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날 때까지 [만화로 본 세상]
ㆍ임신 부부가 살아가는 세상, 우리 모두의 이야기
출산은 여전히 ‘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부보다 더 큰 ‘우리’의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임산부 ‘우리’의 이야기고, 육아휴직을 보장받아야 할 직장인 ‘우리’의 이야기이며,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닌 ‘우리’의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만화 서가를 뒤지다 난다의 만화를 발견했다. 〈어쿠스틱 라이프〉(다음웹툰)의 오랜 팬이다 보니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날 때까지〉(애니북스)라는 제목부터 그렇지만, 역시나 출산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이 만화의 존재를 〈어쿠스틱 라이프〉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찾아 읽지 않았다. 출산이 내 이야기가 아니어서였다. 이건 내가 남자여서만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고 출산계획도 없다. 소위 ‘딩크족’인 우리는 아이 없는 삶에 만족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택한 삶에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출산수당을 받을 수 없다거나, 국가의 ‘미래’에 이바지할 수 없다거나 하는 건 아쉽지도 않다. 나와 아내를 닮은 아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좀처럼 알고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우리 선택의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 끝까지 읽고 만 〈내가 태어날 때까지〉 덕에 후자의 아쉬움은 약간 덜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늘었고, 출산의 여정을 거친 그들에 대한 존중이 더해졌다.
30대 연상연하 부부인 홍치와 수철에게 기다리던 ‘두 줄’이 찾아왔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산부인과 의사의 확언으로 이어지고, 이제 그들은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었다. 홍치에게는 임산부이자 엄마로서의 삶이, 수철에게는 임산부의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삶이 그 문 너머에 있다. “아기는 정말, 축복이야.” 임신 전에는 거슬리던 친구의 이런 말이 이제는 홍치에게도 기쁨으로 다가온다. 임신 후로 걱정이 는 홍치를 안심시키지만, 수철도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좋아하는 것만 해왔다. 아기가 태어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난다 작가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스스로 창조한 두 인물에 이처럼 섬세하게 담았다. 특히 임산부 홍치의 변화에 대한 명민한 감각을 담담히 그려내는 묘사는 작가의 오너캐가 아니어서 더 빛을 발한다. 모든 임산부, 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과 이해로 이어질 여지가 폭넓게 열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에피소드. “임신을 하고 알게 된 것. 세상에 임산부가 정말 많다는 것.”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다른 임산부로 인해 자신이 앉지 못할 때 홍치의 내레이션이다. 같은 장면, 홍치의 배를 본 한 할아버지가 자리를 양보한다. “우리나라에 젠틀한 할아버지가 이렇게나 많았었나 하는 것.” 홍치는 임산부가 되고서 그 전에는 몰랐던 사회를 발견하고, 이 발견은 곧 독자의 발견이 된다. 하지만 발견은 부정적인 것에도 공평하다. “하지만 그만큼 무례한 사람들도 가득하다.” 노산을 쉽게 폄하하는 다른 할아버지의 말에 홍치는 생각한다. “좀 더 강해져야지. 나는 이런 세상에 아기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이런 세상’이라서만은 아니지만, 딩크족은 출산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 그에 따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출산은 여전히 ‘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부부보다 더 큰 ‘우리’의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임산부 ‘우리’의 이야기고, 육아휴직을 보장받아야 할 직장인 ‘우리’의 이야기이며,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닌 ‘우리’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 육아 부부와 딩크족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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