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 빨대' 1주새 5억 팔렸다..대박 터뜨린 '조롱의 정치'

홍지유 2019. 8.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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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종이 빨대는 필요 없다"
민주당 정책·환경운동 싸잡아 조롱
플라스틱 빨대에 TRUMP 새겨 판매
개당 2000원에도 날개돋힌 듯 '완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감 작용"


[알쓸신세] 플라스틱 빨대, Why not?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플라스틱 사용을 장려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최근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선거대책본부(이하 대선 캠프)가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빨대를 판매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재선 자금을 마련한 겁니다.

트럼프 대선 캠프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물품들. 윗줄 두번째 사진이 트럼프 빨대. [사진 샵도널드트럼프닷컴]

지난달 트럼프 대선 캠프는 ‘TRUMP’ 로고를 새긴 빨간색 플라스틱 빨대를 팔아 1주일 만에 46만 달러(약 5억4000만원)의 자금을 모았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선대본부장 브래드 파스케일의 머리에서 나왔는데요. 기내에서 자신이 쓰던 종이 빨대가 절반으로 툭 찢어지자 짜증이 난 파스케일이 순간적으로 “플라스틱 빨대에 트럼프 이름을 새겨서 팔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겁니다. 그는 즉시 자신의 SNS에 “종이 빨대는 지겹다”고 썼고, 실무진에게 ‘트럼프 빨대’ 제작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홍보e메일을 보냈죠.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Make straws great again)”가 그 제목이었습니다.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패러디한 것으로, e메일엔 “진보적인 종이 빨대는 쓸모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는데요. 종이 빨대로 음료를 마시면 빨대가 젖으면서 흐물흐물해지고, 더러 종이 빨대에 입혀진 코팅 때문에 음료에서 이상한 맛이 난다는 점에 착안해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제안을 한 겁니다.

트럼프 빨대를 구매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시민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구매 인증 게시물. 게시자는 트럼프 빨대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진보적인 종이 빨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사진 인스타그램]

지난달 선보인 이 트럼프 플라스틱 빨대는 1차 판매분이 몇 시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플라스틱 빨대 1팩(10 개입)을 15달러(약 1만8000원)에 팔았으니 개당 가격이 2000원에 육박하는데도 말이죠.


대세 거스르는 역발상, 트럼프 캠페인

트럼프의 이런 전략은 ‘대세’를 거스르는 역발상이자, 환경 운동, 나아가서는 민주당 정책 전반에 대해 조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플라스틱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시애틀에서는 ‘빨대 없는 시애틀’ 캠페인이 진행 중이고, 하와이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 전면 금지를 검토 중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빨대보다 더 큰 환경 문제들을 갖고 있다”며 환경주의자들이 사소한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뉘앙스로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을 비웃어왔습니다. 그러다 이번엔 트럼프 선거 캠프가 당당히 플라스틱을 쓰자는 듯 트럼프의 이름을 붙인 제품을 판매한 겁니다. 이 캠페인의 이면에는 “민주당은 이상적인 당위만 내세울 뿐 현실적 대안을 제안하는 데엔 무능하다”는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한 목적(환경 보호)에서 시작한 정책이라도, 쉽게 망가진다면(종이 빨대)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운 것이죠.

2018년 미국 대학 풋볼 리그에서 우승한 클램슨 타이거팀 소속 미식 축구 선수들이 지난 1월 백악관에 초청돼 햄버거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햄버거를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소 황당해 보이기도 하는 ‘트럼프 빨대’가 완판 행진을 한 배경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2일 “(채식주의와 환경보호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이슈에 대놓고 반대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라고 여론조사 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민주당이 미국의 햄버거를 훔치려 한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소 절감 노력을 비웃으며 백악관 손님들에게 햄버거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민주당을 향해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햄버거에 무슨 ‘정치적 메시지’냐고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소속의 정치 신예,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의 ‘그린 뉴딜’ 정책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햄버거 만찬을 열고 있는 모습. [EPA]

그린 뉴딜 정책은 기후 변화 대응 차원에서 오는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로 만들고 100% 친환경 에너지만을 사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코르테즈 의원은 그린뉴딜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농축산업을 아예 없애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채식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매일 아침이나 점심,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해명했는데요. 탄소 저감을 위해 햄버거와 같은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이 말이 공화당에 좋은 먹잇감이 된 겁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지난 5월 워싱턴에서 자신의 주요 공약인 그린뉴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역시나 "코르테즈가 미국의 햄버거를 훔치려 한다"며 여론전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엔 자신의 트위터에 "민주당에겐 그린 뉴딜을 통과시키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일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는 하지도 않는 비행기, 자동차, 소, 석유, 가스, 군대를 영원히 없애겠다니 아주 멋지다"며 비꼬았고요.

롭 비숍 공화당 하원의원은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햄버거를 들고 연설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그린 뉴딜이 통과된다면,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기도 전에 불법이 될 것"이라며 햄버거를 먹는 퍼포먼스를 펼쳤죠.


"분열 조장하는 대통령" vs "정치적 올바름 지겹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3일 오피니언 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오직 미국인을 분열시킴으로서만 재선될 수 있다고 믿고있다"고 썼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환경보호 등 진보적 가치를 조롱한 점을 비판한 것이죠.

그런가하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지나친 강요가 미국 사회에 만연한 것은 사실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모든 연령과 인종의 미국 시민들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한 연구를 인용해 내보내기도 했는데요.

한때 정계의 비주류로 여겨졌던 트럼프 대통령 진영의 반환경주의적 아이디어가 대선전 이슈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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