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5 - 사신도는 언제부터 그려졌나?

임기환 입력 2019. 8. 8. 15:03 수정 2019. 8.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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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명장면-76] 강서대묘 사신도가 워낙 뛰어난 품격을 자랑하다 보니 고구려 사신도를 강서대묘의 그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강서대묘 사신도처럼 뛰어난 걸작이 그냥 절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거기에 이르는 하나의 회화적·사상적·기술적 맥락 등이 있기 마련이다. 전회에서 강서대묘 천장벽화의 수목도나 산악도, 신수도, 황룡도 등을 중심으로 그런 맥락을 짚어 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신은 동아시아에서 크게 유행하고 인기를 모은 방위신(方位神)으로서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사신의 기원은 별자리로, 동아시아 별자리인 28수를 동서남북 사방으로 구획하여 7수씩 나누어 이를 신령스러운 동물인 사신에 배정하였다. 또한 오행 사상에 따라 중앙은 토(土)로서 황색, 동방은 목(木)으로 청색, 서방은 금(金)으로 백색, 남방은 화(火)로 적색, 북방은 수(水)로 흑색 등 사신의 방위 색깔도 맞추었다. 시기가 지나면서 점차 사신은 단지 별자리에 그치지 않고 벽사의 의미도 갖게 되고, 음양오행 원리를 드러내는 신령스러운 존재로서의 성격이 점점 두드러져 갔다.

사신이라는 도상과 관념이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때는 중국 전한 때부터다. 고분의 내부나 건축물 등 공간 또는 동경(銅鏡) 등 기물에 사방의 수호신으로서 사신을 장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이러한 사신과 관련된 문화적 양상이 고구려에 수용되면서, 특히 죽은 자의 공간인 무덤에 사신이란 도상과 관념이 고구려 방식으로 적용되고 변화되어 갔다. 벽화고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초기에 사신은 천장에 내세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조그맣게 그려졌다. 그러다가 점차 사신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면서 사신은 방위신으로서 성격도 강화되고 신비스러운 동물의 형상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

6세기 중엽 이후에는 사신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무덤 칸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핵심 제재로 등장하였다. 이는 사신이 단지 내세를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에서 무덤의 수호자이며 우주적인 존재로서 그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회화적 표현에서도 그 신령스러움을 극대화하는 형상으로 진전되어 갔다. 이렇게 사신도를 고분벽화의 중심 주제로 삼는 것은 이웃 나라에선 찾기 어려운 고구려 고분 벽화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신도가 무덤 벽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까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장 이른 시기에 사신이 표현된 벽화 무덤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위치한 무용총이다. 무용총은 여기서도 여러 차례 소개하였는데, 천장 그림이나 사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무용총 천장에는 해와 달, 별자리, 천인과 선인, 서수, 연꽃 등과 많은 요소가 다채롭게 어울려 화려한 하늘 세계를 이루고 있는데, 사신도 그중 하나로서 그다지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다. 동쪽에 청룡, 서쪽에 백호가 선인·연꽃 등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그나마 눈길을 끄는 것은 남쪽에 그려진 주작이다.

무용총 주작도

긴 꼬리가 있는 닭 형상의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아마 주작을 표현한 듯하다. 주작이 닭의 형상으로 묘사된 것은 아직 주작에 대한 분명한 이미지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려져 있는 닭의 모습이 신비스럽고 서기가 어려 있는데, 혹 주작을 대신하는 기능을 하는 존재로도 볼 수 있겠다. 북쪽의 현무는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무용총 단계에 사신은 아직 방위신으로서 기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존재였다.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약수리고분은 인물풍속도 중심인 두방무덤이다. 앞방에는 주행렬도, 수렵도, 주인공의 실내 생활 등을 그렸다. 널방 벽면 상단에는 사신을 그렸는데 북벽에 주인공 부부와 현무, 동벽에 청룡과 해, 서벽에 백호와 달, 남벽에 주작을 배치하였으며 구름과 별자리도 함께 어울리도록 그렸다.

약수리고분 주작과 청룡
약수리고분 현무, 묘주초상

위 그림에서 보듯이 약수리고분 사신도는 당시 고구려에서 사신이 별자리신·방위신으로서의 성격이 분명하게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 사신의 크기나 비중이 작고, 사신 형상도 정형적인 도상을 갖추지 못했으며, 회화적 표현도 서툴러서 기이하고 어색한 모습이다.

팔각 돌기둥 두 개를 갖추고 있어 쌍영총으로 불리는 벽화고분은 북한 평안남도 룡강군에 위치한다. 두방무덤으로 널방 서벽을 제외하고는 다행스럽게도 벽화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벽화 내용은 인물풍속도와 사신도다. 그런데 쌍영총의 사신 배치는 매우 독특하여 앞방에는 청룡과 백호, 널방에는 주작과 현무를 배치하였다.

쌍영총 앞방 동벽 청룡도
쌍영총 널방 북벽 부부초상과 현무(모사도)

앞방 동·서벽에 있는 청룡과 백호 그림은 많이 손상되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벽면 중심 제재로서의 위상이 있다. 이와 달리 널방의 현무와 주작은 작게 그려져 있고 중심 제재도 아니다. 예컨대 현무는 북벽 장막 안에 앉아 있고 무덤 주인공 부부상의 서쪽 편에 작게 그려져 있는데, 무덤 주인공의 수호자라는 성격을 갖는다. 앞방의 청룡·백호도에서 점차 사신이 벽면의 중요 주제로 떠오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쌍영총 벽화 중 일부인 기마무사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 조사 때 옮겨온 것이다. 생동감 넘치는 빼어난 필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니 꼭 보시기 바란다.

북한 남포시에 위치한 매산리사신총은 1913년 발견되어 옛 지명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가, 무덤방 안에 있는 수렵도가 인상적이어서 지금은 수렵총이라 부른다. 외방무덤으로 널방의 네 벽에 사신과 인물풍속도가 그려져 있다. 북벽에는 서편으로 현무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북두칠성이라 할 수 있는 별자리가 자리하고 있다. 동벽 청룡의 윗부분 가운데에는 해를 상징하는 세발까마귀가, 그 뒤편에는 기마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서벽 백호 위에는 수렵도, 그 위에는 달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남벽에는 봉황 모습으로 그려진 주작 두 마리가 마주하고 있다.

수렵총 남벽 주작도(모사도)
수렵총 동벽 청룡도(모사도)
수렵총 서벽 백호, 수렵도(모사도)

특히 서벽 벽화는 인상적이다. 넓은 벽면 윗부분에 달두꺼비, 그 아래 벽면 중앙에 비록 기마인물 한 명과 동물 두 마리로 매우 간략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수렵도, 그리고 수렵을 받치고 있는 듯 신령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백호도. 이 세 가지 요소를 넓은 벽면에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는 서벽 벽화 전체는 마치 저세상과 같은 공허한 신비감을 풍기고 있다.

이 서벽 벽화에서도 금방 알 수 있듯이 벽면에서 사신도 비중이 인물풍속도보다 커지고 있다. 점차 사신도 중심의 벽화고분으로 넘어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사신도가 인물풍속도보다 주요 제재로 등장하는 벽화고분으로는 고산리1호분, 덕화리1호분, 대안리1호분 등을 들 수 있다.

이 다음 단계에 등장하는 것이 사신도 중심의 벽화고분이다. 진파리1호분, 통구사신총, 오회분4호묘, 오회분5호묘,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 후기의 사신도 고분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초기에 사신 그림은 천장벽화에서 별 존재감도 없다가 벽면으로 내려오고, 점차 벽면에서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다가 마침내 벽면 벽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신도의 변천에서 보듯이 모든 문화적 현상은 맥락이 있다. 물론 갑자기 돌출하는 문화 현상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것조차도 그 이후에는 하나의 맥락을 형성한다. 역사 공부란 그런 맥락을 찾아내는 작업이며, 동시에 갑자기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공부이기도 하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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