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영 "힘든 순간 절 안아준 건 음악과 소녀시대죠"
"뮤직비디오서 맨발로 춤추며 자유로움 느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고3이던 제가 어느새 30대가 됐답니다~."
10대 시절, 장래 희망이 "디즈니 공주"라던 걸그룹 멤버는 반달 눈웃음도, 포옹으로 인사하는 특유의 살가움도 그대로였다. 데뷔 시절 인터뷰 기억을 죽 꺼내고는 "이때 참 재미있었다"며 새록한 듯 콧잔등을 '찡긋' 했다.
K팝 대표 그룹 소녀시대에서 솔로 가수로 미국 시장에 발을 디딘 티파니 영(30) 얘기다. 최근 강남구 청담동 한 호텔에서 국내 공연차 입국한 티파니를 만났다. 시차도 적응하기 전에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피곤한 내색조차 없었다. 단정한 수트에 금발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에선 몰라보게 성숙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1일이 제 생일이고, 5일이 소녀시대 데뷔일이에요. 문득 '다시 만난 세계' 첫 녹음 때가 기억나네요. 이즈음은 정말 제게 선물 같은 시기예요. 3일에 팬들과 만나면 축제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요."
티파니의 하이톤 목소리에는 설렘이 배어 있었다. 그는 2일 새 싱글 '마그네틱 문'(Magnetic Moon)을 내고 3일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3년 만의 국내 콘서트 '오픈 하츠 이브'(OPEN HEARTS EVE)를 펼친다.
그는 "이번 공연은 모두 마음을 열고 즐길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며 "3년 전 공연 때와 달리 이번엔 제가 만든 곡이 3분의 2가 넘어 더욱 뿌듯하다"고 기대했다.
◇ 홀로서기 1년은 배움의 시기…"창작하는 재미에 푹 빠져"
2017년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난 티파니가 티파니 영으로 발을 뗀 지 1년여. 그는 지난해 6월 '오버 마이 스킨'(Over My Skin)을 시작으로 지난 5월 '런어웨이'(Runaway)까지 6편의 뮤직비디오를 내며 바삐 움직였다.
"지난 1년은 새롭게 배우는 시기였어요. 빨리 성장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었죠. 노력할수록 결과물이 좋아지니 '빨리 감기'를 누르고 싶을 정도였어요. 피곤하지도 않았죠."
특히 소녀시대 보컬로 포지션을 둘 때와 달리, 프로듀서로 역량을 뽐내 새로운 면모였다. 그는 작사·작곡은 물론, 뮤직비디오 콘셉트와 스타일링까지 콘텐츠 창작의 전 과정을 리드했다. 멤버들과 함께일 땐 무대 퍼포먼스가 즐거웠다면, 지금은 유명 아티스트들과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는 "창작과 연출에 늘 관심이 있었다"며 소녀시대를 통해 많은 걸 배우면서 가능했다고 떠올렸다.
"소녀시대 투어 때 태연이와의 보컬 퍼포먼스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 무대를 보신 이수만 선생님이 유닛 '태티서'를 만들라고 하셨죠. '당당하게 매력을 발산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자 나온 곡이 '트윙클'(Twinkle)이었고요. 이런 과정을 보며 노래를 만들고 싶었고, 2016년 첫 솔로 앨범에 자작곡 '왓 두 아이 두'(What Do I Do)를 수록했죠."
역시 그가 프로듀싱과 작사에 참여한 신곡 '마그네틱 문'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1970년대 디스코 풍이 가미된 댄스곡이다. 레이디 가가, 시아 등과 작업한 페르난도 가리베이가 공동 프로듀싱을 했다.
그는 "작업하다 보니 제가 야행성이더라"며 "악기 사운드, 가사의 글자 하나를 바꿔 갈수록 곡이 좋아지니 욕심이 나서 새벽까지 집에 못 가곤 했다. 완성한 버전이 5~6개는 된다"며 웃었다.
뮤직비디오마다 새롭게 변신한 그는 이번엔 1970년대 '글램룩'을 택하고, 컨템퍼러리 댄스(현대무용)를 시도했다. 달빛 아래서 에너지를 느끼며 맨발로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이 몽환적이다.
"처음 맨발로 춤을 췄는데,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여성 감독님이 연출하셨는데 그 에너지를 잘 받았죠. 멋지게 활약하는 여성분들을 보며 저도 30대로서 더 멋있게 잘 표현해내고 싶거든요. 엄정화, 이효리 선배님들처럼요."
그간의 노력은 감격스러운 성취로 나타났다. 그는 북미 쇼케이스 투어 중이던 올해 3월 미국 '아이 하트 라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한국 여자 가수로는 처음 '베스트 솔로 브레이크아웃' 상을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솔로로 도전한) 제 결심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며 "역시 새 출발 하는 걸그룹 피프스 하모니 멤버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 더욱 의미 있었다. 한국계로선 처음 받는 상이어서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가짐도 갖게 됐다"고 기억했다.
◇ "소녀시대는 내 아이덴티티…K팝과 팝의 퓨전이 티파니 사운드"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의 첫 결심은 15살 때 한국행이었다. "보아 언니 같은 음악을 하고 싶던" 그는 SM에서 3년간 연습생 생활 끝에 K팝 스타의 꿈을 이뤘다. 어린 날의 터전으로 돌아간 그에게 두 시장의 차이점을 물었다.
"물론 시스템은 다르죠. 하지만 중학생이던 저와 30대를 맞은 제가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그 사이 한국에서 12년의 커리어가 생겼지만, 그래도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은 같아요."
현지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K팝 음악계에서의 경험과 기회는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현지에서 "티파니 사운드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늘 "K팝과 팝의 퓨전"이라고 답했다. "두 스타일의 가장 매력적인 걸 담은 음악이 티파니 사운드였으면 좋겠어요. 하하."
꿈꾸던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며 안정된 홀로서기가 가능했던 것은 소속사 트랜스페어런트아츠에 둥지를 틀면서다. 이곳에는 2010년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 아시아계 미국 그룹 파이스트무브먼트 등이 있다. 이번 방문에도 소속사 공동 대표인 파이스트무브먼트 멤버 케브 니시가 동행했다.
티파니는 "미국 시장에 변화가 올 거란 믿음으로 아시아계를 일으켜 세우자는 메시지의 회사"라며 "좋은 메시지와 건강한 리더십을 가진 분들과 손잡아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늘 얼굴에 눈웃음이 피었지만, 외로운 순간은 없었을까. 노출된 삶을 사는 연예인이기에 감당할 어려움도 있을 법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부친 채무 문제로 가정사를 고백하는 마음고생도 했다.
"아빠 얘기를 털어놓고서 바로 스튜디오로 가서 쓴 곡이 올해 1월 낸 '본 어게인'(Born Again)이에요. 누군가 저와 같은 아픔, 아니 더 큰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고 싶었어요. 제 모든 걸 내려놓고 솔직하게 다가갔을 때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은 곡이라 노래할 때마다 남달라요." 이 싱글 재킷엔 베일에 가려진 티파니의 얼굴이 담겼다.
그는 결국 자신이 힘들 때마다 위로해주고 안아준 공간은 음악과 소녀시대였다고 돌아봤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 만에 한국에 온 것도 음악 덕이었어요. 그때 제 가족은 멤버들이었고, 아빠 일이 있을 때 옆에 있어 준 것도 멤버들이죠. 소녀시대가 없었다면 제가 없었고, 여전히 제 아이덴티티를 찾는 공간이에요."
개별 활동으로 소녀시대 활동은 뜸해졌지만, 되레 결속력은 단단해졌다. 지난 1일 티파니의 생일에도 완전체가 뭉쳤다. 멤버들의 단체 대화방도 늘 활기를 띤다. 최근엔 1세대 걸그룹 핑클이 14년 만에 뭉친 JTBC 예능 '캠핑클럽'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는 "저희가 핑클 선배들을 보며 자랐고 아직도 노래방에 가서 언니들 노래를 부른다"며 "우리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또 한 가지 바람은 연기다. 그는 미국에서 연기 학교에 다니며 오디션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아직 출연작은 없지만, 멤버들이 '네가 만드는 작품(뮤직비디오)으로 하고 있잖아, 연기 배운 표시가 난다'고 힘을 줬어요. '라라랜드' 같은 음악 영화나 뮤지컬을 좋아하죠.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서 요즘 평등과 여성 인권에도 생각이 열렸는데, 좋은 메시지의 작품에 언젠가 출연할 거란 믿음이 있어요."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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