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페미니스트 소설가 아디치에 인터뷰 "미투 운동은 희망의 신호, 백래시는 멈출 이유 아냐"
[경향신문]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42)는 세계적인 ‘페미니즘의 아이콘’이다. 유튜브 조회수 550만이 넘는 테드(TED) 강연을 바탕으로 만든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는 ‘페미니즘 입문서’로 널리 읽히고,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또한 아이를 성평등하게 키우고 싶은 양육자를 위한 조언을 담아 호응을 얻었다.
에세이로 친숙한 아디치에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아프리카 문학의 거장 치누아 아체베의 21세기 딸”이란 별칭을 얻으며 영연방문학상, 전미서평가협회상 등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쉽고 친절한 에세이에 비해 그의 소설은 좀 더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재정권 치하의 나이지리아 사회,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중첩된 미국의 상황, 급격한 세계화로 나이지리아에서 빚어지는 혼란 등 ‘비미국인-흑인-여성’의 정체성을 짙게 반영한 작품들을 써왔다.
그의 소설은 현실의 모순을 핍진하게 드러내되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성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기발랄하게 들려준다. 최근 출간된 아디치에의 데뷔작 <보라색 히비스커스>(민음사)와 리커버로 출간된 <아메리카나>(전2권·민음사)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나이지리아 상류층의 가톨릭 집안에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억압당한 캄빌리가 이를 벗어나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아메리카나>는 나이지리아에서 구김없이 자란 소녀 이페멜루가 미국으로 떠난 후 겪는 인종차별 등을 톡톡 튀는 문체로 그려냈다. 그는 “인간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강한 여성은 때로 취약하고, 허약한 사람도 종종 강해진다. 여성은 복잡하고 동시에 많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볼티모어에 머물고 있는 아디치에와 지난 5일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다.
- 당신의 에세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은 세계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에세이로 확장시킨 이유가 있을까요.
“소설에선 독자들이 그들만의 결론을 내리길 원하지만, 논픽션에선 제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여성에게 충만한 인간성이 부여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성을 물건으로 생각하는 문화, 여성은 남성과 진정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 모두 평등하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페미니즘은 진정한 평등함을 이뤄내는 방법을 찾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 당신은 에세이를 통해 페미니즘을 쉽고 친근한 언어로 전달하려 노력해 왔지만, 현실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백래시’와 젠더갈등은 여전합니다.
“모든 정의를 위한 운동은 백래시를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의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은 개별 남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역사적, 문화적 시스템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를 대화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백래시는 우리가 멈춰야 할 이유가 아닙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미국과 나이지리아의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다를 것 같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선 성차별적인 발언이 훨씬 솔직하게 이뤄집니다. 예컨대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여자이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식입니다. 미국에선 그런 발언을 하진 않지만 투표 패턴을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양쪽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대항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미국에선 여성들이 더 많은 법적 보호를 받고, 나이지리아엔 여성들을 제어하는 문화적 개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보디셰이밍’(몸매를 지적하는 행위) 같은 이슈는 미국이 훨씬 심하죠. 나이지리아에선 수용되는 미적 기준이 미국보다 넓습니다. 또 노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 나이든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많은 존중을 받습니다. 미국에선 여성이 나이를 먹을수록 투명인간이 되고 존중받지 못하죠.”
- <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성 역할은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등 15가지 제안을 건넵니다. 작가님 또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제안이 있다면요.
“육아는 불안과 관련돼 있습니다. 여성에게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은 죄책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충만한 사람이 되라’는 첫 번째 제안을 꼽고 싶어요. 딸을 정말 사랑하지만, 동시에 제 자신이 엄마 이외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 저의 일과 관심사가 있는 그냥 ‘사람’이 되는 것이죠. 딸이 엄마가 충만한 사람이란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세계적으로 뜨거웠던 미투 운동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궁금합니다.
“미투 운동은 희망의 신호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믿게 해줬습니다. 그동안은 남자가 저지른 일을 여성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렸죠. 앞으로 피해 여성들을 위한 보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으로 직업의 기회를 잃거나 극단적으로 삶이 변한 여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들을 위한 보상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소설가, 에세이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회적 발언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여성이 동시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한 가지만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면, 제가 작가이면서 소설가이고, 동시에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요. 다만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독은 소설을 쓸 때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완전한 고요함과 공간이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문제점은 제가 필요한 만큼의 고요함과 공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 2016년 국내 문예지 ‘릿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소설 ‘준비’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이민정책이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민자 출신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현 대통령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국가에서 이민자들이 오길 원하고,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은 원치 않습니다. 이는 좁고 편협한 인종차별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유의여신상에 새겨져 있는 ‘자유를 갈망하는 지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떠밀리는 사람들을 나에게 다오’라는 시의 문구에서 보이는 미국의 건국정신에 반하는 것입니다.”
아디치에는 TED 강연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에서 단편적인 이야기가 소수자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언급하며 다양한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적 유명 작가가 된 아디치에지만 첫 소설 출간까지 수많은 거절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은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흑인 여성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하며 ‘납작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파라피나 재단을 설립해 도서관과 책을 보급하고 글쓰기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워크숍은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알려진 글쓰기 워크숍이 되어 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워크숍은 성별·계급·지역·종교적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나이지리아 남부는 기독교이고 북부는 이슬람인데, 북 나이지리아 지원자는 많지 않아 무슬림 지원자를 포함시키려 노력합니다. 특히 여성 무슬림 작가를 찾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관심사에 대해 물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서아프리카의 역사, 사하라 사막 이남의 노예들이 북아프리카로 잡혀간 뒤 유럽으로 가게 된 사하라 횡단 노예무역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500년 전 아프리카인들은 국제 무역에 참여했는데, 오늘날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런 역사를 잘 포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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