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눈을 의심했다..명동 한복판 건물 현 소유주는 "조선총독부"

김준범 2019. 8. 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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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지금도 서류가 그렇게 돼 있다고요?" … …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취재를 시작할 때, '어! 이게 말이 돼?'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건축물 소유자 : 조선총독부 체신국」…2019년 실제 상황

서울 남산 밑자락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밀집 거주지였습니다. 식민 통치의 최고 기관인 조선총독부의 청사도 1925년까지 남산 기슭에 있었습니다. 흔히 아는 광화문 앞 청사는 1926년 신축된 건물이고요. 자연스레 일본인 공무원의 관사와 상가가 남산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과 하야시가 치열하게 영역 다툼을 벌인 무대, '혼마치(本町)'도 지금의 충무로역과 명동역 부근입니다. 여러모로 서울 명동은 일제 당시 일본인들의 흔적이 짙게 묻었던 곳 중 하나입니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 강점기에 사정일 뿐이죠. 짧게 잡아도 7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알다시피 지금의 명동은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일제 건축물도 모두 철거된 지 오래지요. 일제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 듯합니다. 그러나 놀라움과 황당함의 시작은 바로 여기부터입니다.

KBS는 서울 중구청의 도움을 받아 명동 일대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했다. ‘조선총독부 체신국’ 명의가 살아있는 주택을 찾았다.


명동의 한 건물은 소유자가 '조선총독부 체신국'입니다. 예전 문서가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2019년 현재 유효나 정부의 공문서에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일제 말기 일본 육군 79연대장을 지낸 '하야시다 카네키' 소장도 다른 건물의 소유자로 등재돼 있습니다.

눈을 서울 밖으로 돌리면,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신탁주식회사' 등 수탈의 첨병에 섰던 일제 회사들 명의도 아직 살아 있습니다. 당시 한국인 소작농들을 괴롭혔던 대지주의 소유권 기록도 삭제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류대로라면, 2019년 대한민국 국토 곳곳에 옛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 소유의 건물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이런 건물이 서울 중구에서만 1,100여 건 넘게 나왔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될지 정확히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태 전수조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적산 환수'의 비극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화근은 '적산 환수'의 비극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을 줄인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자국에 남은 적국(민)의 재산'을 뜻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당시 살았던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말합니다.

광복 이후 적산은 국유화가 확고한 원칙이었습니다. 당연한 정의의 실현이지요. 실제로 정부는 「귀속재산처리법」, 「귀속재산처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국유재산법」 등을 제정해 적산 환수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광복 이후 상당수 친일 인사가 득세했죠. 일제 잔재 청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6·25로 수많은 자료가 소실됐습니다. 등기소만 50곳 이상 불에 탄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부동산 주인 찾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산 환수를 담당하는 정부의 주무기관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2012년 조달청이 전담하기 전까지 무려 7번이나 주무기관이 바뀌었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부동산 서류를 확인하려면, 전산화가 필수인데 2000년대 들어서야 완료됐습니다. 정부의 의지도, 능력도 부족했던 겁니다.

일제 당시 일본인의 소유권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인천의 한 택시회사, 서울의 한 초등학교, 서울의 한 단독주택 단지(왼쪽부터)에서도 현재 등기에 일본인 이름이 버젓이 살아 있다.


이렇게 적산 환수는 '골든 타임'을 놓쳤습니다. 이 틈을 타 꼼수도 등장했습니다. 응당 국유지로 전환됐어야 할 땅을 자기 명의로 돌려놓는 은닉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도심의 상당수 '알짜' 땅은 실세들에게 공짜로 불하되기도 했습니다. 그 혜택은 일부 친일파도 누렸습니다.

미루고 미룬 대가는 혹독…그러나 반드시 정리해야!

일본의 소유권 기록이 남아 있는 정부 문서는 등기부,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등입니다. 이 잔재를 74년째 남겨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더 큰 문제는 정리가 늦어질수록 절차가 복잡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얽히고설킨 권리관계 등 확인해야 할 사항이 눈덩이처럼 늘었기 때문입니다. 74년 동안 켜켜이 쌓인 복잡한 이해관계를 걷어 내는 일은 매우 복잡한 행정 업무입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또 미룬 대가겠지요. 적산을 정리하는 작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산의 흔적을 이대로 남겨둘 수는 없겠죠. 정부가 일제 잔재를 내버려두는 셈이니까 말입니다. 원래 국고로 환수했어야 할 땅이라면 국유화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부동산이라면, 일본 명의를 지워 없애고 현 소유자의 권리를 찾아줘야 합니다.

이 일은 위에서 본 것처럼 매우 복잡합니다. 신속히 정리하려면 특별한 권한을 가진 기구가 꼭 필요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특별법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 조속한 입법 논의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건국 100년, 광복 74년을 입으로만 기념할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적산(敵産) Q & A

Q. 혹시 일본 측이 서류상 기록을 토대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나?
A. 불가능하다. 일제가 남긴 적산은 국고 환수가 확고한 원칙이다. 설사 일본 측의 명의가 서류상 살아 있어도, 우리 정부가 일본 측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Q. 내 땅이나 건물에 일본인 명의가 남아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
A. 분명 내가 소유한 부동산인데 일본인 명의도 함께 남아 있다면, 1개 필지에 2개 이상의 부동산 등기(또는 대장)가 살아있는 경우다. 지금의 권리 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일본 명의의 부동산 서류는 말소해야 한다.

Q. 말소는 어떻게 하나?
A. 관할 시청이나 구청을 방문해 말소를 요청해야 한다. 다만, 말소에 대한 시간적, 금전적 비용은 현 소유자가 부담해야 한다. 현재로써는 서울 중구청만 일제 잔재 차원에서 무료로 직권 말소해주고 있다.

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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