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④ 장은진 '외진 곳'] 生의 나이테에 새겨진 빈곤의 무늬
가난한 자매의 생존 투쟁기
취업난·프리터 등 고민 엮어
우리 시대의 주변인 돌아봐
"21세기의 난쏘공" 평가도
◆ 제20회 이효석 문학상 ◆
줄거리는 이렇다. 다단계 사기를 당한 두 자매가 '네모집'이라 불리는 'ㅁ' 자 구조의 구옥에 이사를 온다. 창호지 바른 창문은 부들부들 떨며 매일 자매를 깨우고, 하루에 여섯 번 이용하면 하루에 여섯 번 가난을 인지하고야 마는 공용화장실은 실존의 처소를 고민케 만든다. '나'와 여동생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선잠을 청하지만 감탄사와 추임새로 '쌍욕'을 내뱉으며 생의 정면에 당당히 선다.
네모집 거주민의 공통분모인 가난은 가난에게서 배려되므로 가난하지 않다. 처지를 애써 감추려는 마음이 아니라, 처지를 부디 감춰주려는 마음으로 저들은 스스로 익명이 된다. '나'는 가난과 배려를 성찰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인데도 이상하게 모두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그것을 배려라 여기는지도. 나 또한 누구든 만나게 되면 인사를 나눠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생활고와 취업난은 현대의 비극이다.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나'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보조로 일하고 동생은 왕복 세 시간을 감내하며 편의점에서 일하는 프리터(freeter)족이다. "꿈이 있는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견딜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과 "나는 미래에 준비되어 있을 무수한 절망들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까지 앞서 생각하다 불현듯 두려워지고 말았다"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문장이 마음을 벤다. "동생은 울고 싶을 때 우는 대신 욕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는 욕을 다 했다는 건 그만큼 많이 울고 싶은 날이었다는 뜻이다." 드럼세탁기의 투명창은 세계의 경계다. "세제 거품이 투명창으로 거칠게 부서져 내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꼭 선창을 통해 보이는 폭풍 치는 바다 같았다." 삶이 떠밀어 당도하고야 만 네모집은 구조용 에어매트이자 도피처가 된다.
어딘지 모르게 자전적 서사라는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장은진 소설가의 '쌍둥이 동생' 김희진 씨도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여서다. 자매 소설가는 동거하며 소설에만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패하지만 감내하고 좌절하지만 절망을 거두는 자매의 초상화는 어쩐지 삶을 향한 자기 고백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고야 만다. 만약 그렇다면, 따스한 결말은 희망사항일는지도.
심사위원 정여울 평론가는 호평했다. "외진 장소를 보는 시선이 집요하면서도 따뜻했다. 김애란 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 나오던 인물이 40대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그 세대가 아직도 그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방민호 평론가도 극찬했다. "소설을 쓸 줄 아는, 플롯도 잘 짜낼 수 있고 문장도 생기 있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작가다. 서사에 배치된 소품도 아기자기하면서 의미가 컸다."
1976년 광주에서 태어난 장은진 소설가는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동굴 속의 두 여자'가,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키친 실험실'이 연달아 당선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날짜 없음', 소설집 '키친 실험실', '빈집을 두드리다' 등을 썼다. 2009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했다. 본명은 김은진이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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