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혹평한 영국대사 사임, 바른말 한 죄?

2019. 7. 1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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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표현이 다수 담겼지만 대럭 대사의 평가가 현실과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기존 정부와 다르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기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워싱턴의 일반적인 평가다.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가 2017년 10월 워싱턴DC의 영국대사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무능하고 불안정하다는 노골적 평가가 담긴 외교 전문이 공개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가 결국 사임했다. 상대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교체 압박에 결국 손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대럭 대사의 본국 보고 내용은 워싱턴의 트럼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초 논란이 됐던 언론인 마이클 울프의 책 〈화염과 분노〉에 이어 또 한 번 트럼프 정부의 내면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킴 대럭 주미 영국대사는 본국 보고 전문이 공개된 지 4일 만인 7월 10일(현지시간) 결국 사임의사를 밝혔다. 대럭 대사는 이날 영국 외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대사관에서 보낸 공식문서가 유출된 뒤로 내 자리와 대사 임기에 관한 여러 추측이 있었다’면서 ‘이 같은 관측을 끝내고 싶다. 현재 상황은 내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임기가 비록 올해 말까지 예정돼 있지만 새 대사를 임명하도록 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발끈한 트럼프, 대사 교체 압박

외교 전문 공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까지 공격하며 전문 작성자인 대럭 대사의 교체를 요구했다. 그는 전날 트위터를 통해 ‘영국이 미국에 떠맡긴 이상한 대사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대럭 대사를 비난했다. 다른 트위터에서는 ‘나는 메이 총리에게 그 협상(브렉시트 협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리석은 길을 갔고 그것을 끝낼 수 없었다. 재앙이다’라며 메이 총리까지 직접 겨냥했다. 그는 전날에도 트위터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와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럭 대사를 사실상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지명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만찬행사를 앞두고 영국대사 초청을 전격 취소하는 등 미국 내 외교활동 배제조치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이 공개된 다음날인 7월 7일에도 “우리는 그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사임을 택한 대럭 대사를 옹호했다. 메이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대럭 대사의 사임에 대해 “매우 애석하다”며 “그는 영국에 평생을 바쳐 공헌해왔다. 영국은 그에게 매우 큰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대럭 대사에 대한 신뢰를 밝히기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차기 총리 후보들도 대럭 대사 편을 들었다. 총리 선출이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그는 매우 탁월한 외교관이었다”고 평가하고 전문 유출에 관여한 자는 관료조직에 매우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총리 후보인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터무니없는 유출로 인해 대럭 대사가 사임에 이르게 돼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전문 논란은 지난 7월 6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보도가 발단이 됐다. 신문은 대럭 대사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본국 외무부에 보낸 비밀 외교 전문을 입수했다며 공개했다. 신문은 전문 유출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대럭 대사의 트럼프 대통령 평가는 2017년 6월 영국의 국가안보회의에 보낸 6장짜리 전문에서 가장 잘 확인된다. 그는 ‘나는 이(트럼프) 행정부가 결코 유능해 보이지 않는다’며 ‘이 정부가 실질적으로 더 정상적이고, 역기능이 줄고, 덜 예측 불가능해지고, 덜 분파로 찢기고, 외교적으로 덜 서툴게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트럼프 정부는 무능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서툴다는 것이다.

그는 백악관의 내분을 마치 ‘칼싸움 같다’고도 했다. 또 러시아 스캔들로 ‘대통령직이 불타고 붕괴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많은 공격을 당한 뒤에도 손상되지 않은 모습으로 불꽃 속에서 등장하는 것과 같다’며 그에 대한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방법 세 가지도 제안했다. 먼저 그와 직접 전화하는 많은 참모에게 가능한 한 많은 영향을 미치고, 다음으로 메이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많이 하고, 마지막으로 그를 칭찬하라는 것이다. 대럭 대사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세계 무역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전달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출정식 이틀 후인 지난 6월 20일 보낸 전문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곳은 홈팀 팬들이 모이는 스포츠 이벤트와 대형 교회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었다’고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출정식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열광적인 트럼프 지지층이 그를 재선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의 기류 보여주는 솔직한 내용

솔직한 표현이 다수 담겼지만 대럭 대사의 평가가 현실과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기존 정부와 다르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기능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워싱턴의 일반적인 평가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대럭 대사의 평가에 대해 “워싱턴의 통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출된 전문을 볼 때 대럭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트럼프 정부의 정부 운영과 외교정책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그는 영국 정부 상관들에게 모두가 알고 있는 혼란한 정부를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대럭 대사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를 계기로 과거 외교관들의 각국 지도자들에 대한 혹평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7월 9일 외교관들의 신랄하고 흥미로운 역대 정상들 평가 10가지를 소개했다.

영국의 외교관은 나치 독일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를 ‘미친 로봇’으로 묘사했다. 1933년 당시 베를린 주재 영국대사였던 에릭 핍스 경은 그해 초 독일 총통에 취임한 히틀러와의 첫 만남을 기록한 자신의 일기에서 히틀러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인상에 대해 당시 로마 주재 미국대사인 윌리엄 필립스는 회고록에서 ‘대머리에 눈이 튀어나온 로마의 난폭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토머스 P 멜라디 주우간다 미국대사는 아프리카 독재자의 대명사였던 이디 아민 다다 전 우간다 대통령에 대해 ‘편집증적 과대망상에 빠진 어릿광대’라고 혹평하는 메모를 미국 정부에 보낸 바 있다.

1975년 미국 외교관들은 당시 영국 야당이던 보수당 당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대해 부족한 외교경험 등을 지적하며 “다소 순진하고 심지어 너무 소녀답다”고 평가했다.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지식이 짧다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구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미국대사로부터 ‘이상하게 개처럼 생긴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였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도 각각 ‘이기적이다’, ‘돼지 눈’이라는 혹평을 외교관들로부터 들었다.

박영환 워싱턴 특파원 yhpark@kyun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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