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검찰 인사 유감
[경향신문] “청문회에서도 말이 나왔고, 내부에서 검사장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특수통 전성시대가 더욱 확고히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몇몇 검사들이 솎아지긴 했지만, 정치검사들이 여전히 잘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나갈 거라는 걸 검찰 내부에서는 모두 알고 있지요. 잘나가는 간부들은 대개 정치검사라 다 솎아내면 남은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 게 검찰의 현실입니다만, 너무나 도드라졌던 자들에게는 그래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특수통의 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을 이끄는 검찰총장입니다. 검사장님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환호와 응원이 차디찬 실망으로 돌아서는 것은 한순간이지요.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부들이 대개 그 모양이라 다 버리라고 차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너무나 도드라졌던 정치검사들은 버려야 합니다. 검사장님이 정치검사들의 방패막이로 소모되면, 국민들이 대한민국 검찰에 기대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7월12일, 윤석열 내정자에게 축하메일을 보내며, 아울러 조의를 표했습니다. 검찰 안팎으로 질책과 비판, 비난과 조롱받을 일이 한가득일 테니 애도의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 검찰총장을 향해 목청을 높여 쓴소리를 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첫 고언을 그렇게 띄웠습니다. 인사 발표 후 비판하는 것보다 미리 충고드리는 것이 도리입니다.
인사 발표 후 중간간부들의 줄 사표, 내외의 날선 논평들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수사로 종래 검찰 인사가 얼마나 자의적, 불공정하였는지가 드러났지요. 별장 성접대 논란의 김학의, 넥슨 주식 대박의 진경준 등 검사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자들이 검사장으로 질주할 수 있는 허술한 인사시스템을 모두 목도하였기에, 검찰 인사의 불합리성과 심각성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수사와 판결로 공식 확인한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불공정한 인사를 처음 보았다는 듯 경악하는 투의 기사들이 더러 보입니다. 검찰에서 종래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져 왔다면, 부적격자들이 어떻게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이 되었겠으며, 검찰개혁이 왜 시대의 요구가 되었겠습니까? 지금껏 불공정하였지만, 이제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투명한 인사 원칙과 기준으로 신상필벌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를 모든 국민들처럼 저를 비롯한 검찰 구성원 모두 고대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속칭 특수통들이 점령군마냥 요직을 쓸어가니 형사통 검사들의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또한, 정치검사들이 대윤 라인인지, 아닌지에 따라 승진 여부가 갈린다면 축출된 정치검사들이 인사에 승복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총장 취임 직후 인사를 실시하는 것이라 투명한 인사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여 공론화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종래 검찰의 불합리한 인사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는 인사라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한나라 효무제가 신공에게 치란(治亂)에 대해 묻자, 신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힘써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간언하였지요.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인사권 또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지요. 내년 인사에서는 좀 더 투명한 인사 원칙과 공정한 신상필벌로 국민들과 내부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안태근 검찰국장 시절, 항명검사였던 저는 검사 부적격자로 몰려 쫓겨날 뻔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사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만 했었지요. 조여오는 공기가 하도 살벌하여 일하면 할수록 적격심사에서 트집만 더 잡힐 걸 직감하고, 도망치듯 반년을 쉬었습니다. 적격심사 파고를 힘겹게 넘기고 2016년 1월 검찰에 복귀하며 복귀인사로 검찰 내부망에 제가 생각하는 검사의 자세와 검사로서의 각오를 밝혔습니다.
습착치는 촉한 명재상 제갈량을 칭송하며 “법은 부득이할 때에 집행되었고, 형벌은 스스로 범한 죄에만 더해졌으며, 작위와 상을 줌에 사사로움이 없었고, 벌을 가함에 노여움이 없었으니 천하에 과연 복종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라고 평했습니다. 수감(水鑑). 사사로움 없는 고요한 물과 맑은 거울이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가 아닐는지요. 그때 내부망에 올렸던 제 다짐을 다시금 되새기며,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에게 함께 되새기기를 부탁드립니다.
<임은정 |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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