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론' 타고..커진 재계 목소리, 후퇴하는 '공정경제'

박상영 기자 입력 2019. 8. 7. 21:34 수정 2019. 8. 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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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부 ‘소재·부품·장비 분야 강화’ 계열사 내부거래 허용
ㆍ실제 정책 첫 반영 사례…‘경제활성화’로 정책기조 선회
ㆍ국회도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시한 연장, 일사천리 처리

최근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재계 요구를 수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부의 대물림을 손쉽게 한 데 이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배제 조치를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마저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 ‘공정경제’ 기조가 흐트러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에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허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내부거래를 통해 소재·부품·장비를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총수 일가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고 계열사가 이 기업에 일감을 몰아줘도 유리한 조건에서 거래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일감 몰아주기로 제재가 불가능하다. 공정위는 이 같은 규제완화를 ‘예규’로 명시해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해온 공정경제 기조와 배치된다. 그간 경제활성화를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 정책에 반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초만 해도 특허 등 독점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려던 기획재정부의 움직임이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기업인과 접촉을 늘리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제활성화로 전환됐다고 기재부가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반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가 ‘경제활성화’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달 25일에는 상속세 부담을 낮춰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세법을 개정했다.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늘리고 업종과 자산,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였다.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적용됐던 상속·증여세 할증률도 대폭 완화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는 상장 기업까지 할증률을 낮춰 대주주의 부의 대물림을 손쉽게 해준 것이다.

대기업 특혜라는 이유로 관계부처에서도 난색을 표했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도 일사천리로 지난주 금요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활법은 공급과잉 업종 기업이 신속하게 사업 재편을 할 수 있도록 상법·세법·공정거래법 등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으로 2016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정부는 개정안을 통해 적용시한을 2024년까지 5년 연장하고 적용범위도 기존 과잉공급 업종에서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의 주된 산업 영위 기업과 정상적 기업의 신산업 진출까지 확대했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과잉공급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법을 정상적인 기업의 신산업 진출까지 대폭 확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회계사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에 편승해 면밀한 검토 없이 기업들의 민원을 수용해서는 안된다”며 “부의 이전을 쉽게 하는 방식으로 규제가 완화된다면 양극화만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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