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종 문화소통]정의공주가 훈민정음 창제 거들었다? 전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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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8남 2녀 중 둘째 딸이다.
그런데 1976년에 발간된 '죽산안씨대동보'에 정의공주가 훈민정음과 관련 있다는 다음 기록이 실려 있다.
죽산안씨대동보의 위 기록이 옳다면, 세종께서 훈민정음 28자를 1443년 음력 12월에 친히 창제한 뒤, 1446년에 완성한 훈민정음 해례본 내 총 4장에 달하는 '어제훈민정음' 문장에 대해 정의공주는 토를 다는 작업을 완수한 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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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의공주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8남 2녀 중 둘째 딸이다. 그녀는 1428년 14세의 나이로 죽산안씨인 안맹담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1976년에 발간된 ‘죽산안씨대동보’에 정의공주가 훈민정음과 관련 있다는 다음 기록이 실려 있다. “世宗憫方言不能以文字相通, 始製訓民正音, 而變音吐着, 猶未畢究, 使諸大君解之, 皆未能. 遂下于公主, 公主卽解究以進. 世宗大加稱賞, 特賜奴婢數百口.”
이를 이가원(1917~2000) 선생이 1994년 4월 연세대 국학연구원 세미나에서 ‘훈민정음창제’란 논문을 통해 해석이 어려운 단어들은 그대로 써서 다음과 같이 초벌 번역해 알렸다. “세종이 방언(方言)이 문자로 더불어 서로 통하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비로소 훈민정음을 창제할 제,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을 오히려 다 연구하지 못하여 제 대군으로 하여금 풀게 하였으나 모두 하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었다.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상하고 특히 노비 수백구를 하사하였다.”
하지만 위 내용은 조선의 제1정사서인 ‘조선왕조실록’ 및 훈민정음 해례본엔 나오질 않아 신뢰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 기록을 가설로써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단어는 ‘吐着(토착)’이다. ‘吐(토)’는 한문에 토를 다는 것을 뜻하는 ‘懸吐(현토)’의 ‘토’이다. <사진>에서 보듯, 훈민정음 언해본의 “國之語音이 異乎中國하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할쌔” 중에서, 한문의 구절 끝에 붙인 ‘이, 하야, 로, 할쌔’ 등을 ‘토’라 한다. 한문 원문엔 없는 것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우리나라만의 ‘토씨’들이다.
1428년 윤 4월 18일자 세종실록은 “무릇 독서할 때에 우리말로써 한문 구절 끝에 달아 읽는 것을 시속에서 吐라 한다”고 주석했다. 그 날 세종은 옛적 태종이 권근에게 오경에 토를 달라고(著五經吐) 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 실록 문장 ‘토를 달다’에서 동사는 ‘着(붙일 착)’과 통용자인 ‘著(착)’자가 쓰였다. ‘토를 붙이다’의 동명사형인 ‘토붙임’은 ‘著吐(착토)’의 순서를 바꾼 ‘吐著(토착)’이므로, 통용자가 쓰인 죽산안씨대동보의 ‘吐着(토착)’은 조선 초기 용어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죽산안씨대동보 문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세종께서 우리 동방의 말소리(方言)가 한자로 더불어 (중국과 달라) 서로 유통할 수 없음을 어여삐 여겨, 처음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 문장을 지으셨으나, 변음과 토를 붙이는 일은 아직 다 연구하지 못한지라, 여러 대군들로 하여금 풀게 하였는데 모두 해내지 못했다. 마침내 공주에게 하명하니 공주가 즉시 풀어서 바쳤다.” (번역: 박대종)
광대한 범위의 한자문화권에서 ‘방언’이란 어떤 지방에서 유행하는 규범적 변체 한자어음을 뜻한다. 그러니 위 문장에서 ‘변음’은 ‘받아→바다, 독립→동닙’ 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동방지역의 변체 한자어음, 곧 동국정운을 말한다. <사진>의 언해본을 보면 ‘國之語音’이란 구절의 각 한자 밑에 우리네 정음이 표기돼있는데, 그걸 정의공주가 했다?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이 하나하나 세종의 재가를 받아 한 게 아니고?
무릇 문장에 토를 다는 작업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죽산안씨대동보의 위 기록이 옳다면, 세종께서 훈민정음 28자를 1443년 음력 12월에 친히 창제한 뒤, 1446년에 완성한 훈민정음 해례본 내 총 4장에 달하는 ‘어제훈민정음’ 문장에 대해 정의공주는 토를 다는 작업을 완수한 게 된다. 즉 ‘國之語音’을 ‘나랏말싸미’로 언해한 것이 아니라 ‘國귁之지語어音음이’로 하는 작업을 해낸 것이다. 어제서문만 셀 때 “국지어음이~편어일용이니라”까지 음을 달고 총 25자에 달하는 <사진> 내 붉은 색 부분인 현토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세종은 물론 석보상절의 저자 수양대군이 그 작업을 못할 리 없는데 공주만이 해냈다? 그걸 믿어준다손 치더라도, 정의공주는 훈민정음 28자의 창제 및 해례본 작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heobul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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