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살찐 고양이법
[경향신문] ‘최고경영자(CEO)의 보수가 일반 직원의 20배를 넘지 않도록 하자.’ 좌파 경제학자나 급진 노동단체의 주장이 아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1986년 펴낸 <프런티어의 조건>에서 주창한 것이다. “최고경영진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보상체계는 팀워크를 해치고 상호신뢰를 떨어뜨려 회사의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이유에서다. 원래 정치자금을 많이 내고 특권을 누리는 부자들을 비꼬는 ‘살찐 고양이’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탐욕스럽고 배부른 자본가·기업인을 조롱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직원들은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정작 경영실패 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이 고액 연봉과 퇴직금을 챙기는 도적적 해이가 까발려지면서 ‘살찐 고양이’로 소환된 것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살찐 고양이의 살을 ‘제도적’으로 빼야 한다는 임금제한 논의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프랑스는 2012년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못박았다. 스위스는 2013년 국민투표를 통해 기업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토록 하는 주민 발의안을 가결했다. 이 규제안의 별칭이 ‘살찐 고양이법’이다. 미국은 CEO 연봉이 직원 보수 중간값의 몇 배인지를 매년 공개토록 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자유계약’ 원칙을 허무는 과잉규제라는 반론에도 불구, ‘살찐 고양이법’ 논의가 확산되는 까닭은 하나다. 날로 커지는 소득격차와 불평등 때문이다. 한국의 소득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번째다. 2018년 10대 그룹 상장사 등기임원의 평균 연봉은 일반 직원의 13.6배에 달했다. CEO는 최저임금의 1000배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2016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살찐 고양이법’은 3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물꼬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부산시와 경기도 의회가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6~7배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서울시와 전북 등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점화된 ‘살찐 고양이 살빼기’가 중앙공공기관, 민간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이참에 부디 살찐 고양이의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먹이를 함께 나누는 ‘그날’이 성큼 오기를 기대한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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