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앞둔 트럼프와 중국몽 시진핑 '왕좌의 게임'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9. 8. 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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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환율전쟁]
미국, 중국이 위안화 약세 용인하자 환율 카드로 급제동
'中 경제굴기, 더이상 용납못한다' 위기의식에 강력 조치

미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예상 밖의 조치였다.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과 제재 방법을 가장 구체적으로 담은 2015년 교역촉진법상으로는 중국은 아직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①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②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이상 ③GDP 대비 2% 이상의 달러 매수 개입이라는 세 필요 요건 중 첫 번째에만 해당한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이번에 꺼내 든 것은 1988년의 종합무역법이었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이자 유의미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종합무역법 규정을 환율조작국 지정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사실상 사문화된 31년 전 법을 근거로 삼아서라도 중국에 '환율조작국' 간판을 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월부터 아직 보복 관세를 부과하지 않은 3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제품에 대해서도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직후 중국의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7위안 선을 넘어, 위안화 가치가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방치해 미국의 대중 보복 관세 효과를 상쇄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일어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새 칼을 빼든 것이다. CNN은 "미·중 무역 전쟁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번 미·중 충돌은 외형상 무역·통화 전쟁이지만 그 본질은 현재의 패권국가와 이에 도전하는 신흥 부상국가 간의 패권 전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경제·군사·과학 등 각 분야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해 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는 20조달러, 중국은 13조달러로 경제 규모로 중국이 미국의 3분의 2 수준이다. 그러나 물가 등을 감안한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계산하면 중국이 오히려 23조달러로, 19조달러인 미국을 이미 넘어섰다.

중국이 미국에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관세 부과와 환율조작국 지정뿐 아니라 화웨이 제재, 과학·기술 인력의 미국 입국 제한, 영유권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 작전' 등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도 패권 전쟁의 속성을 말해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급하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이면엔 내년 대선에 대한 이해관계도 깔려 있다. 중국은 이날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아이오와주 등 팜벨트(Farm Belt·농장지대)를 겨냥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조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선두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비해 10%포인트 안팎 밀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팜벨트가 무너질 경우 재선은 물 건너가게 된다.

미국은 중국과 1년여 무역 전쟁을 벌여왔지만 지난해에도 미국이 기록한 9000억달러의 무역적자 가운데 중국이 419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중국은 우리 사업과 공장을 훔치고 일자리를 해치며 우리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한편 농부들의 (농산물) 가격에 해를 끼치기 위해 환율 조작을 항상 활용해왔다"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비난한 것은 미국 내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을 내걸고 G2 지위에 걸맞은 대접을 미국에 요구해 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도 호락호락 물러설 수 없는 처지다. 무역·환율 전쟁에서 자칫 패장으로 비칠 경우 홍콩 시위나 대만 문제를 포함한 대내외 현안을 해결할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미·중이 당장 포성을 울리며 환율 전쟁에 돌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미국으로선 환율조작국 지정이 이뤄졌다고 당장 중국을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도 2020년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풍족함)사회'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6.2%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양측이 상호 궤멸적인 손상을 입는 파멸적인 길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상징적(symbolic)인 차원"이라고 풀이했다. FT는 코넬대 무역학과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를 인용해 "환율조작국 지정은 중국에 더 많은 관세를 때리기 위한 정치적인 정당화 수단"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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