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표지석] <47>장예원(掌隸院)터

김정욱 기자 2019. 8.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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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원(掌隷院)은 조선시대에 노비문서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이 혼란스럽자 이 틈을 타 노비들이 장예원을 습격해 노비문서를 불태운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노비들은 "문서가 없어지면 우리가 노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장예원에 불을 질렀고 이때 노비들이 눈물을 흘리다 갑자기 웃으며 춤을 췄다고 한다.

장예원은 조선 후기에 신분제 해체현상으로 업무가 축소되면서 영조 40년인 1764년에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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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원 터 표지석
[서울경제] 장예원(掌隷院)은 조선시대에 노비문서를 관리하고 노비 관련 소송을 담당하는 관청이다. 옛터 표지석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있다.

태종 1년인 1401년 ‘형조도관’(刑曹都官)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됐고 세조 12년인 1466년 ‘변정원’(辨定院)으로 개칭된 후 세조 13년인 1467년 장예원으로 바뀌었다. 장예원은 형조(지금의 법무부) 산하 기관이었으며 주요 관원으로는 정3품인 판결사(判決事) 1명, 정5품인 사의(司議) 3명, 정6품인 사평(司評) 4명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정이 혼란스럽자 이 틈을 타 노비들이 장예원을 습격해 노비문서를 불태운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노비들은 “문서가 없어지면 우리가 노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장예원에 불을 질렀고 이때 노비들이 눈물을 흘리다 갑자기 웃으며 춤을 췄다고 한다. 장예원은 조선 후기에 신분제 해체현상으로 업무가 축소되면서 영조 40년인 1764년에 폐지됐다./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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