’ 역할을 하게 될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40대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1위로 꼽았고, 같은 당 박용진, 이재정 의원이 뒤를 이었다. 보수에선 홍정욱 전 의원이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전반적으로 보수 측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는 진보 측 인물보다 떨어졌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586세대가 군부독재에 맞서는 도덕주의적이고 이념주의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1990년대 학번 세대는 정치사회적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면서 “이 점에서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의 등장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신세대에게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압박을 강제하고, 기존의 감성적 개인주의와 결합해서 ‘낀낀세대’의 복합적 내면을 구성했다”면서 “이들의 개인주의가 현재는 정치적 진보주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본인의 학력이나 노력 등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다른 세대와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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