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권리금 0원이어도 안 해요" OO단길 원조 '경리'는 왜 저물었나

이혜운 기자 2019. 7.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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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대표 골목상권 경리단길 흥망성쇠
맛집들이 사라진 건물에 ‘임대’라는 종이만 붙어 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한때 줄을 선 손님들 때문에 지나가기도 어려웠던 거리가 텅 비었다. ‘힘내라 경리단’ 현수막이 아련하게 펄럭였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여기가 경리단길 맞나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군재정관리단 앞에서 만난 미국인 관광객 세 명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들이 가진 관광 안내서에 나온 설명은 "패션 피플들이 모이는 서울에서 가장 핫한 거리 중 하나".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금요일 오후 6시 무렵이었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가는 전반적으로 비어 있었고 '임대'라고 쓴 안내문만 곳곳에 붙어 있었다. 경리단길 초입의 한 건물은 6개 점포 중 5개가 비었다.

경리단길을 유명하게 만든 맛집도 상당수 사라졌다. 지난 2012년 문을 열며 경리단길 시대를 연 일등공신 중 하나로 꼽히는 '서울살롱'도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네모피자로 유명했던 '피자리움', 컵스테이크 바람을 일으킨 '로드스테이크',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아이스크림집 '카카오봄'도 문을 닫았다. 수제버거집 '오키스버거'는 지난달 14일 용산구청 옆으로 이전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다른 가게로 채워지지 않았다. 깨진 조명, 부서진 자재, 전선이 뒹굴었다. 바닥엔 '가게 운영자금 대출' 같은 문구가 담긴 전단이 수북했다. 인근 부동산 유리창엔 상가 매물 광고가 가득했다. "상가 임대, 1층 무권리 15평, 보증금 2000만원, 월세 120만원."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한때 1억~2억원 받던 권리금을 아예 안 받는다고 해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이 끝나는 건물에는 '힘내라 경리단'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였다.

길도 생명이다. 흥망성쇠가 있다. 신촌 이대 앞과 압구정 로데오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등도 전성기와 쇠락기를 걸었다. 그래도 경리단길은 너무 극적이다. 3~4년의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텅 비어 버린 곳은 보기 드물다. 서울 망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등 전국 수십 개 '○리단길'의 원조인 경리단길은 왜 이렇게 롤러코스터를 탄 것일까.

상권 공식을 깬 '경리단길'

경리단길은 상권 형성의 필수 조건인 '접근성'과 '유동인구'가 없이 맛집들로 이뤄진 첫 상권이다. 경리단길의 지형적 조건은 번화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걸어 다니기 불편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태원역 주변 중심거리와도 꽤 떨어져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은데 주차도 어렵다. 사무지구나 대학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거리에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 대부분 '맛집'이었다. 2011년 경리단길에 장진우 식당을 연 장진우 대표가 '그랑블루' '프랭크' '마틸다' 등을 잇달아 열며 '장진우 거리'를 만들었다. 경리단길 초입에는 2012년 '서울살롱'을 연 한정현 대표가 '핑퐁펍' '호왕' 등을 내며 세력을 넓혔다.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웠던 수제맥줏집 '맥파이'도 유명세에 한몫했다. 홍대는 대학생이 많아 눈치 보이고, 청담동 거리는 화려한 분위기가 부담스럽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 직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경리단길에서는 5000만~1억원 정도면 창업이 가능했기에 맛집 주인과 손님들의 나이대가 비슷했다. 그들의 목표도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은 가게"였다.

알음알음 모여들던 이 거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4년쯤이다. 공중파 유명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푹 빠져 있는 거리로 소개되면서 '전국구 관광지'가 됐다. 당시 국내 가입자 수를 늘려가던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감성과도 맞아떨어졌다. 경리단길은 좁은 대지 면적과 고도 제한 등으로 신축 대형 매장이 아닌 리모델링 형태의 소규모 매장이 많았다. 사진 찍기 좋았다. 기존 건물을 살린 인테리어는 당시 유행했던 '빈티지 감성'과도 맞아떨어졌다. 가게들도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진이 잘 나오는 '인스타 메뉴'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국 지자체에서는 '경리단길 따라 하기' 열풍이 불었다.

대체재 많은 '골목길 상권'

2016년쯤부터 경리단길이 바뀌기 시작했다. 임대료가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때문에 모여들었던 젊고 창의적인 사장들은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이탈) 논쟁도 함께 촉발됐다. 경리단길 한 문어전문식당 관계자는 "70만원이던 임대료가 5~6년 사이에 400만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도 독(毒)이 돼 돌아왔다. 사람이 붐비자 기존 단골들은 발길을 끊었다. 업로드를 위해 방문한 외지 손님들은 두 번 이상 방문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맛집 변화 주기는 빨랐다. 경리단길 대신 망원동·연남동·성수동·을지로 등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로데오거리·가로수길 등 기존 상권 전성기가 10년 정도였다면, 경리단길은 3년 정도였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상권 확장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경리단길이 빨리 쇠퇴한 이유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상권은 '맛집→커피 프랜차이즈→패션·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대형 SPA 패션 브랜드·쇼핑몰' 순으로 발전 혹은 추락한다.

작은 맛집과 디자이너숍으로 유명했던 이대 앞 상권은 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서며 쇠락하는 듯했지만 학교 앞이라는 특수성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풍경을 유지했다. 가로수길 역시 대기업이 몰려들며 특유의 분위기는 잃었지만, 옆 골목인 '세로수길'로 맛집은 이동하고 메인 거리는 브랜드들의 '테스트 베드(시험장)'가 됐다. 홍대 앞은 상수역, 합정역 등으로 상권을 확장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상권' 돼야

경리단길의 쇠락은 전국에 있는 파생 거리 '○리단길' 들도 같은 전철을 밟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상권'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문화적 요소'가 필요하다. 최성호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먹고 마시는 것에서 시작된 상권이지만 문화적인 코드가 더해져야 생명력이 길어질 수 있다"며 "신촌에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인 '물총축제'나 통인시장 '엽전'처럼 일부러 찾아올 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좋은 예가 일본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 경리단길처럼 언덕에 위치한 지형적 특성에도 미군과 함께 상권이 형성된 후 연예인들이 몰리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1980년대 버블 경제 붕괴와 대체재 등장 등으로 쇠락을 겪었다. 그러나 2002~2003년 이즈미 가든 타워와 롯폰기 힐즈라는 새로운 매력 요소가 들어서면서 다시 살아났다. '골목 인문학'을 쓴 임형남 가온건축 대표는 "식당 입장에서도 인스타용이 아닌 두 번 이상 오게 만드는 저력을 키워야 한다"며 "상권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만한 확실한 콘텐츠, 매력 요소를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조정할 때 건물주와 세입자가 '골목길 상권'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경리단길처럼 일부러 찾아가도록 만들어진 상권은 기존 맛집이 빠지면 그 상권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물주와 세입자는 '매출액 연동방식' 등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것이 좋다"며 "이런 부분을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면 공공기관이 중재 역할을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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