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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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중국 하얼빈역에서 7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이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12일 현지에 세워졌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은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한 일본군에 의한 신한촌 참변 때 연해주에서 체포돼 총살을 당해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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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수리스크서 제막식 거행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한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이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12일 현지에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안 의사가 사격연습을 하던 그의 고택에 세워졌다. 2.5m 높이의 비석은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태극기 문양도 새겨졌다.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축사에서 “일제강점기 추운 조국의 현실에 따뜻함을 전해주신 최재형 선생을 우리는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오늘 제막하는 기념비 비문처럼 최재형 선생은 ‘애국의 혼, 민족의 별’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소강석 이사장은 “오늘 추모비를 세움으로써 최재형 선생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민족의 광야에 순백의 꽃으로 피어나고, 별처럼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제막식에는 최재형 선생 추모곡 ‘자유의 아리아’를 테너 박주옥 교수가 불렀고, 창원국악관현악단과 바이올리니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 양의 연주와 헌화가 이어졌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연해주로 이주해 군납사업을 하며 부를 쌓았다. 전 재산을 항일 독립운동과 한인 동포 지원에서 쏟아부어 그에게는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라는 애칭이 따라다녔다. 연해주에서 한인사회 대표 지도자로서 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나섰고, 대동공보사와 대양보, 권업신문을 만들어 민족의 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의병부대인 ‘동의회’를 조직해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지원했으며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됐다.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우수리스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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