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거사 가르치지 않아 원폭 피해자인줄도 몰라 전쟁가능 개헌 절대 반대" [세계는 지금]

김청중 2019. 7. 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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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해야 할 사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인정해야 하고, 배상하고, 가해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이 없으니 (일본의 역사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의 원폭돔 앞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평화운동가 미토 고세이(三登浩成·73·사진)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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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공원 봉사자 미토 고세이
“일본이 한국에 해야 할 사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먼저 인정해야 하고, 배상하고, 가해자로서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이 없으니 (일본의 역사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의 원폭돔 앞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평화운동가 미토 고세이(三登浩成·73·사진)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원래 히로시마현(縣) 산업장려관이었던 건물은 핵폭풍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그날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보존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알려졌다시피 히로시마에 첫 원폭이 떨어졌다. 당시 인구 35만면 중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토씨는 원자폭탄 투하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던 임신 4개월의 태내(胎內) 피폭자다. 당국이 공개를 꺼리는 원폭의 진실을 전파하는 신념의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미토씨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을 의식한 일본 당국이 원폭의 참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고교 영어 교사였던 미토씨는 58세 때 퇴직 후 원폭돔 앞에서 영어, 러시아어, 태국어 등 9개국어로 된 안내 책자를 펼쳐놓고 원폭의 잔인한 피해와 핵무기 근절을 주장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외국인만 150여개국 3만여명이 설명을 들었다.
원폭돔과 폭심지 등을 안내한 미토씨는 “반드시 가봐야 한다”며 1970년 평화공원 한쪽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건립한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로 이끌었다. 미토씨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해자는 2만여명인 것으로 알려져있다”라며 “당시 히로시마에는 군사시설이 많아 강제연행된 한국인 노동자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미토씨는 일본의 과거사 교육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아 (전쟁의) 가해자이면서 (원폭의) 피해자임을 모른다. 보통 사람은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미토씨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권이 추진 중인 개헌에 대해서도 “절대 반대”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선제공격을 할 수 없다는 평화헌법은 존경을 받아왔다”며 “일본이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되어가고 있다”고 큰 우려를 나타냈다.
 
히로시마=김청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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