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달 기지로 떠오르는 지하 '용암 동굴'

이정호 기자 2019. 8. 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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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태양 방사선·운석 충돌 차단 효과…NASA 측, 입구 추정 구멍들 검토
ㆍ일각선 “조명 등 이유 지상 건설을”
ㆍ2020년대 이후 돼야 후보지 ‘윤곽’

유럽우주국(ESA)이 추진 중인 반원 형태로 지상에 건립하려는 달 기지 상상도. 유럽우주국(ESA) 제공

2009년 개봉한 영국 영화 <더 문(The Moon)>에는 달 표면에서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건설된 기지가 등장한다. 기지 안은 널찍한 오피스텔에 가까운 구조다. 체력단련실과 침실, 업무 공간 등이 고루 갖춰져 있다. 이는 현재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우주 기지인 국제우주정거장(ISS)보다 크고 넓으며 쾌적하다. 세련된 금속성 이미지가 물씬 묻어나는 이 공간은 달 기지 하면 으레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달 기지는 표면이 아니라 지하에 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0년대 이후 윤곽을 드러낼 달 거주인들은 기지 바깥의 창문으로 떠오르는 파란색 지구를 보며 망중한에 빠지는 게 아니라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주전문매체 스페이스닷컴은 최근 달 기지의 후보 지역으로 ‘용암 동굴’이 떠오르고 있다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용암 동굴은 뜨거운 용암이 지하를 돌아다니다 뚫린 복잡하고 길쭉한 공간이다. 전반적인 형태는 개미굴을 닮았다. 용암 동굴은 10억년 전까지 이어진 격렬한 달 지질 활동의 결과물이다. 월면 여기저기에서 이 용암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는 구멍이 발견되고 있다. 개수는 무려 200개이다. 짐 그린 NASA 수석 과학자는 “용암 동굴은 인간의 달 탐험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 남극 근처 ‘지혜의 바다’에서 미국 관측위성이 근접 촬영한 지름 65m, 깊이 80m로 추산되는 구멍. 이는 지하 용암 동굴로 통하는 입구로 보인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NASA가 용암 동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문용재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먼 우주 또는 태양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을 막아줄 자연스러운 보호막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마선과 같은 독한 방사선은 얇은 금속으로 막기 어렵기 때문에 지구에선 보통 콘크리트 등을 활용해 차폐물을 만들지만 이런 대응 방식은 달에서는 쓰기 곤란하다. 무거운 건축자재를 가져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 수십m에 기지를 짓는다면 이런 걱정은 크게 줄어든다.

게다가 우주에서 날아드는 물리적인 충돌도 피할 수 있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장은 “미소 운석 충돌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에는 지상 구조물을 완전히 궤멸시킬 정도로 큰 운석도 있지만 작은 알갱이나 가루 수준의 미소 운석도 있다. 크기는 작아도 이런 운석은 총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지구라면 대기권에 진입하며 거의 모두 사라진다. 반면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거주민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물체로 떠오를 수 있다. 지상 기지라면 이를 막기 위한 특수한 방어물을 만들든지, 기지 외벽의 내구성을 보강하기 위한 노력을 하든지 해야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간단히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장점은 또 있다. 지하에선 비교적 일정한 온도가 유지된다. 용암 동굴을 달 기지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분석을 게재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달에서는 낮에 평균 섭씨 123도, 밤에는 영하 153도의 기온 분포를 보인다. 온도 차가 300도에 가까울 정도로 극과 극을 오간다. 하지만 용암 동굴에선 평균 영하 23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대략 가정용 냉장고의 냉동실 온도가 유지되는 것인데, 남극보다도 더 따뜻하다.

일본은 2017년에 달 용암 동굴의 구체적인 규모도 파악했다. 2007년 발사한 달 탐사위성이 장기간 관측한 영상과 음파 탐지 결과를 분석했더니 달 표면 아래에 총길이 50㎞에 이르는 용암 동굴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위치는 달 앞면에 있는 ‘마리우스 언덕’ 주변 지하다.

반면 과학계에선 지상에 달 기지를 짓는 쪽에 방점을 찍는 측도 있다. 달로 3차원(D) 프린터를 보내 달 표면의 흙을 뭉쳐 일종의 벽돌과 같은 튼튼한 건축자재를 찍어낼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이는 유럽우주국(ESA)이 천명한 달 기지인 ‘문 빌리지(Moon Village)’ 건설 방향과 부합한다.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의 용암 동굴을 유럽우주국(ESA) 과학자들이 탐험하는 모습. 달에도 있는 이런 용암 동굴은 달 표면의 강한 방사선과 운석을 피할 수 있어 유력한 달 기지 건설 후보 장소다. 유럽우주국 제공

실제로 ESA가 구상 중인 달 기지의 상상도를 보면 기지가 작은 언덕처럼 지상에 노출돼 있고 벽돌형 자재가 해당 기지 위를 덮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상에 기지를 짓게 되면 지하로 들어갔을 때처럼 24시간 조명이 필요하지 않다. 전력을 아낄 수 있다. 또 예상치 못한 지하 지형으로 인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용암 동굴이 인간이 이동하기 편할 만큼 편평하거나 매끈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최 본부장은 “현재는 지상과 지하를 놓고 달 기지 건설 방식 간에 경쟁이 이뤄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달 착륙이 인간의 거주와 기지 조성이라는 큰 목표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미국 등 각국이 추진할 기지 모습의 큰 틀도 수면에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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