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분단의 섬' 키프로스는 지금 '자원전쟁' 중

노도현 기자 2019. 7. 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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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EU·터키, 해상 천연가스 개발 놓고 갈등 고조

동지중해 키프로스 해상의 대규모 천연가스 개발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키프로스의 후견자 터키가 시추를 강행하자 유럽연합(EU)은 “불법”이라며 제재에 돌입했다. 터키는 ‘후퇴는 없다’며 맞서고 있다.

EU 외무장관들은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터키는 동지중해에서의 불법 행위를 멈추라는 요구에도 시추활동을 지속했다”며 터키에 대한 제재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EU는 우선 터키와의 종합항공운송협정 체결 협상을 중단하고 당분간 EU·터키 고위급 회담을 열지 않기로 했다. 터키의 EU 가입을 지원하기 위해 터키 정치 개혁, 농업 분야 등 프로젝트에 배정한 내년도 예산 1억4580만유로(약 1930억원)도 삭감한다. 유럽투자은행에는 터키의 대출 활동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작년부터 잇단 가스전 발견 북키프로스 후견자인 터키 EU의 반발에도 시추 강행 결국 제재…터키 “후퇴 없다”

터키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EU의 결정은 우리의 동지중해 자원 개발 활동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는 전날에도 “키프로스가 북키프로스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일 때까지 (독자적인) 시추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북키프로스 정부는 13일 키프로스 정부와 유엔, EU에 “유엔 감독하에 자원 개발을 위한 공동위원회를 설립하자”고 공식 제안한 상태다.

지중해 동쪽 끝자락에 있는 키프로스섬은 분단의 땅이다. 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그리스정교를 믿는 남부 그리스계와 이슬람교인 북부 터키계의 갈등이 지속됐다. 1974년 그리스와의 합병을 주장하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터키가 북키프로스를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둘로 쪼개졌다. 1983년 북키프로스는 독립국 수립을 선포했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터키만 인정했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키프로스는 2004년 EU에 가입했다.

분단 이후 키프로스와 터키·북키프로스는 동지중해 해상 경계를 놓고 부딪쳤다. 지난해부터 키프로스 연안에서 잇따라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되면서 갈등은 심화했다. 가장 큰 규모의 가스전은 지난 3월 미국 엑손모빌이 키프로스 남쪽 해상에서 발견한 것이다. 300억달러(약 35조원) 가치에 섬 전체가 200년간 쓸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키프로스는 다국적기업들과 손잡고 독자적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다국적기업과 독자적 에너지 개발 추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터키도 자원 개발에 눈독을 들였다. 터키는 “북키프로스도 자원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2011년 북키프로스와의 합의에 따라 터키 석유공사(TPAO)가 키프로스 해상 자원 채굴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초 첫 시추선 ‘파티흐’를 보내 키프로스 서쪽 해안에서 천연가스 탐사·시추를 시작했고, 이달 초 두 번째 시추선 ‘야우즈’를 북동쪽 해안에 투입했다. 키프로스는 “터키가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하는 등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며 두 시추선 선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미국, 이스라엘, 이집트 등도 우려를 표명했지만 터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체코에 본부를 둔 국제관계연구소의 콘스탄티노스 필리스 연구원은 “터키가 동지중해에서 시추 예비작업을 하고 시추선까지 보내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됐다”며 “터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형적인 협상틀”이라고 EU 전문매체 뉴유럽에 말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12일 키프로스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하고 군사훈련을 지원하는 조항을 담은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산 방공미사일 시스템 S-400을 도입한 터키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뉴유럽은 “유럽과 미국은 각자 터키와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라며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단념시킬 만큼 강력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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