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을 2주간 불매해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손에 집어든 맥주엔 '기린 이치방(KIRIN ICHIBAN)'이란 문구가 있었다. 운동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더니 목이 타서 편의점에 갔었다. 시원한 맥주 하나 마실 참이었다. 맥주캔 위쪽을 보니 'JAPAN’S PRIME BREW(일본의 최고급.. 뭐 그런 뜻)'라 쓰여 있었다. 평소 같으면 후다닥 계산해 단숨에 들이켰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검색을 해봤다. '기린 맥주'가 대체 어떤 기업인지에 대해.
일본 굴지의 주류회사란다. 그리고 1907년, 미쓰비시(MITSUBISHI) 그룹의 계열사가 됐단다. 그룹 핵심엔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다. 대표적인 '전범 기업'이란다. 쉽게 말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수행을 도왔단 뜻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 주력 전투기 '제로센'이 미쓰비시중공업 제품이다. 이 군수기업은 회원사 626개, 직원 57만명에 달하는 재벌로 성장했다.
여기엔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겼다. 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광업, 미쓰비시공장에 강제동원 된 조선인만 약 10만명이란다(다케우치 야스토, 일본 역사학자 추정치). '군함도'로 잘 알려진 나가사키 하시마섬 탄광을 미쓰비시가 운영했다. 조선인 50여명이 여기서 숨졌단다. 14~15세에 불과한 소녀들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강제징용됐다. "상급학교에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서.
한 10분쯤 그렇게 서 있었을까. 아직 차가운 캔맥주에서, 손을 타고 물방울 여러 개가 쪼르르 흘렀다. 그게 문득 조선 청년들 눈물처럼 느껴졌다. 오래 전 흘렸지만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그래서 냉장고에 기린 맥주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국산 맥주 하나를 집어 들어 계산했다. 그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었다.
'일본 제품'을 안 사기로 맘먹었다. 기한은 안 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이 괘씸해서(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밝힌다).
미리 고백컨대, 사실 그리 떳떳하게 살진 않았다. 일본과 관련해 과거를 돌아보자면 말이다. 겨울에 홋카이도 여행을 가서 삿포로 맥주에 라멘을 먹었다. 취재할 때 일본 펜이 잘 나온다고 즐겨 썼었다. 집엔 디자인이 썩 괜찮은 무인양품 선풍기가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했고, 때때로 기사도 썼으면서도, 소비는 이렇게 별개로 해왔었다. 별 생각이 없었다. 깊이 반성한다.
조금 길지만, 이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왜 일본제품 불매를 시작했는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얘기다.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 두 분(여운택, 신천수)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었다. 상대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이었다.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밀린 임금도 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3년 끝내 패소했다. 일본 법원 판단은 이랬다. 전쟁 전 일본제철과 현재의 일본제철은 다르니 책임질 의무가 없다고 봤다.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도 발목을 잡았다. 한일 양국과 국민들 재산, 권리와 이익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단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 정부에 무상 3억달러(당시 환율로 약 1080억원)와 유상 2억달러(약 720억원)의 공공 차관(10년)을 제공했었다. 그걸로 다 끝났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다시 소송을 냈다. 이미 일본 법원에 패소한 할아버지 두 분에 이춘식, 김규수 할아버지까지 함께. 그렇게 다시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장장 13년8개월이 흘렀다. 끝내 승소 판결을 얻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30일 "일본제철은 피해자들을 강제 동원해 가혹 행위를 했다"며 피해자들에 1명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선 피해자들 개개인의 배상청구권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봤다.
끝난줄 알았더니 시작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에 어긋난다"며 대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 분쟁을 해결하자고 요청하더니, 중재위원회를 열자고 했다. 그리고 7월1일, 문제의 '수출 규제'가 시작됐다. 한국 산업의 최정점인 반도체를 노렸다. 여기에 필요한 원료 세 가지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경제 전쟁' 선포였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나 때문에 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부담이 된다"고 미안해했다. 사과를 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사과를 했다. 정작 사과해야 할 당사자들은 떳떳한데도. 그리고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는 거란 얘기가 연일 쏟아진다. 그런데 사실 보복은 피해자들이 쓰는 말이다. 잘못됐다. 일방적으로 선포한 '경제전쟁'이다.
난 일제 강점기를 모른다. 을사늑약도, 한일합병도 모른다. 3.1 운동도 모르고, 강제징용도 모르며, 위안부 동원도 모른다. 그저 책으로만 배웠다. 그래서 당시 피해자들 아픔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잘못된 게 뭔진 알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제품을 안 쓸 순 있다. 얼마든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 그게 선조들이 피를 흘려 지켜낸 이 나라에 편히 사는 내 도리라는 것도.
그래서 이 경제전쟁서 기꺼이 '진짜 피해자'들 편에 서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대체휴일에 주말 이틀을 껴서, 2박3일(7월12일부터 14일) 동안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정신없는 6월 한 달을 보내느라 좀 지쳐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늦게 가을 휴가를 계획한터라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여름엔 짧게나마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제주도 아니면 일본 도쿄였다. 두 곳 모두 이미 다녀왔고, 저마다 좋은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었다.
제주도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소담한 매력이 있었다. 동쪽 평대 바다를 하릴 없이 걷다 초록이 보이고 돌담이 있는 카페에 들어가 늘어지게 쉬는 게 좋았다. 서쪽 애월로 가면 한담 해안로를 걷다 해가 바다 너머로 넘어가는 광경을 보곤 했었다. 풍광과 달리 비용은 소담하지 않은 게 단점이었다. 그래서 보통 경차를 빌려 바다가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묵곤 했다.
일본 도쿄는 어느 해인가 3월 봄에 한 번 갔었다. 명목상 나카메구로의 흩날리는 벚꽃을 보겠다며 갔는데, 살만 잔뜩 찌웠다. 그만큼 맛있는 게 많았다. 아침엔 규동을 먹고, 점심엔 규카츠를 곱빼기로 먹었으며, 오후엔 수플레 팬케이크로 입을 적시고, 저녁엔 장어 덮밥으로 원기 회복을 하고, 밤엔 꼬치 등을 파는 신주쿠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창 밖으로 지하철인지 기차가 지나가는 소릴 들으며 쉴 새 없이 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편의점서 계란 샌드위치를 사와 먹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식비가 꽤 많이 들었다.
자세히 적은 이유가 있다. 이번엔 일본 여행을 포기했다. 불매운동서 가장 중요한 게 일본 여행이란다. 지난해 일본 관광객 전체 3119만명 중 24.1%(753만9000명)가 한국인이란다(출처: 일본 정부 관광국).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지출 금액은 약 54억달러(약 6조3550억원)이란다. 오사카나 후쿠오카 같은 중소도시엔 한국인 비중이 30%나 된다고. 안 가면 그만큼 타격을 줄 수 있단 뜻이다.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일본제품들을 피하는 게 필요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편이라, 주로 편의점이나 마트서 소비하는 게 많았다. 그리고 떨어질 때마다 사와야 하는 생필품 등도 있었다. 어떤 게 일본 제품인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일단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리스트'를 봤다. 하지만 여기엔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고, 일본 기업이라 보기에 애매한 것들도 섞여 있었다.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불매가 필요한 제품들부터 시작해 애매한 것들까지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①'전범기업' 제품들
국무총리실이 2012년 발표한 일본 전범기업은 총 299곳. 대일항쟁기 당시 강제동원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생명, 신체, 재산 등 피해를 준 기업이다. 현존하는 기업 중 한국에 알려진 기업은 파나소닉, 도시바, 히타치, 미쓰비시, 니콘(미쓰비시 계열사), 기린 맥주(미쓰비시 계열사), 스미토모, 모리나가 제과 등이다. 참고로 제트스트림 같은 펜을 만드는 '미쓰비시 연필'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와는 무관하다고.
여기선 당장 소비 가능성이 있는 건, 기린 맥주 정도였다. 여름이라 불금이나 주말엔 캔 맥주에 치킨이라도 한 마리 뜯었으니. 불매 기간 동안 맥주는 편의점에서 한 번, 대형마트에 가서 한 번 각각 두 캔(500밀리리터)씩(내 거랑 아내 거) 샀었다. 둘 다 기린 맥주(2500원) 대신 국산 클라우드 맥주(2080원)를 샀다. 과거에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며 기린 맥주를 사먹었던 게 생각났다.
편의점과 대형마트 두 군데 모두 기린맥주가 진열돼 있었다. 일부 매장에선 뺀단 얘기도 있었는데, 다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판매량에 대해선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각각 말이 달랐다. 한 대형마트(E사) 직원은 "일본 맥주 판매량이 예전과 비교해 반의 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편의점(G사) 점주는 "아사히 등 일본 맥주를 빼야하나 했는데 꾸준히 나가고 있다"며 "물량을 다른 제품처럼 꽉꽉 채울 정도는 아니고 약간 줄긴 했다"고 했다.
아쉬웠던 건, 대형마트(E사) 맥주 코너 진열 방식이었다. 냉장 진열대엔 버젓이 기린, 아사히, 삿포로 같은 일본 맥주가 진열돼 있었던 반면, 클라우드, 하이트, 카스 같은 국산 맥주는 냉장이 안 되는 일반 진열대에 놓여 있었단 점이다. 여름이라 더워서 아무래도 냉장 진열대 제품에 손이 가게 마련이니까.
그동안 소비했던 것들도 함께 고백한다. 니콘 카메라를 한 10여년 전쯤에 샀다가 중고로 판매한 적이 있다. 가격은 30~40만원 남짓이었던 것 같다. 파나소닉은 전기면도기를 한 번 쓴 적이 있다. 일제가 전자제품이 좋다는 생각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썼었다. 요즘엔 우리 기업들도 기술력이 좋아 잘 만든다.
②확실한 '일본 기업' 제품들
갑론을박 여지가 없이, 일본 기업으로 볼 만한 기업들이다. 그간 소비해 왔던 패턴으로 봤을 때 무인양품(생활용품), 유니클로(의류), 갸스비(왁스), 미니스톱(편의점), 포카리스웨트(이온음료), 발뮤다(가전제품), 제트스트림(펜) 등이 여기 속했다.
무인양품은 정갈한 디자인이 좋아 재활용 쓰레기통과 선풍기를 구입했었다. 왁스는 찐득찐득한 느낌이 좋아서 갸스비 제품을 가끔 썼었다(근데 대체로 잘 안 씻김). 미니스톱은 동네 인근에 하나 있어서 종종 갔었고, 포카리스웨트는 일본 제품인지도 몰랐다(동아오츠카). 발뮤다는 공기청정기를 구매했었다. 유니클로는 지난달에 연한 청바지를 하나 샀었고, 그 전에도 겨울용 내의 등을 구매했었다.
일본 제품 불매 기간 내엔, 마침 왁스가 다 떨어져 사러 갔었다. 진열대를 보며 고민이 됐다. 갸스비 제품은 확실히 일본 거라는 걸 알아서 안사면 되는데, 대체재로 생각했던 ‘다슈’라는 다른 제품이 일본 기업 제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이름이 왠지 일본 제품 같아서.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니 "국내 기업 제품"이라고 했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판매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국 제품이 맞단다.
쓰레기통도 하나 필요해 사러갔다. 회사에 놓아야 하는데, 내 자리 옆에 없어서 후배들 있는 자리까지 버리러 갔었다. 괜히 가면 뒤통수가 따갑고 불편할 것 같아(모니터 등 신경 쓰임, 다 알고 있음) 하나 사려고 했었다.
디자인이 깔끔한 걸 사려고 하니, 무인양품이 생각났다가 말았다. 대체재를 찾으니 자주(JAJU)라는 생활용품 브랜드가 있다고 했다. 지나가다 봤던 기억이 있었다. 한 대형마트(E사) 지하 1층에 가니 자주 매장이 있었다. 뚜껑이 돌아가는 쓰레기통과 손잡이가 있는 쓰레기통 중 뭘로 살까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쓰레기통을 비우는 아주머니가 좀 더 버리기 쉬울 것 같아서. 가성비도 괜찮았다. 4800원 정도.
취재에 필요한데 얼마 전 또 잃어버렸던 펜도 필요했다. 지하에 위치한 한 문구전문점에 갔다. 문구류 중에서도 펜이 꽂혀 있는 곳은, 그야말로 일본제품의 향연이었다. 거의 대부분 일본 말이 쓰여 있었다. 평소 쓰던 제트스트림의 가격은 하나에 1450원, 그와 비슷한 국산 펜 가격은 850원이었다. 밑에 붙어 있는 종이에 써보니 확실히 부드럽게 굴러가는 느낌에서, 품질 차이가 나긴 했다. 종이에다 ‘한국산 구매합시다, 일본산 불매합시다’라고 써놓고 국산 펜을 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학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일본제품 불매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다"고 했다.
③일본 기업이라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가끔 길냥이에게 주는 사료를 하나 사러 다이소(DAISO)를 찾았다. 다이소는 일본 다이소 때문에, 일본제품 불매운동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돼 왔다. 그럼에도 저렴하고 다양한 제품 덕분에,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든 기업이다. 일단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니, 업체명을 일본 다이소에서 가져왔단다. 한국 기업인 아성HMP가 지분 50.02%로 대주주지만, 일본 다이소 지분이 34.21% 지분을 갖고 있어 2대 주주다. 수익이 나면 배당금이 일본에 흘러들어간단 얘기다.
하지만 매출 70%가 국내 중소기업 680여개 제품서 나온다고 했다. 판단이 잘 안서서, 동네 다이소 한 곳에 가서 살펴봤다. 실제 국산 제품이 많이 배열돼 있었지만, 일본 다이소 제품 등 일본산도 꽤 많았다. 특정 제품이 아예 국산(찜질패드)만 있거나 일본산(냉찜질패드)만 있기도 했다. 국산과 일본산은 제품 외관만 봐도 확연히 구분이 됐다. 다이소를 가더라도, 일본제품을 불매할 생각이라면 구분해 소비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결국 고양이 사료는 다이소가 아니라, 동네 반려동물 용품 전문점에서 샀다. 아무래도 일본 지분이 있다는 게 맘에 걸려서. 그래도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엔 크게 영향을 안 받는 듯 했다. 방문했던 다이소의 한 직원은 "몇몇 소비자들이 다이소가 일본 것 아니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이렇다 할 매출 변화는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매장에도 손님들이 다수 보였다.
다른 체험 취재 때문에, 야쿠르트 15개짜리도 사야 했다. 여기서 한국야쿠르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오래 전부터 한국 기업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1969년 한일이 합작해 만든 기업이라고. 한국 기업인 팔도가 대주주(40.83%)고, 일본 야쿠르트 혼샤(지분 38.2%)로 2대 주주란다. 실제 지난해 혼샤가 배당금 총액 125억원 중 48억원을 받아갔다고. 이와 관련해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설립 초기에 설비 투자 때문에 지분 참여를 요구했었고, 그 때부터는 독자경영을 해온 토종 기업"이라며 "실제 2014년부터 나눔의집을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야쿠르트도 자체적으로 판단한 끝에 노브랜드(NoBrand) 제품을 샀다. 이번 불매운동엔 가급적 일본에 흘러가는 돈은 완전히 배제하고 싶어서. 그리고 가격이 1180원으로 한국야쿠르트 제품보다 저렴하기도 해서.
④'롯데(LOTTE)'에 대한 고찰
롯데에 대한 고민은 대형마트서 시작됐다.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롯데가 보일 때마다 판단을 유보했었다. 한국기업인지, 일본기업인지 헷갈려서. 도무지 어느 쪽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지 나름대로 정리가 필요했다.
히스토리를 보니,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궜다는 회사. 일본서 화학회사를 시작했고, 1967년엔 롯데제과를 세우며 한국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며 사업을 일궜다. 신 명예회장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했지만, 그렇다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진 않았다. 한국 시장 매출 규모가 일본보다 훨씬 크고, 고용 창출과 세금 납부도 상당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기업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또 지분 구조를 보면 롯데그룹 정점에 호텔롯데가 있는데, 일본 롯데홀딩스(19.07%)가 대주주다. 이어 2대 주주가 광윤사(5.45%)다. 일본 롯데홀딩스 대주주는 광윤사(신동주 전 부회장이 대주주, 28.1%)인데, 일본인 경영진도 지분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인 영향력이 과반에 달한단 분석도 있었다.
롯데에 대해선 이 같이 평가가 갈리겠으나, '불매운동' 관점이라면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있을 것 같다. 무인양품, 유니클로, 모스버거 등과 같은 주요 일본기업이 진출하는데 롯데가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한 건 분명해 보인다는 것. 이들 기업이 롯데 백화점에 유독 많이, 혹은 롯데 백화점에만 보인다 느낀다면 이를 공감(共感)할 것이다. 실제 유니클로 한국법인은 롯데 쇼핑이 49% 지분을 갖고 있고, 무인양품도 롯데상사가 4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마트에서 롯데 빼빼로와 일본 제품 포키(pocky)를 봤을 때, 빼빼로를 선택하지 못했다.
가장 헷갈리는 건 음식, 그리고 식재료 소비였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일본산 식재료를 배제하려 했으나, 명확히 표기돼 있지 않아 난감했다. 원재료에 원산지가 다 표기돼 있는 게 아녔다. 대표적인 게 ‘대두’ 같은 재료인데, 그냥 ‘외국산’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외국이 한두 군데도 아닌데. 좀 더 명확히 표기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참치는 원재료 가다랑어가 30%인데, 원양산이라고만 표시돼 있었다. 찾아보니 대개 국내 어선이 허가를 받아, 북태평양 같은 먼 바다에서 잡아오는 거라고.
평소 자주 먹었던,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은 녹차 가루를 일본에서 들여온단 얘길 들었는데, 원재료명을 보니 크림, 탈지농축우유, 정제수, 설탕, 난황, 녹차분말 이렇게만 표시돼 있었다. 원산지는 프랑스라고 쓰여 있으니, 소비자들은 원재료 모두 프랑스산인줄 알 것이다. 실제 온라인상에선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에 프랑스 국기 표시만 보고 사 왔는데, 녹차 가루가 일본산이란 얘길 듣고 황당했다"는 후기도 볼 수 있었다.
간편하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식품 중에서도, 일본산이 섞여 있는 게 다수 있었다.
보통 야끼우동이나 라멘 같은 간편 식품들이 그랬다. 마트에 놓여 있던 미소라멘엔 소스 원재료를 살펴보니 '홋카이도 미소된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야끼우동엔 가쓰오부시가 일본산이라 표기돼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신경 쓰기 힘든 부분이다.
마지막으론 문화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불매해 봤다.
고민이 가장 컸던 부분은, 지난 2일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다. 마블 히어로물 영화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터라, 그 다음 영화인 스파이더맨을 안 보겠단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었다. 당연히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려고 생각했었다. 일본 불매운동을 하기로 맘 먹기 전까진.
이 영화와 일본의 연결고리는 '소니(Sony)'다.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의 배급사를 찾아보니 '소니 픽쳐스(Sony pictures)'였다. 그래서 몇몇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할 때 나오는 소니 픽쳐스를 보고, “이거 보고 왔는데, 일본 불매를 하고 있는데 괜찮은 거냐”고 묻기도 했다. 거기에 달린 답변을 보니, “미국 회사로 확인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실제 관련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정말 미국 회사일까 미심쩍고 의심스러워 소니 홈페이지를 직접 들어가 봤다. 거기엔 소니 픽쳐스가 도쿄를 기반으로 한 소니의 자회사라고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원문을 그대로 가져오면 "Sony Pictures Entertainment is subsidiary(자회사) of Tokyo-based Sony Corporation"이란다. 심지어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 사진도 함께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마블 히어로물 중 최초로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은 보러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디즈니 라이온 킹을 보려 예매해 놓았다. '아 그랬냐~발발이~치와와'가 머릿 속에서 맴도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결심한 2주가 그리 지났다.
그동안 쓴 금액은 60만3000원(여행비 포함). 이중 일본제품에 소비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소비하는데 고심이 컸다. 뭔가를 사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일본산(産)을 정교하게 발라내는 게 만만찮았다.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 중엔 아는 것도 있었지만, 모르는 것도 상당히 많았다. 별 생각 없이 집었다가 "어, 이것도 일본 제품이네"하면서 내려놓는 것들이 많았다. 제품에 대놓고 일본어가 쓰여 있는 게 다가 아녔다. 그래서 틈틈이 찾아보고, 때론 직접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다. 대체재를 못 찾아 난감하기도 했다.
그만큼 꽤 의지하고 살았단 뜻이다. 이는 향후 똑같이 한일 간 '경제 전쟁'이 터졌을 때, 일본이 쥐고 있는 공격 카드가 그만큼 많단 뜻이다. 이는 비단 일본 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각국이 무역전쟁에 나서고 있다. 지나치게 한 산업 분야에서 한 나라에 의지하고 있는 게 없는지 점검할 때다. 그래도 일본 덕분에,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 됐다. 어느 나라 제품인지, 한 번쯤 들여다보고 사는 습관이 들었다.
60만3000원이 일본과의 경제 전쟁서 어느 정도 타격이 될 진 모르겠다. 인구가 많고, 내수로 웬만큼 해결되는 터라 "별 소용없다"고 비웃는 이들도 있다. 일본인들 뿐 아니라 일부 한국인들까지 포함해서. 그렇지 않다. 이 기사를 보는 독자들만 따져봐도 그렇다. 지난번 '남기자의 체헐리즘(집배원 체험)' 조회수가 포털사이트와 홈페이지를 합쳐 61만9172건이었다. 만약, 이번 기사도 그 정도 본다면. 나 혼자만 참여하면 60만3000원이지만, 독자들 모두 함께한다면 2주 동안 3733억6071만원의 경제 효과가 생긴다. 최소한 일본에는 안겨주지 않게 되는 셈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다른 거였다. 불매로 일본에 미칠 경제효과가 다가 아녔다. 뭔가를 살 때마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일본과의 역사에 대해 생각했다. 불매운동이 나무 한 그루였다면, 역사 인식은 큰 숲이었다. 임진왜란을 포함해 일본이 어떤 침략을 했었고, 얼마나 많은 피와 혼으로 지켜낸 나라인지 상념에 잠겼다. 1919년, 3.1절에 태극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가 수많은 이들이 총탄에 쓰러졌다. 그게 벌써 100주년이 됐다. 편히 지내느라 영토도 주권도 으레 주어진 걸로 알았다. 하지만 그건 결코 당연한 게 아녔다.
그땐 당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12위(지난해 기준) 경제대국이 됐다. 일본이 반도체 원료를 규제하면, 그들도 함께 휘청거린다. 불매운동 뉴스를 일본이 연일 보도하고, 일부는 비웃는 와중에 우려 여론도 고개를 든다. 총탄 하나 없이 싸우고 있지만, 살벌하다. 한 유니클로 매장에 갔더니, 세일하고 있음에도 매장이 한산했다. 직원도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실제로 매출이 줄었단다. 그래서 3주로 예정돼 있었던 세일도 일주일 더 연장했다고. 그렇게 우린 잘 뭉치고 있다. 숱한 역사적 위기를 그렇게 넘겼듯이.
그러니 일본 불매운동이 충분할 정도로 성숙해져서,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그런 맘이 간절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본기업에 대해 보다 정교하고 이성적인 ‘불매운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홍보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속되기 위한 관건은, 시민들 개개인이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무조건 일본 기업이라 불매할 게 아니라, 정확히 어떤 활동을 했는지 증거가 필요하다"며 "감정적으로 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기업이 우익 활동을 해왔는지, 강제 징용을 했던 기업인데 사과를 하지 않았는지, 그런 사실 관계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단 것이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이번 수출 규제 이슈를 우리가 역으로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강제 징용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이걸 더 큰 이슈로 만들어서 역사 왜곡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일본을 압박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한국에 와 있는 일본 여행객에 대해 인격 모욕이나 테러, 이런 식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3.1운동 때처럼 평화적이고,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에필로그(epilogue).2017년 여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89세. 노제가 열린 날, 난 처음으로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할머니들 쉼터 ‘나눔의 집’에 갔었다. 김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는 동안 몇몇은 울고, 몇몇은 침묵했다. 내 맘도 짜게 젖은 솜 마냥 묵직했다.
오전 11시쯤, 100여명 정도 됐었던 추모객들이 다 돌아갔다. 유족들도, 사진을 찍던 기자들도. 햇볕이 쨍쨍 비추고 아지랑이가 필 무렵엔 비로소 고요해졌다. 신발을 벗고, 나눔의 집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할머니 한 분이 허릴 곧게 펴고 꼿꼿하게 앉아 계셨다. 박옥선 할머니(96)였다.
들어가서 주무시란 권유에도 "일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왜 그렇게 앉아 계시냐"고 물었다가, 박 할머니의 대답에 숨이 턱 막혔다. "(김 할머니가 떠났으니) 나라도 나눔의 집에 꼭 붙어 있어야지." 허공을 응시하는 할머니 눈을 빤히 보다가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나는 동안 위안부 할머니 몇 분이 더 돌아가셨다. 그 아픔은 오래도록 치유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본은 여태껏 사과가 없다. 참으로 뻔뻔하게도.
불매운동을 할 이유는, 아직도 정말 많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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