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집만 골라 살려낸다..구기동 두꺼비집의 환생
구기동 폐가 수리 프로젝트
지금 대한민국에서 거의 실종된 말이다. 아파트의 시대가 그 맥을 끊었다. 집이 낡으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 낡음은 신축을 위한 이유이지 더는 수리를 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의뢰인은 ‘예진이네’ 건축주다. 예진이네는 김 소장이 수리한 부암동 집으로,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리모델링)을 받았다. 이 집의 건축주가 이 구옥들을 매입해 김 소장에게 또다시 수리를 맡겼다.
“폐허 같은 집이 김 소장의 손을 거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에 재미 들었다”는 건축주의 제안에 건축가는 “정말 아무도 못 고치는 집을 고쳐보고 싶었다”며 화답했다. “가치 있게 만들어서 팔아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을 보고서 동네 사람들은 “고수 아니면 바보”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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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진단)
두 집의 규모는 비슷하다. 대략 대지면적 108.9㎡, 건축면적은 49.5㎡다. 1950~60년대 지어졌다. 건축주가 본 첫 번째 집은 ‘암자’(편의상의 호칭)다. 어떤 가족이 오랫동안 살다 이사한 뒤 쭉 비어 있었다. 집 뒤가 인왕산 자락의 바위다. 그 바위에 두 사람은 홀랑 빠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본 공인중개사가 인근에 집 한 채가 더 매물로 나와 있음을 알렸다. ‘두꺼비 집’이다. 어둡고 낮게 웅크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첫 집보다 상태가 더 처참했다. 김 소장은 “웬만한 병원은 다 다녀온 환자 같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살 의지가 없는 환자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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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 수리(처방)
김 소장은 “지금 도시재생사업에서 하듯 옛집에 단열ㆍ방수ㆍ도배 정도 지원하는 수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쓰기 불편한 옛집의 공간과 구조를 수리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수리할 때마다 그는 테마를 정한다고 했다.
두꺼비 집의 경우 빛과 바람의 수리였다. 북향의 집의 남쪽에는 옹벽 같은 바위가 있다. 집은 토굴처럼 어두웠다. 김 소장은 이미 허물어져 쓸모없는 벽을 정리하고, 새로운 벽을 세웠다. 집의 중요한 구조체이면서 책장처럼 만들어 수납할 수 있게 했다. 수납 벽이 가리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불투명 또는 투명 유리를 끼워 넣었다.
김 소장은 암자에서 채 수리를 했다. 불법 확장된 부분을 덜어내서 원래대로 채를 살렸다. 다락방이 있는 사랑채와 부엌이 있는 안채는 공간적으로 분리됐지만, 그사이 둔 넓은 툇마루로 이어진다. 채 사이 난 창으로 집 뒤의 바위가 그림처럼 보인다. 덜어내니 자연이 끼어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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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제언)
왜 어렵게 수리해 써야 하는 걸까. 수리한 집에서 살고 있는 건축주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본인이 사는 부암동 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건축가를 찾았을 때 모두 “밀어내고 신축하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주는 ‘새로 짓는 것은 너무 뻔하고 밋밋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김 소장을 만났다. 그는 “왜 다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는 공간은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도시재생이 트렌드가 되면서 고쳐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정작 제대로 된 집수리 상조차 없다”며 “더 다양한 수리 사례를 발굴하고 독려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뒷받침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옛 동네에는 신축하기 어려운 집이 숱하게 많다는 것도 수리의 명맥이 이어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집을 다 수리해놓고 처음 두 집을 중개했던 공인중개사를 불렀다. “일반적이지 않으니 시간을 갖고 팔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중개업자는 동네 단독주택 시세만큼의 가격을 매겼다. 두 사람은 “땅값에 수리비를 더한, 생각했던 만큼의 가격이었다”며 “수리된 공간의 질을 생각하면 꽤 경제적이면서 재밌는 투자 아닌가”라고 입을 모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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