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대묘 깊이보기 4 - 황룡과 신수(神獸)
[고구려사 명장면-75] 강서대묘 하면 의당 사신도부터 떠올리기 때문에, 오히려 필자는 무덤 공간의 균형과 조화로움으로부터 시작해서 천장의 여러 그림들부터 살펴보고 있다. 이번 회가 천장 그림으로는 마지막이다.
석실 무덤을 축조할 때 무덤 바닥과 네 벽을 세우고 그 위에 천장고임을 만든 뒤 마지막에 덮개돌을 덮음으로써 무덤 내부가 완성된다, 그 덮개돌이 무덤 안에서 볼 때는 천장석이 된다. 그래서 천장석은 무덤 축조의 마침돌이 되는 셈이다. 필자는 벽화고분을 축조하면서 어느 단계에서 벽화를 그리는지 늘 궁금해 했지만, 아직 전문가로부터도 그리 명쾌한 확답을 듣지는 못했다.
예컨대 벽화를 천장석까지 맞추어 완성해놓고 인공적인 불을 밝히고 벽화를 그리는지, 아니면 천장석은 비워놓고 자연광 아래에서 벽화를 완성하고 나중에 천장석을 덮고, 마지막 천장석 그림을 그리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광이냐 인공광이냐는 벽화의 채색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기회가 있을 터이니, 벽화고분 천장석이 갖는 의미를 환기해보시라는 정도의 문제 제기만 하고 다시 강서대묘 천장석으로 돌아가자.
강서대묘의 정방형 천장석에는 황룡이 그려져 있다. 천장석의 네 모서리에는 연꽃이 수줍게 살짝 얼굴을 드러내듯 4분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이 천장석을 받치고 있는 삼각 고임돌의 네 옆면에는 날개과 꼬리를 휘날리는 서조 등이 그려져 있고, 그 삼각 고임돌의 아랫면에는 화려하게 피어나는 연꽃과 인동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시 그 아랫단 삼각고임돌의 옆면에는 봉황과 기린 등이, 그 아랫면에는 활짝 핀 연꽃과 하늘을 나는 서수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강서대묘 천장 윗부분은 2단의 삼각고임과 천장석으로 구성하여 반구형으로 상상되는 하늘세계를 구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거기에 선인과 비천상이나 여러 서수, 연꽃 등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장의 황룡을 마침표로 하여 하늘 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그중에서 아랫단 삼각고임 옆면에 신령스러운 화초를 가운데 두고 서로 다정스레 마주 보고 있는 암수 한 쌍으로 그려져 있는 기린과 봉황이 눈길을 끈다. 기린은 입으로부터 영기를 뿜어내며 힘차게 달리는 모습이다.
기린은 중국 고대에서부터 등장하는 신령스러운 상상의 동물로 수컷을 기(麒), 암컷을 린(麟)이라고 하며 합쳐서 기린이라고 부른다. 그 형상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처음에는 사슴의 형상으로 표현되다가 점차 말의 몸을 갖는 형태로 바뀌어 갔다. 여기에 하나의 뿔을 갖고 있으며, 입에서는 서기(瑞氣)를 뿜어내고 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린의 모습은 경주 155호 고분에서 출토된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와 매우 비슷하다. 게다가 나중에 적외선 촬영으로 이마에 뿔이 하나 그려진 것이 확인되면서, 하늘을 나는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금도 말갈기를 묶어 뿔처럼 장식하는 몽골의 풍습을 보면, 기린이 아니라 천마도가 맞는다는 반론도 여전하다. 천마인지, 기린인지를 따져볼 때, 강서대묘의 기린 모습은 이 시기 사람들이 상상한 기린의 형상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다.
다음 기린과 하나의 세트를 맞추어 그려져 있는 게 봉황이다. 붉은 날개를 힘껏 날갯짓하며 기다란 꼬리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하여 합쳐 봉황이라고 한다. 그 생김새는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갖춘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조금 다른 묘사도 있는데, 상상의 동물인 만큼 그 모습이 같을 수는 없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신비로움을 부여하는 상상력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든 봉황이 상서롭고 아름다운 새로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사신의 하나인 주작 상서로운 새라는 점에서 역시 봉황과 그리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 게다. 그래서 도상이나 인식에서 봉황과 주작은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그래서 도상들의 그려지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고구려 벽화고분 무덤방의 남쪽 벽에 그려진 것은 사신의 하나인 주작이다. 그러나 천장 등에 그려지는 상서로운 새는 주작과 비슷한 모습일지라도 봉황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린과 봉황이 그려져 있는 그 윗단 삼각모줄임 옆면에도 봉황과 비슷한 모습의 서수가 그려져 있다. 긴 꼬리와 날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봉황과 비슷하지만, 이들 존재를 봉황으로 보기는 어렵겠다. 아랫단에 암수 쌍으로 표현된 봉황과는 달리 마주 보는 게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기린과 봉황 이외에도 비어(飛魚) 등 여러 서수들이 강서대묘 천장에 담겨 있다는 점만 확인하고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마지막으로 천장석에 그려져 있는 황룡을 살펴보자. 다소 손상되어 그 형태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황룡은 몸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마치 소용돌이 치는 듯한 역동감을 불러일으키고, 둥근 원의 몸에서 뻗어나가는 듯한 꼬리는 큰 반원형에서 점점 작아지는 파형을 그리면서 율동감과 속도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방형의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황룡의 묘사는 네 벽면의 사신도 못지않은 생동감이 넘치는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강서대묘는 이 천장석의 황룡으로 인해 동서남북 사방의 사신도와 더불어 오행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고분이 되었다. 그런데 황색이 중앙 색이고 거기에 왕권을 상징하는 용으로 표현되면서, 천장석의 황룡은 고구려 태왕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 다만 용은 워낙 다양한 상징성을 갖고 있으며, 왕릉으로 볼 수 없는 집안의 오회분 4호묘의 천장에도 황룡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회분 4호묘의 황룡 그림은 우아함과 세련됨에서는 강서대묘의 그것에 다소 모자라지만, 힘의 역동성에 있어서만큼은 그 어느 사신도에 못지않다. 왼쪽 앞발과 뒷다리는 힘을 응축하듯 잔뜩 구부리고 있지만, 오른쪽 앞발과 뒷다리는 힘차게 내지르고 있다. 특히 S형으로 굴곡지게 그려져 있는 목과 꼬리 사이에서 일직선으로 쭉 뻗치고 있는 뒷다리는 불균형 크기임에도 오히려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여기에 용의 비늘 덮인 몸은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5색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동시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크게 벌린 입술과 날름거리는 혀, 두 뿔은 붉은색으로 표현하여 용의 뒷다리에 불꽃처럼 일렁이는 흰색과 대비되어 한층 생명력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이 황룡도를 볼 때마다 마치 현대 회화를 보는 듯한 그림의 파격적 구성과 색채감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필자 개인 생각으로는 이 오회분 4호묘 황룡도를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으로 꼽을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벽화고분 중에서 천장에 황룡이 그려져 있는 고분은 강서대묘와 오회분 4호분 단 2기뿐이다. 평양 지역 벽화고분 중에는 왕릉급 고분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강서대묘를 제외하고는 천장석에 황룡을 그리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서대묘 천장석의 황룡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강서대묘와 나란히 있는 강서중묘도 왕릉임이 분명한데, 천장에는 연꽃이 그려져 있다. 황룡도에 사방 중앙의 군주권이라는 상징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강서대묘에 묻혀 있는 주인공이 강서중묘의 주인공보다는 좀 더 특별하게 기려졌던 왕이었음을 시사받을 수 있겠다.
앞서 본 연재 70회에서 강서삼묘의 무덤 주인공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천장의 황룡도를 고려한다면 과연 그들 중 어느 왕이 강서대묘의 주인공일까? 어차피 확증도 없고 정답도 모르니, 독자 여러분도 나름 상상력과 추리력을 발휘해 보시기 바란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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