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알고도 당한다]②'010 번호로 변작'..날로 치밀해지는 보이스피싱

이철 기자 2019. 7.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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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사칭·납치빙자..'주문한 제품 발송됐다' 문자도
전화 안끊고 계속 통화.."중앙지검 앞에서 기다리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전경. /뉴스1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시대가 바뀌면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법 또한 점점 발전하고 있다. 수년전 개그프로그램 코너에 나오던 어눌한 조선족 보이스피싱 상담원들은 이제 없다. 대신 '진짜' 한국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속인다.

◇"검사·경찰·금감원 직원 사칭, 납치 빙자가 가장 많아"

보이스피싱 유형 중 대부분은 '검사 사칭'이다. 보통 첨단범죄수사부 검사를 많이 사칭한다. 처음에는 상담원 중 한명이 "중앙지검 첨수부 수사관인데 당신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 담당 검사님을 바꿔주겠다" 라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건다.

이후 다음 조직원이 "검사인데 당신 돈이 범죄에 연루된 정황이 있다. 통장에 있는 돈이 범죄에 연루된게 정말 맞는지, 당신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확인해야하니 돈을 뽑은 후 내가 부른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갖다달라"고 지시한다.

검사라고 말하는 조직원은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피해자와 통화하면서 접선 장소를 지정한다. 피해자가 접선 장소에 나가면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현금수거책이 돈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검사 사칭 피의자는 "돈을 검사하고 돌려줄테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다리라"면서 전화를 끊는다. 피해자들은 중앙지검 앞에서 하염없이 돈을 기다리다 결국 사기당한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한다.

신동석 서초경찰서 지능범죄수사과장은 "그렇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장 가까운 서초서로 온다"며 "상담원들이 마치 범죄에 연루된 사람을 대하듯 겁을 주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대부분 경황이 없어 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이나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하는 경우도 검사 사칭 수법과 비슷하다. 대부분 '통장에 있는 돈이 범죄에 사용됐던 흔적이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는 내용들이다. 이외에 중장년층 이상의 피해자들은 자녀 혹은 손주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도 많이 속는다.

지재선 서초서 전화금융사기전담팀장은 "보이스피싱 콜센터 상담원들은 돈을 송금할 때까지 피해자의 전화를 절대 못끊게 하고, 와이파이와 모바일 데이터도 끄게 한다"며 "제 3자가 보기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범죄가 보이스피싱이기 때문에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피해자들을 속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최신 트렌드는 계좌이체나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닌 앱을 통한 휴대전화 원격조종이다. '주문하신 제품이 발송됐다'는 문자를 피해자에게 보내고, 해당 전화번호로 피해자가 전화를 걸면 마치 업체 콜센터 직원인 것처럼 상담하면서 원격조종 앱을 깔게 한다. 이후 "환불절차를 알려주겠다"면서 계좌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요구하고, 원격조종 앱을 통해 계좌 내 돈을 가져가는 수법이다.

경찰은 지난 4일 원격조종 수법으로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내 인출하려던 40대 2명을 6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조직원 3명도 지난 10일 검거해 조사 중이다.

지난해 9월 경찰이 경기도의 한 주택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견된 발신번호 변작기. 2019.7.19/© 뉴스1

◇'070' 아니라 '010'인데?…속으면 안돼

최근 젊은 층들은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는 웬만하면 받지 않는다. 발신번호를 표시해주는 애플리케이션들은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전화의 보이스피싱, 텔레마케팅, 광고 등 전화 유형을 표시해준다. 하지만 요즘 보이스피싱은 대부분 지역번호(02 등)나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온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핵심 피의자들은 해외에 콜센터를 마련하고 한국인 상담원을 모집한다. 이들을 현지로 불러들여 인터넷전화로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한국의 모처에 마련된 '발신번호 변작기'가 이를 국내 번호로 바꿔준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보이스피싱 조직원 10여명을 검거하고 그중 30대 유심관리자와 국내총책 등 3명을 같은달 구속했다. 이들은 경기도의 한 가정집에서 컴퓨터 몇대와 변작기를 비치하고, 해외에서 걸려오는 같은 조직원들의 인터넷 전화를 국내 번호로 바꿔주는 일을 맡았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했을 당시 변작기에는 수백개의 유심(USIM)칩이 꽂혀있었다.

지재선 전담팀장은 "대부분 노숙자들이나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의 돈을 주고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한 후 유심을 변작기에 꽂아 해당 번호로 변환한 후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건다"며 "국내 번호라고 안심해선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

◇나도 모르게 범죄자로…'휴대폰깡'·고수익 알바'·'저리대출' 조심해야

그렇다면 해외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어떻게 한국에서 피해자들의 돈을 받아 자신들의 계좌까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피해자를 속여넘기는 통화 외에도 다양한 루트로 국내 '인출책'과 '통장대여책'을 섭외한다. 주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노린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고수익 알바' 모집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인터넷 등을 통해 광고하는 방식으로 현금인출책을 모집한다. 이들이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아 다른사람(전달책)에게 전달하면, 받아 온 금액의 3~4%를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주는 방식이다. 100만원만 받아와도 한건당 3만~4만원, 1000만원을 받아오면 한번에 30만~40만원의 돈을 벌 수 있다. 범죄조직들은 여기에 추가로 진짜 알바처럼 식대도 주고 교통비도 지급한다.

경찰은 지난달 초 보이스피싱 신고를 받고 이달 초 경기도에서 17세 고등학생 2명과 16세 중학생 1명 등 총 3명의 인출책을 사기 혐의로 검거해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역시 SNS에서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직접 돈을 받는 방식 외에 특정 계좌로 돈을 보내는 방법도 있는데, 이때 사용되는 계좌는 대부분 '저리이자 전환' 광고를 통해 모집한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를 걸어 "현재 대출하신 금액의 이자가 높으니 우리 업체에서 더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겠다. 다만 그러려면 현금 이체 실적이 있어야 한다.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우리가 실적을 쌓아주겠다"고 광고한다. 이렇게 확보된 계좌는 곧 자금의 통로로 이용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전자금융거래법을 위반하게 된다.

발신번호 변작기에 사용되는 유심은 주로 노숙자나 '휴대폰깡' 광고를 통해 모집한다. 노숙자에게 돈을 주고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주겠다면서 휴대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유심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해 처벌받게 된다.

i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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