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청룡, 백호
[고구려사 명장면-77] 사신도가 널방의 사방 벽면에서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벽화고분은 6세기 들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무덤 구조도 무덤길과 하나의 널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외방무덤이란 특징을 갖는다.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신도 벽화고분으로는 평양 지역에서는 호남리 사신총, 개마총, 진파리 1호분, 4호분, 내리 1호분,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이 있고, 집안 지역에서는 통구사신총, 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이 있다. 그동안 이들 고분 이름은 여러 차례 언급하였기에 어느 정도 낯이 익으리라 생각한다.
여하튼 열 개 남짓한 사례만으로 6세기 사신도 등 벽화의 전개상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시기별로 사신도 그림을 늘어놓고 보면 거기서 어떤 변화의 맥락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이제 2회에 걸쳐서 대표적인 사신도 벽화를 보여드릴 테니 독자들께서도 어떤 흐름이 있는지 직접 찾아보시기 바란다. 다만 현재 전하는 벽화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열심히 들여다보셔야 하는 수고로움이 전제되어야 함을 먼저 말씀드린다. 그나마 벽화 상태가 좋은 편인 호남리 사신총, 진파리 1호분, 오회분 4호묘, 강서대묘와 강서중묘 사신도 사진이나 모사도를 중심으로 하겠다.
사신은 사방의 별자리 신으로서 의당 상상의 동물이다. 따라서 사신의 도상은 현실 동물 모습에 상상력이 복합된 모습을 갖게 되며,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회에서 다룰 청룡과 백호는 네 다리와 긴 꼬리를 갖고 있으며, 허공을 나는 듯한 자세로 비슷하게 표현된다. 청룡은 뱀의 비늘이 온몸을 감싸고,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머리에는 뿔이 한 개 혹은 두 개 있고 입을 벌려 혀를 날름거리거나 화염을 뿜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백호는 전체적인 자세는 청룡과 비슷하지만, 이름 그대로 온몸에는 호랑이 얼룩무늬를 갖고 얼굴도 호랑이의 특징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전체적인 도상의 틀은 이러하지만, 이를 하나의 형상으로 구현해내는 필력이나 표현력 또는 화면 배경의 구성과 배치 등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이미지를 드러내게 된다.
가장 이른 시기의 사신도 벽화고분으로 편년되는 호남리 사신총은 무덤 벽의 소재로 대리석을 사용한 유일한 고구려 고분이다. 잘 다듬은 대리석으로 사방 벽을 세우고 판석의 틈을 회로 메웠다. 그리고 그 위에 직접 벽화를 그렸다. 1916년 발견 당시에 이미 천장부 벽화는 훼손되었고, 사방 벽의 사신도만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청룡과 백호는 모두 고개를 돌려 자신의 꼬리를 바라보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청룡은 정측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긴 뿔을 갖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날카로운 이빨이 강조되어 있다. 신비스러움보다는 기괴한 분위기를 보인다. 그리고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후 청룡도에 나타나는 목 뒤 척목(尺木)이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두시기 바란다. 백호도 측면도이면서도 두 눈과 두 귀를 과장되게 그렸으며,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얼굴이다. 몸에는 호랑이 무늬를 그렸다. 전체적으로 필력이 거칠고 서투른 인상이다. 더욱 사신의 묘사도 생동감이 없는 데다 배경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떤 생동감도 느끼기 어려운 분위기다. 아직 사신을 벽면의 주인공으로 묘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과도기적인 단계임을 짐작할 수 있겠다.
진파리 1호분은 전동명왕릉 근처에 있는 20여 기 진파리 고분군에 속하며 진파리 4호분과 함께 사신도 벽화고분이다. 널방 내부에 석회를 바른 뒤 그 위에 벽화를 그렸다. 동벽의 청룡과 서벽의 백호가 모두 무덤 입구가 아닌 북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사신도 고분과 큰 차이가 있다. 청룡의 네다리는 함차게 달려 나가는 자세로 묘사되어 있고, 목은 S자로 강하게 휘어 있고, 꼬리는 물결 치듯이 흘러나가 주변의 구름과 인동문의 흐름이 어울려 역동감을 드러낸다. 청룡의 목 부분에는 삼각형의 붉은 불꽃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바로 척목의 표현이다. 백호는 호랑이 얼굴로 묘사되었고 입을 크게 벌려 포효하는 모습이다. 전체적인 자세는 청룡과 그리 다르지 않다.
진파리 1호분 청룡·백호도는 벽면의 배경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청룡이나 백호가 움직이는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구름, 휘날리는 인동연화 무늬 등이 강한 운동성을 보이면서 화면 전체를 역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다소 경직된 청룡과 백호의 자세가 이런 배경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생동감을 얻게 된다. 배경이 주역을 살리고 있는 그림이라고 하겠다.
집안 오회분 4호묘는 바로 옆 5호묘와 함께 집안 지역을 대표하는 사신도 고분이다.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무덤방을 구성하고, 그 벽면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천장에는 매우 다양한 하늘 세계를 묘사하였으며, 사방 벽면에는 그물망 모양에 불꽃과 연꽃 문양을 연속적으로 펼쳐 그려서 배경 화면으로 삼고 그 위에 사신을 묘사하였다.
오회분 4호묘의 청룡은 오색띠 비늘로 온몸이 덮여 있는 가늘고 길쭉하지만 힘이 넘치는 몸매로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두 앞발을 힘차게 내딛고 뒷다리 하나는 잔뜩 구부려 힘을 응축하고 있고, 다른 다리는 쭉 뻗어서 이제 방금 온몸을 앞으로 힘차게 밀어낸 듯한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몸통과 앞다리가 만나는 어깨 죽지에는 불꽃 모양 기운이 다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어 상서로움을 더하고 있다. 백호도 청룡과 거의 비슷한 자세인데, 얼굴은 역시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청룡의 목 부분에는 불꽃 모양 무늬가 그려져 있다. 앞다리 어깨 죽지의 기운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는 척목의 표현이다. 고대 중국 문헌에 "용이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고 하는 바로 그 척목이다. 앞서 진파리 1호분 청룡에서도 척목은 그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척목이 처음 나타난 것은 장천 1호분 앞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청룡에서부터인데, 엉치 부분에 척목이 그려져 있다. 덕화리 1호분 청룡에서 척목이 목덜미에 묘사된다. 그리고 오회분 4호묘에서 비로소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듯이 불꽃이 힘차게 뻗어가는 형태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서대묘는 사신도 벽화의 최고봉을 자랑한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매우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앞서 진파리 1호분이나 오회분 4호묘의 사신과는 달리 아무런 배경 그림 없이 오직 텅빈 벽면에 사신만을 그렸을 뿐이다. 그러기에 청룡이나 백호는 무한한 하늘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깊은 공간감을 연출하고 있다. 오직 청룡이나 백호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역동감과 신비스러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의 표현력과 기법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백호의 얼굴이다. 앞서 살펴본 고분의 백호도는 모두 호랑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백호는 더 이상 호랑이 얼굴이 아니라 상상의 얼굴을 한 신성한 존재다. 완전히 현실성을 벗어난 존재로서 신령스러움이 더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남북조 시대 백호의 도상에서 벗어난 고구려적인 도상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백호의 표현에서 보자면 강서중묘의 백호도를 최고로 치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독자 여러분도 직접 평가해 보시기 바란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신도 벽화 고분에서 청룡이나 백호 그림으로 보자면 점차 세련되고 완숙해지면서 6세기 후반, 7세기 초 가장 늦은 시기인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사신도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문화 양상의 하나인 고분 벽화로 볼 때 가장 전성기라고 하는 시기에 고구려는 멸망을 맞게 된다. 문화의 성쇠와 국가의 운명은 무관한 것일까? 강서대묘에 들어서면서 필자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 싶은 질문이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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