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왜 부평도 창원도 아닌 군산 공장이었을까

이문영 2019. 8. 1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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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 GM이 버린 도시
④ 정치의 앞과 끝
3월 부평공장 아태본부 개소식에
정치인들 대거 참석해 '치적' 내세워
홍영표 의원에게 항의한 비정규직
"우리 해고가 당신이 말한 성과인가"

대우차 시절 '세계경영의 전진기지'
설비·물류환경 더 좋은 군산공장
"군산공장 폐쇄는 정치력 차이 때문
수도권 아니고 국회의원도 적은 탓"
지난 6월12일 인천 부평구 갈산동의 홍영표 의원(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사무실 옥상에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 전세계에서 공장을 짓고 폐쇄하는 글로벌 기업은 국가와 정부를 상대로 사업한다 . 글로벌 지엠의 글로벌 비즈니스 맨 앞은 도시의 생사를 걸고 사업 조건을 협상하는 정치의 각축장이다 . 지엠을 둘러싼 미국 내 정치가 태평양을 건너면 한국의 작은 공장과 노동자들을 흔드는 태풍이 된다 . 그 ‘정치 도미노 ’의 맨 끝에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뒤 더욱 위태로워진 삶들이 매달려 있다 .

돌아갈 일터를 잃은 군산공장(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평공장 앞에 있었다.

‘갑’인 지엠에 부탁하는 정치인들

황호인(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장)이 손을 들어 방향을 짚었다.

“위로 더 당겨야지.”

건물(6월12일 인천 부평구 갈산동) 옥상 양쪽에서 조합원들이 펼침막의 위치를 조정했다. 직사각형의 천이 황호인의 손짓을 따라 몸을 밀어 올렸다. 펼침막이 자리를 잡자 건물을 기어오르던 글자들도 동작을 멈췄다. 글자들이 건물 아래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그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여기가 노동자 다 죽이는 홍영표 (지역구) 사무실입니다.”

펼침막 밑에서 부평공장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전지환(가명·3회 등장인물)과 군산공장 해고노동자 이완규(군산비정규직지회장)가 전 여당 원내대표의 이름을 올려다봤다. 펼침막이 매달린 2층 높이의 외벽은 그들의 절박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아득한 절벽 같았다. 지엠(GM·제너럴모터스)이 늘어뜨린 ‘서열 사슬’의 맨 끄트머리에 그들이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다.

두 달 보름 전(3월28일)에도 전지환과 이완규는 그 이름을 입에 담아 외쳤다. 지엠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개소식(부평공장 홍보관)에 내빈으로 참석한 그(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축사 사이사이에 그들의 구호가 끼어들었다.

“오늘은 정말 기쁜 날입니다. (한국지엠 앞날을 두고 협상하던) 작년 1월에 배리 엥글 (지엠 해외사업부문) 사장을 처음 만난 뒤 우리 둘은 친구가 됐습니다. 그는 지난 1년 사이 내가 가장 자주 만난 외국인입니다.”

“비정규직 해고하는….”

“그땐 지엠이 한국을 떠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 배리 엥글 사장, 저나 한국 정부가 약속(산업은행의 8천억원 지원 등) 안 지킨 것 없지요?”(엥글 “그렇습니다.”)

“한국지엠 비호하는….”

“이제 아태본부가 부평으로 왔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지엠의 미래를 확신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홍영표를 규탄한다.”

행사장 밖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두드리며 ‘그 이름’을 불렀다.

“홍영표는 껍데기뿐인 아태본부 개소식에 참석해 자신이 성과를 냈다고 포장하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로 촉발된 ‘지엠 사태’ 당시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면서 민주당 한국지엠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는 산업은행-지엠-노조 사이의 입장을 조율하며 협상 타결에 깊숙이 관여했다.

“지엠 아태본부 설립(2018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지엠 상호협력 양해각서’ 체결 사항)은 한국에 대한 지엠 의지의 재확인입니다.”

그의 ‘친구’ 배리 엥글이 인사말을 하며 아태본부 개소의 의미를 말했다. 아태본부가 한국으로 옮겨왔으므로 지엠의 한국 철수설도 불식될 것이란 설명이었다.

“아태본부는 제품 기획부터 생산과 판매, 다양한 지원 기능까지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총괄 관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배리 엥글 뒤에서 국내 시판을 시작하는 ‘트래버스’(대형 스포츠실용차)와 ‘콜로라도’(중형 픽업트럭)가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글로벌 지엠이 한국 밖에서 만들어 한국에 파는 두 차량은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과 무관했다. ‘아태본부는 껍데기’라고 주장하는 확성기 소리가 유리창을 통과해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태본부는 싱가포르에서 폐쇄(지엠의 오스트레일리아 공장 가동 중단 뒤 주요 기능이 중남미본부로 이전하면서 유명무실화)된 조직으로 지역 경제에 아무런 보탬이 안 된다.”

개소식 2주일 뒤 지엠은 ‘캐딜락코리아’(글로벌 지엠의 한국 내 수입차판매법인)의 회사명을 ‘지엠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로 바꿨다. 지난해 산업부-지엠 양해각서 체결 당시 홍영표가 “지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던 아태본부는 결국 ‘한국 내 기존 법인의 재활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개소식 행사장 안과 밖이 아태본부의 무게를 두고 겨루고 있을 때 배리 엥글의 인사말이 계속됐다.

“(지엠 사태 뒤) 한국지엠이 이룬 그간의 성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지엠TCK) 설립 및 ….”

지엠TCK 설립을 ‘성과’로 받아들이는 한국지엠 직원들은 별로 없었다. 양해각서 체결 뒤 몇달 지나지 않아 한국지엠은 생산 부문과 연구개발 부문(2019년 1월 지엠TCK 출범)으로 법인 분리를 강행했다. ‘버릴 것과 챙길 것을 쪼개 철수하기 쉬운 구조로 만들려 한다’는 인식이 회사 구성원들 사이에 퍼졌다. 지엠TCK 노사교섭에선 회사의 합병·양도·이전 때 노조와 협의하지 않고 통보만 하면 되도록 하는 사쪽의 단체협약안이 제시됐다.

“작년에 이쿼녹스(한국지엠이 수입하는 글로벌 지엠의 중형 스포츠실용차)를 사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부평갑)

개소식엔 여당 원내대표뿐 아니라 지역 야당 국회의원, 정부 부처 차관들, 광역·기초 자치단체장 등 각계 각급의 정치인과 대표들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들은 아태본부 유치에 들인 자신들의 노력과 치적을 앞세우거나 지역경제를 책임진 ‘을’로서 ‘갑’ 지엠에 부탁했다.

“오늘을 계기로 ‘인천 하면 지엠’ 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발전해나가기 바랍니다. 인천시도 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박남춘 인천시장)

“경남에는 지엠 창원공장이 있습니다. 고용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문승욱 경남도 경제부지사)

그들과 지엠 경영진은 서로를 마주보며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정치를 했다. 개소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밖에서 기다리는 노동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경호를 받으며 출입통제구역으로 빠져나갔다.

홍영표 당시 더불어민주당 한국지엠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배리 엥글 지엠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이 2018년 4월23일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홍보관 회의실에서 노사 임단협 결과를 발표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글로벌 기업, ‘글로벌한’ 정치

홍영표는 선거 때마다 자신의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용접공’ 이력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지엠 전신인 대우자동차 시절의 노동운동을 자산 삼아 정치를 시작했다. 그의 지역구(부평을) 사무실도 부평공장을 대각선에서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개소식 때 홍영표를 대면하지 못한 전지환·이완규와 동료들이 두 달 보름 뒤(6월12일) 그 사무실 앞에서 다시 구호를 외쳤다. 집회 사회자가 말했다.

“대우차 해고자임을 내세워 (부평공장이 있는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이 됐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따지려 한다.”

지난해 군산공장 폐쇄와 지엠의 한국 철수를 두고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를 만났다.

“그때 홍영표 위원장은 한국지엠이 먼저 정상화돼야 일자리가 보장된다며 현실적으로 비정규직들의 요구(복직과 정규직화 등)를 들어주기 힘들다고 했다. 산업은행은 8100억원의 국민 혈세를 투여했는데 그 돈을 받은 지엠은 오히려 법인 분리를 단행했다. 부평 2공장도 2교대에서 1교대로 바꿔 비정규직들을 해고했다. 한국 정부가 지엠의 구조조정 비용을 댄 결과가 돼버렸다. 이것이 그가 말한 성과인가. 그가 아태본부 개소식에서 말한 것처럼 정말 한국지엠이 정상화됐다면 이젠 비정규직 문제를 풀 답을 내놓아야 한다.”(황호인 부평비정규직지회장)

전지환이 휴대전화를 들어 집회 장면을 촬영했다.

지난해 부평 2공장의 1교대 전환 과정에서 그도 일자리를 잃었다. 2006년부터 부평공장에서 일한 12년 동안 그가 속한 사내하청업체는 네차례 없어졌다. 해고 뒤 받아오던 실업급여는 이달(8월)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10월 태어난 그의 딸이 아빠의 품과 마음을 파고들었다.

이완규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다.

군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인 그는 군산에 있지 않고 부평에서 부평공장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였다.

“지난해 5월31일 군산공장이 폐쇄됐다. 공장 부지까지 매각(지난 5월15일 자동차부품업체들로 구성된 MS컨소시엄이 매입)되면서 이젠 돌아갈 공장이 없어졌다. 군산공장 앞에 친 농성 천막을 걷고 부평으로 올라왔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부평 동지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때 함께 돌아가겠다.”

전세계에서 공장을 짓고 폐쇄해온 글로벌 지엠의 비즈니스 서열 끝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서열의 맨 앞은 정치의 각축장이었다. 유권자들의 표를 잡아야 하는 미국 대통령과 그 유권자를 구조조정해 사업을 ‘효율화’하려는 거대 기업의 정치가 부딪혔다.

지엠은 지난달 31일 미국 미시간주 워런의 변속기 공장을 멈췄다. 3년 전 대선 후보 시절 도널드 트럼프는 워런 공장을 찾아가 “내가 당선되면 한 개의 공장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끌어당겼다. 그의 대통령 당선 2년 뒤(지난해 11월26일) 지엠은 워런 공장을 포함한 북미 공장 5곳과 해외 공장 2곳(이름 미공개)의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외쳐온 트럼프는 “많은 압박 수단이 있다”며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계획 발표 8개월 뒤 지엠은 워런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유권자 표 잡으려는 미국 대통령과
그 유권자들 구조조정하려는 지엠
북미 공장 폐쇄 반대하는 트럼프가
군산공장 폐쇄 환호하며 “내 공로”

지엠 압박하는 트럼프 ‘관세 발언’이
창원으로 ‘불똥’ 도장공장 착공 연기
미국 내 정치가 태평양을 건너면서
한국 공장과 노동자들의 삶 흔들어

구조조정으로 절감된 비용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사업으로 돌렸다. 지엠에게 내연기관 자동차는 ‘정리 대상’이었고, 군산공장 폐쇄도 그 흐름 위에 있었다. 북미 공장 폐쇄를 반대한 트럼프는 군산공장 폐쇄는 환호했다. 폐쇄 발표 당일(2018년 2월13일)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엔 이런 소식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라며 군산공장 가동 중단을 자신의 공로로 돌렸다. “공장이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고 있다”며 한국 군산의 비극을 미국 정치의 표 계산에 끌어다 넣었다.

군산이 ‘희생양’이 된 이유

글로벌 기업을 둘러싼 글로벌한 정치가 군산에 닥치고 있을 때 그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힘이 작은 도시 군산엔 없었다.

“무력했다.”

군산시의원 서동완(더불어민주당)이 군산공장 폐쇄 전후를 떠올렸다.

그도 그 공장 노동자 출신이었다. 1996년 대우자동차가 소룡동에 공장을 세워 가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군산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조립된 자동차의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을 했다. 2006년 처음 시의원에 당선됐고 현재 4선 의원(시의회 부의장)이 됐다. 지난해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 발표와 동시에 희망퇴직을 받을 때 그도 퇴사(그 전까진 휴직자 신분)했다.

서동완은 군산의 정치인이었으나 “일개 시의원”이었다. “거대 기업의 결정 앞에서 기초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글로벌 지엠은 국가와 정부를 상대로 사업했다. 지엠이 ‘협상용 카드’로 한 도시의 운명을 내던졌을 때 군산의 사활을 결정하는 정치에 그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회사를 팔더라도 새 주인으로 지엠만은 안 된다고 했었다.”

2001년 대우차가 지엠에 매각될 때 그는 군산공장 노조 지부장으로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했다. “세계 곳곳에 공장을 짓고 필요가 없어지면 먼지 털듯 털고 나가는 지엠의 사업 방식”을 우려했다. 우려는 17년 뒤 현실이 됐다.

“군산공장을 살려달라고 국회를 방문하고, 건의문을 써서 청와대에도 올리고, 시민들과 집회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주길 기대했지만 힘이 될 의원을 찾기 힘들었다. 민주당 시의원들이 전북의 당 소속 국회의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지역구가 아니어서 자세히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 “지엠특위 홍영표 위원장을 만났을 땐 이미 폐쇄 발표가 난 군산공장보다 부평공장의 생존에 더 관심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서동완은 직감했다.

‘아, 군산은 힘들겠구나.’

대우차 시절 군산공장은 ‘김우중식 세계경영의 전진기지’였다. 지금의 군산시청 건물도 대우가 지었다. 현재 부지에 청사를 지어주는 조건으로 당시 시청 건물과 땅을 대우가 인수했다. 김우중은 울산이 ‘현대의 도시’가 된 것처럼 군산을 ‘대우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대우버스 부산공장도 군산공장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군산공장은 한국지엠(1996년 설립)의 가장 젊은 공장이었다. 부평공장(1983년 설립)과 창원공장(1991년 설립)보다 설비 상태가 나았다. 물류 환경도 유리했다. 부평과 창원에서 생산된 차량은 인천과 마산으로 옮겨 배에 실었지만 군산공장은 바로 옆에 전용부두가 있었다.

‘그런데 왜 군산공장을?’

서동완은 부평이나 창원 대신 군산이 ‘희생양’이 된 이유를 정치력의 차이로 이해했다.

본사 격인 부평공장의 철수는 지엠의 한국 철수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부평공장의 존폐는 수도권 경제·민심과 직결됐다. 공장 위치는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했다.

통합 창원시(104만)의 인구는 군산시(27만)의 4배에 가까웠다. 국회의원 수는 창원이 5배(창원 5명, 군산 1명)였다. ‘진보정치 1번지’(성산구)로 불릴 만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정도와 노조의 영향력도 창원이 군산을 앞섰다.

“처음엔 창원공장을 폐쇄하려고 했다가 잘못 건드리면 정치권과 노동자의 감당하기 힘든 저항을 부를 수 있다고 판단해 군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고용 수단이 제한된 소도시들은 특정 기업에 의지하는 ‘기업도시’가 되는 것으로 미래를 도모했으나 기업이 도시를 버리고 빠져나가면 대책 없이 무너졌다. 군산공장이 쪼그라드는 조짐은 수년 전부터 있었다.

“대규모 실직에 대한 군산시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군산공장 폐쇄 3년 전(2015년 3월6일), 서동완은 시의회에서 당시 군산시장에게 물었다. 사쪽과 정규직 노조의 합의(2월10일)로 군산공장의 ‘2교대→1교대’ 전환이 결정된 직후였다. 지엠 본사가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한국지엠의 생산 물량을 줄인 탓이었다. 이 결정으로 하청업체까지 1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돼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노사 협상 타결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군산 시내 곳곳에 걸리고 시장께서도 환영한다는 말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습니다. 이게 환영하고 감사할 일입니까.”(본회의 의사록) 이완규도 이때 해고됐다.

그는 군산공장 폐쇄 발표가 있던 바로 그날(2018년 2월13일)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이겼다. 법원이 정규직으로 가는 문을 연 날 회사는 그가 돌아갈 공장의 문을 닫아버렸다. 승소한 원고들 중엔 부평공장의 전지환도 있었다. 판결 10개월 뒤 그는 3년 전 이완규가 해고됐을 때와 동일한 이유(공장의 1교대 전환)로 공장에서 쫓겨났다. 다른 공장에서 다른 시기에 해고된 그들은 이제 부평공장 정문 앞에 함께 있었다.

지난 3월28일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홍보관에서 열린 지엠 아태지역본부 개소식. 연합뉴스

“하루라도 빨리 공장으로”

지엠을 둘러싼 정치 먹구름이 태평양을 건너면 폭풍우가 돼 한국에 닿았다.

“창원 도장공장이 착공 안 되면 지엠이 한국에서 생산 물량을 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걱정이 많다.”(한국지엠 한 노동자)

지난 4월 한국지엠은 그달 말로 예정했던 창원 도장공장 착공식을 연기했다. 창원 도장공장은 글로벌 지엠이 한국지엠에 배정한 신차(크로스오버 실용차) 생산을 뒷받침할 시설이었다.

5개월 전(지난해 11월28일) 트럼프가 자신의 트위터에 ‘폭탄’을 실었다. 지엠의 북미 공장 폐쇄계획 발표 이틀 뒤였다. ‘수입차에 관세 25%(한국의 경우 현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무관세) 부과 검토’ 방침이 내외신 보도를 타고 전파됐다.

“(미국으로 들여오는 외국차에 관세를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차가 (수입 대신) 이곳(미국)에서 생산될 것이고 지엠은 오하이오, 미시간, 메릴랜드 공장들을 닫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폭탄이 겨냥하는 과녁을 특정했다. “그 방안이 검토되는 이유”는 “지엠 사건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공장을 닫아야 한다면 북미 공장이 아닌 국외 공장이 먼저’란 압박이기도 했다.

2017년 한국 자동차 전체 수출 물량(253만194대)의 33%(84만5319대)가 미국으로 갔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대미 수출 비중이 45%(지난해 수출 차량 36만9370대 중 16만5497대)에 달하는 한국지엠에는 더 무서운 ‘예보’였다. 현실화되면 생산라인 폐쇄가 군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지엠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결정되는 5월18일 이후로 창원 도장공장 착공을 미루며 추이를 지켜봤다. “관세가 부과되면 신차 생산(80% 이상 북미 수출) 차질이 불가피해 지엠의 한국 사업 축소 또는 철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창원 노동자들은 우려했다.

“생큐.”

지난 5월8일(현지시각) 트럼프가 트위터에 지엠을 다시 불러냈다. 그는 메리 배라 지엠 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좋은 뉴스”를 전했다. 그날 지엠은 오하이오주의 로즈타운 공장(폐쇄 대상으로 공표됐던 북미 공장 중 한 곳)을 문 닫는 대신 매각 협상을 하고 있다며 “(성사되면) 상당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의 압력 앞에서 지엠이 구조조정 계획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열흘 뒤(5월18일) 트럼프는 수입차 관세 부과 결정을 최장 6개월 미루며 화답했다. 5월27일 한국지엠은 창원 도장공장 공사를 시작했다.

“다급하다.”

황호인(부평공장 비정규직지회장)은 “우리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전환기에 직면한 자동차산업과, 사업 구조조정으로 새 길을 찾는 글로벌 기업과, 지지층 표를 지키려는 트럼프의 정치가 연쇄 파도를 일으키며 한국을 때렸다. 그때마다 ‘앞’에서 가장 먼 노동자들이 가장 세차게 흔들리다 잘려나갔다.

“더 밀려나기 전에 하루빨리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공장이 사라진 군산의 해고노동자들과 돌아갈 공장이 사라질까 두려운 부평의 해고노동자들이 한국지엠 부평공장 앞에서 목소리 합쳐 복직을 요구했다.

집회 시간만 되면 걸어 잠기는 정문 저편에서 공장 굴뚝이 하얀 연기를 울컥 뿜어 올렸다.

군산 부평/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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