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효석문학상 최종심 진출작 ② 김채원 '흐름 속으로-등잔'] 돌림노래처럼..시간에 새겨진 '다른 나'를 바라보다
묵직한 질문 던진 마에스트로
"우린 누구인가" 자문케 돼
◆ 제20회 이효석 문학상 ◆
맨해튼 43번가 아파트 건물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언니 정과 공항으로 떠나는 동생 연의 모습으로 소설은 출발한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언니 정이 급작스러운 병고로 이승을 떠나버린다. 그날은 자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이후 세 가지 시공간을 교차하는 소설은 정의 죽음 전후, 연의 감정을 파고든다. 유년 시절 정과 연이 등잔 밑에서 겪었던 하루가 기억을 찢고 현재에 틈입한다.
시간과 주체는 뭉개진다. 선후(先後) 없는 시간은 '돌림노래'처럼 출몰하는 사건으로만 인지된다. 시간에 돋을새김된 기억은 정신의 불순물이다. "무의식처럼 솟는 지난 시절의 기억이란 재구성되어 다가올 앞날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걸까." 주체는 끊임없이 자기를 상실한다. 자기 정체성을 묻는 의문부호는 때로 우리를 향한다. "우리는 모두 누구인 걸까. 그리고 누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이때 등잔불은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 빛의 세계에 물든 암흑. 흔들리는 등잔불은 유년 최초의 기억이다. 정이 책을 읽으려 등잔 아래에서 밤새 동화를 읽던 유년의 기억을 연은 오래 껴안았다. "천장에는 무엇인지 모를 그림자가 일렁였고 그 일렁이는 그림자로 하여 방은 훨씬 크게 보이기도, 동굴 속같이 작게 보이기도 했다." 동굴을 비추는 촛불은 여전히 타오른다. 사위는 온통 어둡다.
언니 정의 죽음, '2인칭 죽음' 당사자인 연의 시선에서 결국 '비어 버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함께 머물렀던 세계에서 상대가 '부재해진다'는 건 만남이 없어도 분명히 존재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간이어서다. "죽음이란 다른 무엇이 아니고 생명이 몸에서 떠나는 것이었다. 육신은 없어져도 영혼은 따로 남아 있는 걸까.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일까."
혈육이란 '타아'를 조망한 소설을 읽다보면, 김채원 소설가의 언니 고 김지원 소설가(1942~2013)가 떠오른다. 네 살 터울 자매는 소설가로 활동했으며 8년 격차로 이상문학상을 나란히 받았다. 언니 김지원이 떠난 자리, 동생 김채원은 기억을 소설로 다뤘고 '쪽배의 노래'는 2015년에도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도 진출했다. 201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베를린 필'마저 기억을 둘러싼 사유다.
심사위원 윤대녕 소설가는 따스하게 극찬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우리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상실감, 고독과 슬픔 등 삶에 '고여 있는' 감정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정여울 평론가도 호평했다. "평생 자기 몫을 주장하지 못하고 장작불처럼 타오르다가 정작 자기에게 쓸 연료는 없어진 상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강렬한 감정을 일으켰다."
1946년 경기도 덕소에서 태어난 김채원 소설가는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5년 문예지 '현대문학'에 단편 '밤 인사'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으며 '겨울의 환(幻)'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초록빛 모자' '봄의 환' '달의 몰락' 등, 중편 '미친 사랑의 노래', 장편 '형자와 그 옆사람' '달의 강' 등이 있다. 언니 김지원과 소설집 '먼 집 먼 바다' '집, 그 여자는 거기에 없다'를 썼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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