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NBA]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에 근접했던 사나이! ②
양준민 2019. 8. 7. 07:01

[점프볼=양준민 기자] 아래의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에 근접했던 사나이! 1편에선 코비 브라이언트의 어린 시절부터 2007년 홀로서기를 시작한 과정까지를 살펴봤다. 2편에선 2연속 우승에 성공해 홀로서기에 성공한 코비의 이야기부터 은퇴 시즌까지 이야기. 그리고 짧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美 국가대표팀 캡틴 코비의 모습을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줌 인 NBA]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에 근접했던 사나이! ①
https://sports.new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065&aid=0000186107
#[줌 인 NBA] 블랙 맘바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에 근접했던 사나이!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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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의 또 다른 영혼의 짝 파우 가솔, 정상에 복귀한 코비!
2년 연속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에 지친 코비는 2007-2008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력보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팀을 떠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이에 美 현지에선 코비가 앤드류 바이넘과 제이슨 키드의 스왑 딜을 요구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ESPN의 보도에 따르면 2005 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0순위로 레이커스에 입단한 바이넘은 드래프트 당시의 기대와 달리 입단 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여줬다. 이에 실망감을 느낀 코비가 바이넘과 키드의 트레이드를 구단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코비가 즉각 이를 부인하면서 이는 한 차례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코비의 폭탄선언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오프시즌 선수단 전력보강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오프시즌 트레이드 루머의 주인공이 됐던 바이넘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하기 시작, 그 결과 레이커스는 2007년을 26승 11패로 마치는 등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레이커스는 2008년의 시작과 함께 바이넘을 부상으로 잃었다. 바이넘은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팀 동료인 라마 오돔과 충돌해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 당초 플레이오프에 복귀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바이넘은 끝내 코트로 돌아오지 못했다. 바이넘은 2007-2008시즌 정규리그 35경기에서 평균 28.8분 출장 13.1득점(FG 63.6%) 10.2리바운드 2.1블록을 기록했다.
어쩌면 바이넘의 부상 아웃이 없었다면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은 파우 가솔을 보는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레이커스는 바이넘이 부상으로 쓰러지자 즉각 그의 대체자원 찾기에 나섰고, 레이커스의 레이더에 들어온 선수가 바로 가솔이었다. 어느덧 서른 살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던 가솔은 약체인 멤피스가 아닌 우승권 팀에서 뛰길 원했다. 가솔을 계속 팀에 잡아둘 명분이 없었던 멤피스는 레이커스와 트레이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레이커스는 콰미 브라운, 아론 맥키, 자바리스 크리텐튼 3명의 선수와 2007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마크 가솔에 대한 권리, 그리고 2008·2010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멤피스에 넘기고, 가솔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한때 크리스 왈라스 구단주가 더 많은 선수를 받길 원하면서 트레이드가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레이커스가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추가로 패키지에 포함할 뜻을 밝히면서 트레이드는 마무리됐다.

가솔 합류 이후 레이커스는 전력이 안정화를 찾아가면서 정규리그 57승 25패,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2월 6일 뉴저지와 경기에서 레이커스 데뷔전을 가진 가솔은 3월 중순 팀 동료인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와 충돌, 발목에 부상을 입고, 레이커스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행히 가솔의 부상은 경미했고 단 3경기만 결장한 뒤 코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솔은 레이커스 이적 후 27경기에서 평균 34분 출장 18.8득점(FG 58.9%) 7.8리바운드 3.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바이넘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레이커스는 코비-가솔-오돔의 삼각편대를 앞세워 후반기에만 22승 8패를 기록했다. 여기에 데릭 피셔와 라드마노비치 등 롤 플레이어들의 활약이 더해지며 레이커스는 서부의 강호로 급부상했다.
코비도 2007-2008시즌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 출장하며 평균 28.3득점(FG 45.9%) 6.3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 그 결과 레이커스를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이끈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생애 첫 정규리그 MVP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당시 사무국을 이끌던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코비에게 트로피를 전하면서 “코비의 MVP 수상자격은 충분하다. 그는 올 시즌 또 한 번 엄청난 시즌을 보냈다. 누구나 코비가 이 정도로 하는 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는 말로 축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는 후문. 코비도 트로피를 전해 받으며 “정말로 긴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레이커스와 LA를 대표해 이 상을 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쁘다”는 말로 팬들과 구단 관계자 및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MVP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지금은 MVP를 비롯한 개인상 시상이 파이널까지 종료된 후 시상식이 따로 열려 진행이 되지만 당시는 플레이오프 도중 수상자를 발표해 시상했다. 코비의 정규리그 MVP 시상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때 진행됐다. 덴버와 1라운드에서 맞붙은 레이커스는 시리즈 스윕을 앞둔 상황에서 코비의 정규리그 MVP 수상 소식에 기세가 올랐고, 덴버를 4-0으로 물리치고 세미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덴버가 비록 서부 컨퍼런스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정규리그에서 50승 32패를 기록하는 등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 아니었다. 코비와 가솔이 평균 55.8득점을 합작하는 등 앨런 아이버슨과 카멜로 앤써니가 이끈 덴버 골밑을 맹폭했다. 여기에 더해 루크 월튼의 깜짝 활약까지 더해지며 레이커스는 2004년 샌안토니오가 멤피스에 4-0 스윕을 당한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에서 +50승을 거둔 팀이 스윕을 당한 역사를 반복시킬 수 있었다.
이후 기세가 오른 레이커스는 코비의 폭발력을 앞세워 파이널에 오르기까지 단 3패만을 허용, 2004년 이후 처음 파이널에 진출했다. 코비는 세미파이널과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각각 평균 33.2득점(FG 49.1%)·29.2득점(FG 53.3%)을 기록하는 순도 높은 득점력으로 자신의 5번째 파이널이자 오닐 없이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홀로서기 이후 코비의 첫 파이널 상대는 다름 아닌 전통의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였다. 2007-2008시즌을 앞두고 케빈 가넷-폴 피어스-레이 알렌의 빅3를 구성한 보스턴은 동부 컨퍼런스를 호령하던 디트로이트의 시대를 끝내고 1987년 레이커스에 패한 이후 처음으로 파이널에 올랐다. 보스턴은 파이널에 오르기까지 2번이나 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렀다. 이에 사람들 대부분 상대적으로 체력에 우위가 있는 레이커스의 파이널 우승을 점쳤다.
두 팀의 파이널은 시리즈 내내 흥미진진했다. 1차전 기선을 잡은 건 다름 아닌 보스턴이었다. 보스턴은 63득점을 합작한 빅3의 활약을 앞세워 레이커스에 98-88로 승리했다. 보스턴은 3쿼터 한때 폴 피어스가 켄드릭 퍼킨스와 발이 엉키는 바람에 무릎을 다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라커룸으로 돌아간 피어스는 투혼을 발휘해 경기에 복귀, 3쿼터에만 3점 3개(3P 100%)를 포함해 15득점(FG 100%)을 퍼붓는 등 이날 총 22득점(FG 70%)을 올렸다. 1차전을 내준 레이커스는 이어 2차전까지 보스턴에 내주며 궁지에 몰렸다. 보스턴은 2차전 피어스가 28득점(FG 56.3%) 8어시스트 5스틸을 기록한 데 이어 리온 포우가 자유투를 무려 13개나 얻어내는 등 21득점(FG 85.7%)을 올리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레이커스는 전반을 54-42로 끝내며 일찍이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후반 피어스와 포우의 득점을 막지 못하고 첫 2경기를 모두 패해 LA로 돌아왔다.

홈으로 돌아온 3차전, 레이커스는 코비가 야투성공률 60%에 36득점을 올리는 등 순도 높은 득점과 함께 샤샤 부야비치가 3점 3개(3P 60%)를 포함해 20득점(FG 70%)을 올리며 지원사격을 개시, 시리즈 첫승을 신고했다. 다만, 이후 시리즈에서 보스턴은 에디 하우스와 제임스 포지 등 예상치 못한 선수들이 깜짝 활약을 펼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보스턴의 빅3도 파이널 시리즈에서 평균 60.3득점을 합작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여기에 빅3와 함께 하면서 기량이 급격히 성장한 론도도 힘을 보탰다. 반면 레이커스는 가솔이 가넷의 수비에 고전한 것이 시리즈 판도에 악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예가 6차전으로, 가솔은 가넷에게 묶여 11득점(FG 57.1%)을 올리는 데 그치는 등 레이커스는 시리즈 내내 보스턴의 조직적인 수비에 고전했다. 결국 레이커스는 보스턴에 시리즈 전적 4-2로 패배, 코비의 5번째 파이널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2008-2009시즌을 앞두고 레이커스에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바로 부상 악령에 시달리던 트레버 아리자가 성공적으로 복귀한 것이 그것이다. 2007-2008시즌 트레이드를 통해 레이커스로 둥지를 옮긴 아리자는 오른발 뼈가 골절되며 정규리그 24경기 출장에 그쳤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을 거듭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아리자는 2008-2009시즌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 출장, 평균 24.4분 8.9득점(FG 46%) 4.3리바운드 1.7스틸을 기록하는 등 벤치에서 힘을 보탰다. 바이넘도 부상에서 복귀해 초반 맹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고공행진을 이끌었다. 하지만 후반기 개막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다시 정규리그에서 이탈해야만 했다.(*바이넘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레이커스에서 뛰고, 2012년 여름 사각 트레이드를 통해 필라델피아로 이적했다)
코비는 2008-2009시즌 정규리그 82경기에서 평균 26.8득점(FG 46.7%) 5.2리바운드 4.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코비와 가솔을 중심으로 한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팀의 메인 전술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레이커스는 12월 중순까지 21승 3패를 기록하는 등 한 번 불이 붙은 상승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그 결과 레이커스는 정규리그를 65승 17패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마무리했다. 코비도 12월과 1월, 2달 연속으로 서부 컨퍼런스 이달의 선수로 뽑혔다. 여기에 정규리그 MVP 투표에선 르브론 제임스에 밀려 수상은 실패했지만 최종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는 등 일말의 논란 여지도 없는 레이커스 1옵션이 됐다. 이와 함께 2009 NBA 올스타전에서 오닐과 함께 공동 MVP로 선정되는 등 그간 불화를 겪었던 오닐과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유타·휴스턴·덴버를 차례로 꺾고 서부 제패에 성공했다. 레이커스는 코비가 평균 30.2득점(FG 45.7%)을 올리며 득점을 주도, 가솔·오돔이 그 뒤를 받치며 공격을 완성했다. 아리자의 경기력도 두드러졌다. 후반기부터 선발로 나선 아리자는 정규리그 때는 전문 수비수로 호평을 받았다. 플레이오프에 들어선 평균 1.7개의 3점 성공(3P 47.6%)을 기록해 고감도의 손끝 감각을 선보이는 등 3&D 플레이어로서 레이커스 상승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리자가 선발로 나서며 코비의 수비 부담이 줄어듦과 동시에 외곽 슛이 정확하지 않다는 코비의 또 다른 약점도 보완해주는 등 잭슨 감독의 아리자 선발 카드는 대성공이었다. 아리자는 플레이오프 23경기에서 평균 31.4분 출장 11.3득점(FG 49.7%) 4.2리바운드 2.3어시스트를 기록했다.(*코비는 커리어 평균 32.9%(1.4개 성공)의 3점 성공률을 기록했다)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 코비와 레이커스의 상대는 다름 아닌 올랜도였다. 드와이트 하워드가 중심이 된 올랜도의 양궁 농구는 필라델피아·보스턴·클리블랜드를 물리치고, 동부를 제패했다. 그러나 올랜도는 레이커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레이커스는 파이널 첫 경기부터 40득점(FG 47.1%) 8리바운드 8어시스트로 올랜도 림을 맹폭한 코비의 활약을 앞세워 시리즈 전적 4-1로 승리,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우승에 성공했다. 데릭 피셔도 고비 때마다 3점을 성공시키는 등 롤 플레이어의 활약도 우승의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파이널 MVP는 코비의 몫이었다. 코비는 시리즈 평균 32.4득점(FG 43.8%) 5.6리바운드 7.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는 마이클 조던이 평균 30득점-5리바운드-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파이널 MVP를 수상한 이후 처음 있는 기록이었다.
2009-2010시즌은 그야말로 코비의 부상 투혼이 빛난 시즌이었다. 2009년 12월 코비는 미네소타와 경기에서 오른쪽 검지를 다쳤다. 휴식이 필요한 부상이었지만 코비는 출전을 감행했다. 코비는 손가락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클러치 슛을 여러 차례 성공시키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다. 여기에 시즌 중반으로 향하며 무릎과 발목에도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코비는 부상 투혼을 발휘했고, 정규리그 73경기 평균 38.8분 출장 27득점(FG 45.6%) 5.4리바운드 5어시스트란 숫자를 기록지에 남겼다. 코비의 활약과 가솔·앤드류 바이넘의 활약까지 더해진 레이커스는 정규리그 57승 25패로 서부 컨퍼런스 1번 시드에 올랐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아리자가 떠났지만 메타 월드 피스가 FA로 팀에 들어오며 그 공백을 메워줬다.
플레이오프 개막을 앞두고 레이커스와 3년 총액 8,700만 달러에 연장 계약을 맺은 코비는 플레이오프에서 그 활약을 멈추지 않았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오클라호마시티를 만난 레이커스는 6경기 만에 이들을 물리치고 세미파이널에 진출, 유타와 시리즈를 스윕으로 끝내고,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스티브 내쉬가 이끄는 피닉스를 만난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도 6경기 만에 승부를 결정지은 레이커스는 2008년 파이널 자신들에게 아픔을 안겼던 보스턴과 조우한다. 코비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2번째 경기에서 13개 어시스트를 배달,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는 등 전보다 동료들을 잘 활용하는 패턴을 보여주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코비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평균 41.6분 33.7득점(FG 52.1%) 7.2리바운드 8.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년 만에 정상에서 만난 두 팀의 맞대결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레이커스의 복수 성공으로 끝이 났다. 2년 전에는 보스턴에서 소위 말해 미치는 선수가 나왔다면 이번에는 레이커스에서 그런 선수가 나왔다. 메타 월드 피스가 바로 그 주인공. 이미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에서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 등 심상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메타 월드 피스는 파이널에서도 6차전과 7차전에 깜짝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생애 첫 우승이자 레이커스의 2연패를 이끌었다. 코비가 보스턴 선수들의 집중견제를 받아 평균 40.5%의 야투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졌음에도 레이커스가 2연패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메타 월드 피스의 공이 컸다. 실제 잭슨 감독은 7차전 종료 후 “메타 월드 피스가 이번 파이널의 언성히어로다”는 말을 남기는 등 만족감을 드러냈다.
코비는 자신의 7번째 파이널에서 평균 41.2분 28.6득점(FG 40.5%) 8리바운드 3.9어시스트를 기록, 2년 연속 파이널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코비는 전체적인 경기력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보스턴은 빅3가 2년 전보다 나이를 먹으며 경기에 끼친 영향력은 줄었지만 대신 라존 론도가 급격히 성장, 팀을 이끌었다. 닥 리버스 감독은 코비를 막으려 폴 피어스와 레이 알렌을 번갈아 전문 수비수로 붙이며 코비의 득점력 봉쇄를 꾀했다. 하지만 코비는 특유의 클러치 능력을 발휘해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파이널 7차전이었다. 7차전 코비는 4쿼터에만 9개의 자유투를 얻어내 8개를 성공시키는 등 승부처에서 해결사를 자처해 10득점을 적립, 보스턴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5번째 챔피언 반지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리바운드 싸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코비는 떨어지는 효율성을 수비와 허슬플레이로 대신했다.
코비는 시리즈 종료 후 인터뷰에서 “5번의 우승 중 지금이 제일 만족스럽다. 우승은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우승만큼은 의미가 남다르다”는 말을 남기는 등 오닐과 이별 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코비는 2년 연속 파이널 우승과 파이널 MVP 수상으로 그토록 원했던 정상의 자리에 복귀했다.

▲부상 그리고 은퇴, 레이커스의 영원한 별이 되다!
이후에도 코비의 우승 도전은 계속된다. 코비가 우승에 욕심을 부렸던 이유는 바로 우상인 마이클 조던이 6번의 파이널 우승을 달성했기 때문. 이를 위해 레이커스는 일찍이 파우 가솔과 연장 계약을 완료하는 등 주축 전력은 유지, 롤 플레이어 보강을 통해 2010-2011시즌 우승 도전에 나섰다. 어느덧 리그 데뷔 후 15번째 시즌을 맞이한 코비는 득점 부문에 있어 득점을 올릴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위치에 서게 됐다. 그 예로 코비는 2010-2011시즌 총 2,078점(평균 25.3점)을 추가하는 등 리그 역사상 최연소로 27,000득점을 돌파한 선수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올스타전에서도 커리어 마지막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며 총 4번의 수상을 기록해 보브 페팃과 동률을 이루게 된다.
코비-가솔-오돔의 삼각 편대가 건재한 레이커스는 정규리그에서 57승 25패로, 서부 컨퍼런스 2번 시드를 기록했다. 1라운드에서 오클라호마시티를 꺾은 레이커스는 2라운드 댈러스를 만나 스윕 패를 당하며 쓰리핏 도전에 실패한다. 레이커스로선 코비가 플레이오프 개막을 앞두고 왼쪽 무릎과 발목을 다친 것이 아쉬웠다. 2011년 여름 레이커스는 잭슨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마이크 브라운이 새로운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코비는 새로운 감독의 지휘 아래에서도 흔들림 없이 득점포를 가동, 2011-2012시즌 평균 27.9득점(FG 43%)을 기록했다. 다만 서부 컨퍼런스의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혹사하다 보니 코비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 결과 코비의 부상은 레이커스 경기력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레이커스는 2년 연속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이에 레이커스는 2012-2013시즌을 앞두고 우승 도전을 위해 다시 한번 초강수를 둔다. 레이커스가 둔 초강수는 다름 아닌 스티브 내쉬와 드와이트 하워드 영입이었다. 먼저 레이커스는 2012년 여름 피닉스에 내쉬의 사인 앤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당초, 내쉬는 뉴욕과 토론토와 계약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LA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판단해 레이커스 이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찬가지 올랜도에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등 불화가 깊어져 가던 하워드도 2012년 여름 덴버·필라델피아가 연루된 사각 트레이드를 통해 레이커스로 이적하게 된다. 스티브 내쉬-코비 브라이언트-파우 가솔-드와이트 하워드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 구축에 성공한 레이커스는 시즌 개막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레이커스 판타스틱 4는 조직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며 정규리그에서 45승 37패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내쉬는 개막 후 2번째 경기에서 왼쪽 다리에 부상을 당하는 등 시즌 내내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정규리그 50경기 출장에 그쳤다. 여기에 더해 하워드는 레이커스가 추구하던 시스템과 불협화음을 내며 스텟의 볼륨은 보기에 좋았지만 실제 경기에 끼치는 영향력은 미미했다. 하워드는 코비 위주로 이뤄지는 공격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코트 밖에서도 언쟁을 이어가며 불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픽앤 롤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하워드는 이에 특화된 내쉬를 비롯한 레이커스 가드들과도 호흡이 좋지 못해 경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등 레이커스의 판타스틱 4는 그렇게 무너져만 갔다.(*하워드는 2012-2013시즌 종료 후 FA를 통해 휴스턴으로 이적했다)
설상가상 레이커스는 정규리그 종료를 앞두고 코비가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이란 치명상까지 입게 된다. 코비는 2013년 4월 13일 골든 스테이트와 경기에서 왼쪽 아킬레스건이 부분적으로 파열되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코비는 MRI 검사와 동시에 즉각 수술을 결정했다. 코비의 부상에 안드레 이궈달라와 메타 월드 피스 등 함께 했던 동료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후문. 이궈달라는 “나의 형제 코비 브라이언트를 위해 기도하겠다. 코비가 하루라도 빨리 쾌차할 수 있길 기도할 것이다”는 말을 전했다. 코비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지만 코비의 시즌 아웃으로 기세가 꺾여버린 레이커스는 1라운드 샌안토니오에게 시리즈 스윕 패를 당하며 2012-2013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낸 코비는 2013-2014시즌 개막 전까지 코트로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회복에서 재활까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부상이라 코비의 코트 복귀도 순탄하지만 않았다. 그러다보니 코비의 재활과정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비관적이었다. 그 예로 야후 스포츠는 “코비는 본인의 코트 복귀를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 부상은 결코 가벼운 부상이 아니다. 더욱이 34살이란 코비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이번 부상은 코비의 커리어를 끝낼 수도 있는 부상이다. 코비와 레이커스의 계약은 2013-2014시즌을 끝으로 종료된다. 코비에겐 잔인한 얘기지만 레이커스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면 지금이 그 적기일 것이다. 코비 본인도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고 싶다면 재활을 성급하게 진행해선 안 될 것이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코비는 수술을 받은 후 7개월 만인 2013년 11월 코트로 복귀해 훈련을 시작, 12월 9일 토론토와 경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복귀 후 2번째 경기인 피닉스와 경기에서 20득점(FG 54.5%)을 올리는 등 연속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회복된 듯 보였다. 하지만 복귀 후 6번째 경기인 멤피스전에서 왼쪽 무릎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선고받는 등 코비의 온전한 코트 복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코비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팀 공격의 핵심을 잃은 레이커스는 2013-2014시즌 정규리그에서 27승을 올리는 데 그치는 등 단숨에 리그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코비가 성공적으로 코트에 복귀한 것을 보고 레이커스는 코비와 2년 연장 계약을 체결, 그러나 코비가 또 다시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일각에선 코비의 이번 연장 계약이 레이커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 재활에 만전을 기한 코비는 2014-2015시즌 코트로 복귀해 정규리그 35경기에서 평균 22.3득점(FG 37.3%) 5.7리바운드 5.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4년 오프시즌 레이커스 로스터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간 코비와 팀을 지탱했던 파우 가솔이 시카고로 이적했고, 2014-2015시즌을 끝으로 공식 은퇴할 것이라 선언했던 내쉬도 시즌 개막을 목전에 두고, 허리 부상이 심해지며 시즌을 치르지도 못하고 은퇴했다. 설상가상으로 2013-2014시즌 리그 하위권 추락의 대가로 얻은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줄리어스 랜들을 지명했지만 랜들마저 개막전에서 오른쪽 정강이 골절 부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이 되는 등 레이커스의 전력은 확실히 예전만 못했다.
2014-2015시즌 코트에 복귀는 했지만 코비는 무릎과 허리 등 몸 곳곳이 성하지 못해 경기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36살의 나이도 부상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사실상 본인의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탓인지 코비는 이때부터 개인기록에 다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해 시즌 코비는 1,207득점을 추가해 마이클 조던을 제치고 최다 득점 부문 역대 3위에 올랐다. 다만 이와 함께 평균 야투성공률이 37.3%에 그치는 등 효율성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레이커스의 로스터를 살펴봤을 때 코비를 제외하곤 공격을 이끌 선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지만 농구가 개인이 기록을 쌓는 경기가 아닌 5명이 힘을 모아야 하는 팀 스포츠란 점을 봤을 때 코비의 행동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경향은 선수은퇴를 공식 선언한 2015-2016시즌에도 계속됐다. 시즌 개막 전부터 공공연히 은퇴에 대한 여지를 남겼던 코비는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인 2015년 11월 30일 더 플레이어 트리뷴을 통해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은퇴를 선언한 후 코비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듯 전보다 득점 적립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코비는 2015-2016시즌 평균 16.9개의 야투를 던져 팀 내에서 가장 많이 공격을 시도했다. 코비는 은퇴를 발표하며 남은 시즌은 페어웰 투어를 통해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겠다 선언했다. 이에 많은 팬들이 코비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몰려들었고, 원정구단 관계자들도 코비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을 제작해 코비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등 NBA 선수로서 코비의 커리어는 그렇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4월 14일 코비는 유타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페어웰 투어를 마무리할 시간이 맞이한다. 코비는 이날 경기 42분을 출장하는 등 쉬지 않고, 코트를 누비며 자신의 마지막을 보러 경기장을 찾아온 수많은 농구 팬들에게 최선을 다해 작별인사를 전했다. 코비는 이날 경기 3점 6개(3P 28.6%)를 포함해 60득점(FG 44%) 4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 37세 234일의 나이로 +60득점을 역대 최고령 선수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됐다. 코비의 활약에 힘입어 레이커스는 101-96으로 승리했다.(*레이커스는 2015-2016시즌 정규리그에서 17승 65패를 기록, 이는 코비의 커리어 역사상 가장 낮은 팀 성적이었다)
이날 스테이플스 센터를 찾아온 모든 팬들이 일어나 코비에게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는 박수를 보냈다. 마찬가지 레이커스와 유타 선수들 모두 코비에게로 다가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경기 종료 4.1초를 남기고 벤치로 돌아온 코비는 들어가면서 샤킬 오닐과 데릭 피셔 등 그간 함께 했던 전우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경기 종료 후 코비는 코트 중앙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레이커스 팬들과 팀 동료, 가족 그리고 그간 함께 해왔던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코비는 눈물과 웃음을 반복하는 아쉬움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엔 ‘맘바 아웃’이란 말과 함께 손 키스를 팬들에게 전하며 20년이 넘는 영광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레이커스의 영원한 별로 떠올랐다.

▲열정의 리더, 美 국가대표 코비 브라이언트!
20년 NBA 커리어에 비해 국가대표 코비 브라이언트의 커리어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코비가 美 대표팀의 부름을 처음 받은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지만 코비는 당시 결혼을 이유로 국가대표팀 합류를 거부했다. 이후에도 코비는 개인 사정과 부상을 이유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코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2007 아메리카 챔피언십 때 처음 美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그간 드림팀으로 세계 최고라 불리던 美 국가대표팀은 2004년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3위에 그치는 등 그 명성에 금이 간 상태였다. 뒤를 이어 르브론 제임스와 카멜로 앤써니 등이 참가했지만 일본에서 열린 농구월드컵에서도 동메달에 그치며 드림팀이 더이상은 예전의 드림팀이 아니란 악평이 쏟아졌다. 이에 美 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표팀 이름을 드림팀이 아닌 옛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의미에서 ‘리딤팀(REDEEM TEAM)’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리딤팀은 코비 브라이언트·르브론 제임스·카멜로 앤써니 등 당대 리그 최고 슈퍼스타들을 팀에 합류시켰다.
코비는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 “올림픽 금메달이 NBA 우승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로 선수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말을 전했다. 대표팀 합류 후에는 주장을 맡아 당대 슈퍼스타들을 잘 어우르며 2008 베이징 올림픽 美 대표팀의 금메달 탈환에 앞장섰다. 코비의 리더십이 호평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코비는 주장으로서 선수단을 잘 이끌었고, 동시에 경기에 나서선 수비와 허슬 플레이로 궂은일을 도맡았다. 클러치 타임 해결사 또한 코비의 몫이었다. 그 예로 코비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스페인 대표팀과 만난 결승에서 4쿼터에만 13득점 3어시스트로 공격을 주도했다. 수비에선 결정적인 블록을 2개나 곁들이며 팀의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2012 런던 올림픽 때도 코비는 대표팀 주장을 맡아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다. 어느덧 34살의 나이로 오프시즌 휴식이 필요할 법도 했지만 코비는 국가대표 합류 직전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영광이다. 대표팀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대표팀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건 선수가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라 볼 수가 있다. 더욱이 내 나이를 생각했을 때 이번 올림픽이 생애 마지막 국제무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 국제무대를 좋은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주장으로서 영광이다”는 말로 대표팀 합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는 후문.
코비는 호주와 8강전에서 4쿼터 4연속으로 3점 슛을 꽂아 넣는 등 토너먼트에 들어서 클러치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르헨티나와 만난 세미파이널도 결정적인 순간 여러 차례 득점을 성공시키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마찬가지 스페인과 만난 결승에서도 17득점을 올리며 공격을 주도하는 등 코비의 활약에 힘입어 107-100으로 승리를 거둔 美 국가대표팀은 2연속 올림픽 우승에 성공했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던 코비는 2012 런던 올림픽 결승이 끝남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美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 드림팀 커리어를 마무리했다.(*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美 대표팀은 3개 대회 연속 금메달이자 통산 15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편에 이어 2편까지 스크롤 압박에도 불구하고,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점프볼 DB, 나이키
#일러스트-김민석 작가
#기록참조-NBA.com, BASKETBALL REFERENCE
2019-08-06 양준민(yang12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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