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미포함(1): 물리법칙으로 구성한 잡일의 난이도에 대하여
[게임의 법칙-150] ◆번거로운 집안일의 지겨움
자취를 하거나 가정을 꾸리는 등을 통해 스스로 자기 삶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은 유년기에는 겪기 어려운 일이다. 처음 독립을 하는 순간, 마침내 자유라는 해방감 뒤에 바로 찾아오는 것은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일의 연속이다. 집에서 누군가 대신 해줬던 많은 일들이 독립자의 손에 떨어진다. 설거지는 매일 해도 끝나지 않고, 빨래는 잠깐 넋을 놓고 게으름을 피우면 악취를 내뿜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당혹감은 냉장고인데, 누군가 주기적으로 냉장고 청소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초보 독립인들은 냉장고가 음식물을 영원히 보관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 상한 밑반찬을 보며 처음 깨닫기도 한다.
회사, 학교 등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가정에서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결같이 깔끔해 보이는 우리 삶을 유지해주는 것은 남이 굳이 들여다보지 않지만 내가 손대지 않으면 하염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일상의 잡일들이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이런 모습들은 심지어 더 큰 집, 더 좋은 가전기기를 들여놓는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집의 규모가 커지고 안정될수록 할 일은 더 많아지기까지도 한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꿈꾸지만 그에 따르는 잡초 제거와 낙엽 쓸기, 배수관 청소와 방충 작업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기지가 커지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잡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2019년 7월 말 정식 발매를 통해 공개된 게임 '산소미포함'은 미지의 외계 행성 지하에서 시작한다. 듀플리컨트(복제체)라고 불리는 이들은 복제인간으로, 주어진 임무에 따라 과업을 수행하지만 엄연한 생물체로 먹고 싸고 자는 등의 기본 욕구뿐 아니라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보살핌도 필요한 존재들이다. 플레이어는 이들을 활용해 별로 살기 좋아 보이지 않는 외계 행성의 지하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살아남으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기념비를 건설하거나 하는 등의 큰 임무가 주어지긴 하지만, 막상 플레이해보면 딱히 그 목적이 아니어도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것 자체가 게임의 주목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세 명의 복제체로 시작하는 게임은 간단한 의식주 마련을 첫 난이도로 제시한다. 맨바닥에서 밤을 보내면 등이 아파 다음날의 작업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간단한 침대라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배변할 장소가 없으면 스트레스를 받거나 오물을 사방에 흩날려버린다. 당장의 먹거리는 초반에 주어지는 영양바로 해결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농경과 같은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3D프린터에서 추가적인 복제체를 뽑아내며 인구를 늘릴 수 있게 된다.
빈 땅이 아니라 지하를 파내면서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산소미포함'의 또 다른 난이도 제시는 작업 효율이 된다. 단지 초반의 세 복제체가 먹고사는 일을 만드는 과정만 해도 적지 않은 노동력이 소요된다. 농경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연구에는 전력이 필요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는 화석연료의 채굴과 발전이 필요하다. 이런 기기들을 배치할 공간을 만드는 일도 결국 복제체의 손을 요구한다. 화장실 청소, 식량 확보와 같은 기본적인 일들에 기지의 발전이라는 방향성이 덧붙으면서 일손이 부족해진다.
3D프린터를 통해 추가 복제체를 확보하면 이제는 또 그만큼의 추가 식량을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단지 먹는 입이 는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게임 제목처럼 호흡을 위한 산소는 이 게임에서 자연적으로 넉넉하게 존재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지하 공간에 지속적으로 산소를 공급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전기를 소모하고, 전력을 더 만들다 보면 기존의 전선으로는 공급 과부하가 나오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금속제련을 하다 보면 더 전력은 부족해지고 심지어 이제는 온도까지 살기 힘든 수준으로 올라가 냉방체계를 고민해야 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냥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빡빡하게 돌아가는 복제체 기지의 삶은 한발 더 나아간 시스템 개선을 위한 추가 소요까지 합쳐지면서 생존주기 100주기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눈이 핑핑 돌아가는 복잡함의 게임으로 변신한다.
◆물리법칙의 응용:번거로움은 변화하는 세계로부터 일상이 된다
생존을 위해, 혹은 반 발짝 더 나아간 개선을 위해 게임은 지속적으로 넘어서야 할 과제들을 만들어낸다. 아니, 만들어낸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그 과제들은 어떤 서사적 순서에 따라 제시된다기보다는 각각의 환경 구성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성질이 만들어내는 연쇄반응으로부터 나온다.
'산소미포함'의 환경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현실의 물리적 성질로부터 모티프를 가져온 게임 속 요소들이다. 각각의 물질들은 압력과 열, 밀도와 비중과 같은 수치들을 통해 게임 안에서 작동한다. 게임 속 설정으로 '산소미포함'의 물은 특정 온도(섭씨 100도가 아닌)에 이르면 기화하여 증기가 되며, 특정 기체는 액화점 근처까지 냉각시켜 액체로 만들 수 있다. 호흡을 가능케 하는 생존 요소인 산소 기체는 게임의 제목에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데, 각 기체의 비중에 따라 기지 안에서 위로 올라가며 이산화탄소가 밑으로 가라앉는 구조가 작동하면서 기지 내의 산소 위치 관리도 온도와 비중, 밀도를 맞추면서 진행해야 한다.

가상세계 속 자연 조건으로 설정된 이들은 비단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생물학적 조건과도 엮이면서 게임을 더욱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낸다. 점차 기지가 커지면서 늘어가는 입은 더 많은 식량 생산을 요구하고, 여기에는 그만큼의 추가 자원이 들어간다. 관개를 위한 배관과 용수 확보를 위한 작업들이 더 들어가고, 확보된 농장은 과도한 전력 사용으로 인한 발열을 잡지 못하면 고온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기 시작한다. 냉각기를 배치하려면 이미 꽉 들어찬 각종 파이프와 전선 사이를 어떻게 뚫고 배치해야 하는지의 난제가 드러난다. 기지의 확장은 갈수록 깔끔해지기는커녕 별생각 없는 건설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다. 딱히 큰 확장을 마음먹지 않았더라도 그저 생존하기 위한 기초적인 테크만을 밟아도 기지는 어쩔 수 없이 확장하게 되고,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되고 만다.
서두에 이야기했다시피 그저 생존을 위한 활동만으로도 사람의 삶은 매우 복잡하고 번거로워지기 일쑤다. '산소미포함'의 공간은 게다가 현실세계와 달리 매우 제한된 자원들로 구성된 '좁고 닫힌 세계'며, 그 안에서의 생존은 더 많은 복잡함이 더 높은 위험함으로 상존하는 세계다. 게임이 제시하는 거대 목표의 달성이 아니어도 극복해야 할 수많은 도전과제가 스스로 움직이는 게임 속 세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산소미포함'의 플레이는 별로 지루해질 틈을 내주지 않는다. 난이도와 숙련도라는 플레이의 두 측면을 놓고 본다면 꽤나 잘 빠진 디자인이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일상물들은 현실에선 무척 귀찮고 지루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에서는 꽤나 재미있는 도전과제로 나타난다. 비슷한 개념을 도시공학으로 풀어내는 '심시티' 시리즈에서도 온갖 귀찮은 일은 플레이어에겐 실제로 귀찮은 무언가라기보다는 도전과제로 나타나곤 한다. 단지 게임이라는 추상화를 통해서만 이런 귀찮음의 도전과제화가 나타나는 것일까?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이야기를 다음 글에서 나눠보고자 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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