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집만 골라 살려낸다..구기동 두꺼비집의 환생

한은화 2019. 7. 27.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수리 업자' 김재관 건축가
구기동 폐가 수리 프로젝트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김재관 소장의 집수리로 환생한 집 두 채. 환히 불켜진 곳들이다. 저 너머 북한산이 보인다.[사진 무회건축]
‘집수리’
지금 대한민국에서 거의 실종된 말이다. 아파트의 시대가 그 맥을 끊었다. 집이 낡으면 부수고 새로 짓는다. 낡음은 신축을 위한 이유이지 더는 수리를 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런 요즘에 ‘집수리 업자’라고 스스로 칭하는 건축가가 있다. 업계에서 드물게 설계를 하고 수리도 한다. 김재관 무회 건축사사무소 소장이다. 지금까지 15채의 집을 수리했다.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생명을 다한 집을 환생시켰다. 김 소장은 “집수리의 역사가 끊긴 한국에서 나는 각혈하는 환자(집)를 살리는 외과 의사”라며 웃었다.
환생한 일명 '두꺼비 집'. 남쪽으로 난 천창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사진 무회건축]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구기동 집 2채를 1년여의 수리 끝에 세상에 다시 내놨다. 수리 전 상태를 말하자면, 공인중개사도 팔기를 포기한 집이었다. 모두 구기동의 길 끝에 놓인 막다른 집이다. 매우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길이 유일한 통로인, 폐가나 다름없어 모두가 외면한 집을 왜 고친 걸까.

의뢰인은 ‘예진이네’ 건축주다. 예진이네는 김 소장이 수리한 부암동 집으로,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리모델링)을 받았다. 이 집의 건축주가 이 구옥들을 매입해 김 소장에게 또다시 수리를 맡겼다.

“폐허 같은 집이 김 소장의 손을 거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에 재미 들었다”는 건축주의 제안에 건축가는 “정말 아무도 못 고치는 집을 고쳐보고 싶었다”며 화답했다. “가치 있게 만들어서 팔아보자”고 의기투합한 두 사람을 보고서 동네 사람들은 “고수 아니면 바보”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첫인상(진단)
두 집의 규모는 비슷하다. 대략 대지면적 108.9㎡, 건축면적은 49.5㎡다. 1950~60년대 지어졌다. 건축주가 본 첫 번째 집은 ‘암자’(편의상의 호칭)다. 어떤 가족이 오랫동안 살다 이사한 뒤 쭉 비어 있었다. 집 뒤가 인왕산 자락의 바위다. 그 바위에 두 사람은 홀랑 빠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본 공인중개사가 인근에 집 한 채가 더 매물로 나와 있음을 알렸다. ‘두꺼비 집’이다. 어둡고 낮게 웅크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첫 집보다 상태가 더 처참했다. 김 소장은 “웬만한 병원은 다 다녀온 환자 같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살 의지가 없는 환자였다”고 회고했다.

대신 가격이 시세보다 훨씬 저렴했다. 수많은 공사업자가 집을 보러 왔지만 포기하고 돌아갔다. 집 상태도 엉망이고, 공사를 위한 폭넓은 길도 없었다. 두 사람 눈에는 이 배척받은 땅에 희망이 보였다. ‘자연과의 관계’였다. 집 뒤가 인왕산이라 고요했다. 두 집 모두 마당에 서면 북한산이 보인다. “장소의 고유성을 살려 수리해보자”는 진단이 나왔다.
파란지붕 집이 수리 전의 두꺼비 집의 모습이다. [사진 무회건축][사진 무회건축]
두꺼비 집의 내부. 지붕이 무너져내리고 있다.[사진 무회건축]
일명 '암자'의 외부. 전 주인이 원래 두 채인 공간 사이를 내부처럼 막아 썼다(까만 샷시 부분).[사진 무회건축]


맞춤 수리(처방)
김 소장은 “지금 도시재생사업에서 하듯 옛집에 단열ㆍ방수ㆍ도배 정도 지원하는 수리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쓰기 불편한 옛집의 공간과 구조를 수리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수리할 때마다 그는 테마를 정한다고 했다.

두꺼비 집의 경우 빛과 바람의 수리였다. 북향의 집의 남쪽에는 옹벽 같은 바위가 있다. 집은 토굴처럼 어두웠다. 김 소장은 이미 허물어져 쓸모없는 벽을 정리하고, 새로운 벽을 세웠다. 집의 중요한 구조체이면서 책장처럼 만들어 수납할 수 있게 했다. 수납 벽이 가리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불투명 또는 투명 유리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천창을 내 집 안으로 빛을 끌어들였다. 천창 아래 공간을 내부 정원으로 만들었다. 밖에서 내려다볼 수 없는 환한 은둔의 정원이다.
수리한 두꺼비 집.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마당에 채마밭을 뒀다.[사진 무회건축]
집 창틀에 앉아 있으면 솜털을 스치는 바람이 분다. 조그만 창이 난 별채는 원래 연탄광이었다.[사진 무회건축]
두꺼비 집의 내부. 수납할 수 있는 벽이 집을 단단히 받치고 있다. 천창 아래 내부 정원을 뒀다.[사진 무회건축]
암자의 상태는 두꺼비 집보다 좋았다. 공인중개사가 집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15평이지만 실제로 20평이 넘는 집”이라며 홍보하는 집이었다. 두 채로 분리된 집의 사이를 덮어 실내처럼 쓰고 있었다.

김 소장은 암자에서 채 수리를 했다. 불법 확장된 부분을 덜어내서 원래대로 채를 살렸다. 다락방이 있는 사랑채와 부엌이 있는 안채는 공간적으로 분리됐지만, 그사이 둔 넓은 툇마루로 이어진다. 채 사이 난 창으로 집 뒤의 바위가 그림처럼 보인다. 덜어내니 자연이 끼어든 셈이다.

두 집 모두 시원하다. 물 머금은 흙(산)이 뒤에 있다 보니 마당이 햇빛에 데워지면 대류현상으로 바람을 만들어낸다. ‘솜털 건드리는 정도의 기분 좋은 바람’이라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인력으로 모든 공사 자재를 날라야 했던 만큼, 재활용할 수 있는 재료는 최대한 활용했다. 암자의 경우 마당을 정비하다 나온 구들을 마당에 깔아 멋지게 재활용했다.
암자의 사랑채. 집 뒤에 인왕산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사진 무회건축]


발상의 전환(제언)
왜 어렵게 수리해 써야 하는 걸까. 수리한 집에서 살고 있는 건축주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본인이 사는 부암동 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건축가를 찾았을 때 모두 “밀어내고 신축하자”고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주는 ‘새로 짓는 것은 너무 뻔하고 밋밋하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김 소장을 만났다. 그는 “왜 다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지는 공간은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리모델링)을 수상한 예진이네 집. 옛 나무 지붕을 그대로 살려 수리했다. [사진 무회건축]
옛집에 이어 추가로 공간을 증축한 예진이네 집.[사진 무회건축]
모든 것을 유적처럼 남기는 게 수리는 아니다. 실용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둔다. 김 소장은 “살릴 수 있는 것은 수리하면서 일단 살리지만, 기본적으로 수리는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도시재생이 트렌드가 되면서 고쳐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정작 제대로 된 집수리 상조차 없다”며 “더 다양한 수리 사례를 발굴하고 독려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뒷받침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옛 동네에는 신축하기 어려운 집이 숱하게 많다는 것도 수리의 명맥이 이어져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집을 다 수리해놓고 처음 두 집을 중개했던 공인중개사를 불렀다. “일반적이지 않으니 시간을 갖고 팔아보겠다”는 말과 함께 중개업자는 동네 단독주택 시세만큼의 가격을 매겼다. 두 사람은 “땅값에 수리비를 더한, 생각했던 만큼의 가격이었다”며 “수리된 공간의 질을 생각하면 꽤 경제적이면서 재밌는 투자 아닌가”라고 입을 모았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